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명실공히 맥주의 나라이자 애주가의 나라다.
Image by Gerhard Gellinger from Pixabay
독일에는 약 1,300개의 맥주 양조장이 있으며, 5,000개 이상의 맥주 브랜드를 생산한다.
각 주마다 내세우는 대표 맥주는 주로 그 지역에 공장이 있으며, 마트에서 주로 취급하는 제품들도 동네마다 약간씩 달라진다. 보다 작은 동네 단위에서도 역사가 깊은 양조장(Brauhaus)이 한두 개씩 존재하니, 그곳들만 찾아다니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겠다.
독일은 넓고 맥주는 많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인당 술 소비량에 따르면, 독일에서 성인 1명(15세 이상)이 매년 마시는 알코올의 양은 11.8리터에 달한다고 한다(그냥 맥주가 아닌 순수 알코올 기준이다!) 보드카의 영향권에 있는 동유럽권 또는 구 소련연방(벨라루스, 몰도바, 리투아니아, 러시아 등 몸과 마음이 추운 나라)을 제외하면 술 소비량은 세계 Top 수준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기인하지만, 맥주 순수령으로부터 이어져 온 맥주 부심과, '맥주=음료'라는 보편적인 사회 인식, 그리고 낮은 음주 가능 연령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겠다.
독일 음주 가능 연령은 공식적으로 16세부터다. 맥주와 와인은 16세부터, 18세부터는 슈납스 류(Schnapps ; 도수가 높은 증류주)의 구매와 음주가 허용된다.
그런데 실질적인 음주가 가능한 나이는 더 낮은 14세부터다. 이 나이만 되더라도 법적 보호자 입회 하 구매/음주를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중3 정도 된 학생에게 '얌마, 어른이 주는 건 그냥 마셔도 돼'와 같은 조기 음주 교육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사춘기 소년소녀들이여, 독일로 오라! 엄빠 모시고..)
독일 유소년 보호법. 매장마다 반드시 게시해놓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독일의 맥주 페스티벌은 단연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9월 중순부터 독일 전역 여기저기서 저마다의 옥토버페스트를 알리는 플래카드와 광고가 붙는다.
사실 옥토버페스트는 독일 제3대 도시 뮌헨(München)에서 열리는 지역성이 강한 축제로, 뮌헨 지역 사투리로 비즌(Wiesn)이라고도 불린다.
'비즌' 주간을 맞아 새로이 선보인 맥도널드 특별 메뉴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10월 12일 바바리아 왕국(현 바이에른주)의 황태자 루드비히 1세와 작센 힐드 부르크 공국의 테레사 공주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유래한다. 궁정 경비대 소속이었던 안드레아스(Andreas Michael Dall’Armi)가 특별한 결혼식 방법을 고민하다가 귀족과 시민들이 모두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경마 경기를 제안한다.
성공적인 행사에 힘입어 그 이듬해부터 좀 더 규모를 키워 진행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추후 안드레아스는 옥토버페스트를 '발명'한 상으로 최초의 황금 시민상을 받았고, 뮌헨 시내 노이하우젠-님펜부르크(Neuhausen-Nymphenburg)라는 지역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길까지 생겼다)
옥토버페스트는 '10월(Oktober)+축제(Fest)'라는 이름과는 무색하게 9월 중순에 시작되어, 10월 첫 주면 마무리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뮌헨의 10월 날씨가 축제를 즐기기에는 너무 춥다는 것. (<세계적인 철학자는 왜 독일에서 나왔을까?>편 참조)
하여 옥토버페스트는 1872년부터 매년 9월 15일 이후 토요일에 시작해 10월 첫째 일요일에 끝나는 일정으로 조정됐다. 2000년부터는 10월 1일 또는 2일이 일요일인 경우, 독일 통일 기념일인 10월 3일까지 연장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따라서 축제는 16일에서 최장 18일간 열리게 된다.
