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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Aug 15. 2016

세상을 사랑한 마음을 기억하는 법

치매는 유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덜컥 겁부터 난다. 아직 치매를 완전히 고칠 수 있는 약이 나오진 않았지만 내가 혹여라도 치매에 걸린다면 그때엔 완치제가 나와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뇌를 쓴다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낫다고 말들 하지만 뇌를 쉴 새 없이 쓰는 교수, 의사도 치매에 걸리는 것을 보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병도 아닌 것 같다.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렸을 때 온 가족은 정말 '개고생'을 했다. 옆에서 할아버지의 손발이 되었던 할머니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휴가를 내고 할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약을 타오는 등의 일들을 거들었다. 덕분에 나는 회사에서 가족들을 다 미국에 보낸 기러기 누나에다가 병든 할아버지까지 모시는 불쌍한(?) 아이로 통하며 '효 도람' 캐릭터를 얻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내가 치매에 걸리면 요양원에 가겠다고 말해놨다. 내가 평생 쌓아온 좋을 기억들을 치매라는 병으로 죽을 때까지 하나하나 지우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모와 동생과 이런 이야기를 하던 중 고모는 치매에 걸린 사람들 중 가장 좋은 형태는 평생 몸이 기억하고 있는 취미생활이 있어 그것을 갖다 주면 하루 종일 그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뜨개질이라던지 서류에 사인, 악기 연주 등의 취미가 있던 사람들은 훨씬 다루기 쉬운 치매환자이며 본인 자신도 덜 불행하게 투병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취미가 없던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의 회로에 이상에 생겼음에 패닉하며 이가 폭력적인 형태로 분출되기도 하는 것이다.


취미생활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참 많은 취미생활들에 손을 대었다. 나보다 덩치가 큰 첼로도 배워보고 차도 없었으면서 골프를 시작했고 뭣도 모르고 글도 쓴다. 모두 있어 보이는 취미인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폼생폼사 기질이 있으니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있어 보이는 취미에 손을 대볼지 모르겠다. 나중에 그림도 그려 보고 싶고 손재주도 좋으니 사부작사부작 손을 놀려하는 취미도 몇 가지 더 갖고 싶다.


나는 우아하게 죽고 싶다. 이것이 나의 생에 마지막 소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우아하게 죽기란 잘 허락되지 않는다. 나 또한 이 바람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장국영은 "마음이 피곤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라며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조증이라면 모를까 우울증과는 거리가 먼 나는 마음이 피곤한 일은 없을 것 같고 세상을 사랑한 기억과 그 마음을 하나하나 다 품고 가고 싶다. 치매에 걸려 그 모든 것을 지운 채로 가고 싶지는 않다. 치매에 걸렸더라도 내 몸이 기억하는 내가 사랑했던 세상의 취미들을 즐기며 죽는다면 나름 우아하게 세상과 이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앞으로도 세상의 온갖 취미들을 그리고 내 몸이 기꺼이 기억해줄 취미들을 많이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돈 아끼기를 제 돈 아끼기처럼 하는 내동생은 이게 무슨 개수작이냐고 할 것 같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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