2019년 옥토버페스트는 9월 21일(토)부터 10월 6(일)까지다. 2020년에는 9월 19일(토)부터 10월 4일(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올 생각이 있다면 미리미리 숙소를 예약하자. 행사기간 중 방 잡기는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 2020.4.22일 덧붙임) 안타깝게도 2020년 옥토버 페스트는 코로나19 사태때문에 취소되었다(옥토버페스트 홈페이지 참조)
다음은 옥토버페스트와 관련된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몇 가지 사실.
1. 옥토버페스트에서는 뮌헨 맥주만 취급한다.
뮌헨 맥주는 밀맥주(Weizenbier) 또는 백맥주(Weissbier)로 알려져 있다. 밀맥주의 명맥은 역설적이게도 보리, 물, 홉 이외에는 맥주 재료로 쓸 수 없다는 '맥주 순수령' 덕분에 오늘날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16세기에 공포된 이 법은 빵을 만드는 주 재료인 밀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70년대 우리나라의 쌀 막걸리 금지령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만들어졌는데, 부유한 상류층이 즐기던 밀맥주까지 막을 수는 없었을 터. 오히려 바이에른 왕족 가문은 그들 양조장에서 독점적, 안정적으로 밀맥주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뮌헨 행사인 옥토버페스트에서는 너무 당연하게도 뮌헨 맥주인 밀맥주만 취급한다. 여기서 판매되는 맥주는 행사를 위해 특별히 제조된 맥주로 시판 맥주(4~5%) 보다 도수가 약간 높다(약 6~7%). 최소 서빙 용량인 1리터짜리 한잔의 알콜량이 소주 반 병 정도에 해당한다고 하니 조심해야겠다.
빌헬름4세가 공포한 롸인하이츠게봇(Reinheitsgebot)...단, 밀은 예외!
2. 옥토버페스트는 200여 년의 기간 동안 전쟁, 전염병 등으로 총 24번 취소됐다.
1813년 나폴레옹 전쟁
1954년 콜레라
1866년 오스트리아-프러시아 전쟁
1870년 프랑스-프러시아 전쟁
1873년 콜레라
1914-1920년 제1차 세계 대전 및 그 여파
1923-1924년 하이퍼인플레이션
1939-1948년 제2차 세계 대전 및 그 여파가 이유이다.
1980년 네오나치에 의해 일어났던 폭탄 테러(13명이 사망, 211명 부상)에도 불구, 1949년부터 현재까지는 한결같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
--> 2020.4.22 덧붙임)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2020년 옥토버 페스트가 취소되었다. 25번째 취소 사례가 될 예정이다.
3. 맥주 가격은 10.70유로부터(2018년 기준), 1리터가 최소 서빙 용량이다.
맥주 가격이 꽤 높다. 이 중 10% 정도는 서빙하는 웨이터/웨이트리스 몫이라고 한다. 2주간의 아르바이트 기간 동안 벌 수 있는 평균 금액은 약 5천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650만 원 정도이니 단기 알바치고는 짭잘하다. 단, 한 번에 30Kg에 육박하는 맥주를 거뜬히 들 수 있는 튼튼한 팔과 20Km 이상을 걸을 수 있는 다리를 가져야 하며 고객(및 취객)을 즐거이 상대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옥토버페스트 알바 모집 요강)
9월에 접어들면서 마트에서도 한정판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판매하기 시작하는데, 이들 역시 1L짜리 캔으로 판매된다.
극한직업. 잃지않는 미소.
4. 2019년 옥토버페스트에는 총 38개의 크고 작은 맥주 텐트가 들어선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브랜드인 아우구스티너(Augustiner),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파울라너(Paulaner), 뢰벤브로이(Löwenbräu) 등 뮌헨 대표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17개의 대형 텐트는 약 6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야외 좌석 포함 시 8~9천 명).
이 중 쇼텐하멜(Schottenhamel)은 뮌헨 시장이 행사 개막을 알리는 텐트로 가장 유명하고, 호프브로이페스트할레(Hofbräu-Festhalle)는 가장 많은 인원(11,000명)을 수용한다.
맥주통이 열렸다! (O'zapft is!)
21개의 중소형 텐트는 맥주 외에도 와인, 도넛, 칵테일, 음악 등 다양한 컨셉으로 운영돼 가족단위,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작다고 해도 수용인원이 300명 ~ 500명에 달한다. 야외 좌석까지 합하면 1,000명 가까이 되는 곳도 있다. 브로이로즐(Bräurosl) 텐트에서는 호모 섹슈얼들을 위한 'Gay Sunday'(첫 번째 일요일) 행사를 진행한다.
놀이공원도 운영된다. 임시 공원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관람차, 롤러코스터, 자이로드롭, 회전목마, 퍼레이드 등 있을 건 다 있다. 사실 옥토버페스트 자체가 하나의 큰 테마파크인 셈이다.
지반을 다지는데서부터 구조물 설치까지의 기간은 약 8주 정도다. 약 2주간의 축제를 지내고 약 4주간에 걸쳐 철거된다.
흥과 맥주가 가득한 어른이들의 놀이동산!
5. 상상 그 이상의 분실물
매년 보관소에 들어오는 분실물은 3~4천여 점에 육박한다. 600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데다 알코올 섭취로 인해 제정신으로 귀가하는 사람이 드문다는 걸 고려하면 그다지 많은 숫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분실물 종류는 실로 다양한데, 여권, 지갑, 핸드폰, 가방, 열쇠, 옷 등은 물론이고, 바이킹 헬멧, 브라(-.-), 가죽 채찍(@.@), 결혼반지, 보청기, 틀니, 휠체어, 강아지도 접수된다고 하니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분실물은 이듬해 초까지 보관되나, 약 80%는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다.
6. 아인슈타인도 알바를 했었다!
가죽바지 전통복장을 입고 맥주 서빙을 한 건 아니고, 1896년에 쇼텐하멜(Shottenhamel) 텐트에서 전기공으로 일했었다고 한다.(그럼 그렇지.. 이분은 뼛속부터 물리학자)
혈중 알코올 농도를 재줄 것만 같은 알버트 할아버지
7. 숫자로 보는 2018년 옥토버페스트
2018년에는 630만 명(덴마크 전체 인구보다 많다)이 옥토버페스트를 찾았다. 그중 70%는 동네 주민(바이에른 주), 15%는 그 외 지역 독일인, 나머지 15%만 외국인이었다. 국제적인 유명세에도 불과하고 아직은 외국인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
총 67개 국가에서 방문했으며, 방문객이 많은 순서대로 미국,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호주, 스웨덴, 벨기에 순이다.(아시아인들이여 봉기하라!)
행사기간 동안 750만 리터의 맥주가 소비됐으며, 124마리의 소, 48마리 송아지, 51만 마리의 닭이 안주로 사라졌다. 학세(5만 9천 개)와 소시지(6만 개)는 별도다.
총 5,8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이중 717명은 만취로 인해 치료받았다고 한다. 10만 건의 맥주컵 절도 미수 사건이 있었다.
옥토버페스트는 310,000제곱미터(약 9.4만 평)의 부지에서 개최되고, 화장실은 1천4백 개가 있다. 축제기간 동안 총 325만 킬로와트시(KWh)의 전력이 사용됐는데, 우리나라 가구당 월간 평균 사용량이 223 KWh라고 하니 거의 1만 5천 가구의 한 달 전력 이용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다시 글 첫머리로 돌아가 보자. 독일의 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이 11.8리터, 세계 23위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는 12.3리터로 당당히 17위를 차지했다.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게 25위 이상 순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며, 지금까지 한참 얘기한 독일보다도 무려 6개 순위나 앞서는 기록이다. 한 명의 애주가로서 자긍심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음주로 인한 사건사고, 질병에 의한 사망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건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다. (음주로 매일 13명 사망... / 2018.11.13 / 뉴시스) 뭐든지 지나치면 모자라니만 못하나니.. 적당히 선을 긋고 살아야 하겠다.
<참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