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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Sep 23. 2019

독일 고속도로에 없는 세 가지

아우토반에는 속도제한만 없는게 아니더라

전 세계 운전자들의 성지, 독일 아우토반(Autobahn)


'속도 무제한'으로 잘 알려진 독일 고속도로, 아우토반의 총 길이는 13,341 km다. 중국(130,000 km 이상), 미국(77,000km), 스페인 (17,109km)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길다(독일 통계청, 2019.1).


가장 긴 아우토반은 북쪽 끝 덴마크 국경에서부터 남쪽 끝 오스트리아에 국경에 이르는 7번 도로다(962km).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도로인 경부선(415.3km)보다도 두배 이상 길다. 권장속도인 130km로만 달려도 꼬박 7시간이 넘게 걸린다.

독일 전역을 가로지르는 아우토반




'자동차 전용 도로'에 대한 아이디어는 1920년대 중반 바이마르(Weimar) 공화국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독일은 가오만 있고 돈이 없었던 처지라 본격적인 고속도로 건설은 제1차 대전 이후에 시작된다.  히틀러가 극심한 대공황을 겪고 있던 독일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아우토반을 '이용'하기로 결심하면서부터다.  


아우토반은 나치의 성과물? 우린 속고 있었다.


원래 나치는 고속도로 건설이 '귀족과 유대인들만 배불린다'며 아우토반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아우토반을 당의 선전용으로 활용하기로 한다. 대규모 실업, 하이퍼인플레이션, 1차 대전 배상 책임 등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던 독일 국민에게 달콤한 말들로 아우토반 건설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나선 것이다.


누구나 차로 여행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가?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원하는가?
우리 나치와 함께라면 꿈★은 이루어진다.
1년에 1천 km씩 고속도로 건설하여 부강 발전 이룩하세!



고속도로 건설의 일차적인 목표는 공공일자리 창출. 이를 통해 대공황으로 인한 실업을 해결하고 국민의식을 고양시키려는 목적이었다.(예나 지금이나 땅을 파헤치고 물길을 바꾸는 것(읭?)만큼 일자리 창출과 지지율 상승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게 없나 보다) 혹자는 아우토반이 군수물자 운반에 활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나 주목적은 아니었다. 다만 유사시 활주로로 이용되거나 터널과 도로 옆 숲에 군수물자를 숨겨두는 역할을 했다.


아우토반 건설 현장은 굶주림, 질병, 위험으로 가득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고,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들은 수용소로 보내졌다. 나치는 고속도로 건설로 최소 6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동원된 사람들은 12만 명에 그쳤다고 한다. 실업률을 낮춘 일자리의 대부분은 사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곳이었고, 일반 국민들은 전쟁에 참전해야 했기 때문에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는 죄수와 유대인들이 동원됐다.


고속도로는 1941년까지 겨우 3,800km 정도만 만들어지다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나 나치는 계속해서 '아우토반 건설을 통한 국가 부양'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유통했고, 이를 통해 히틀러는 - 현재까지도 - '아우토반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결국은 성공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불과했던 것을!


 삽질하고 있네

사진 / Wikipedia






제목으로 다시 돌아와서.. 독일 고속도로에 없는 세 가지는 무엇일까?


첫째, 가로등이 없다


밤 시간대 프랑크푸르트 공항 상공에 다다라 시내를 내려다본 사람들이라면 십중팔구 동네가 너무 어둡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분명 독일의 5대 도시 중 하나인데, 경제 수도인데, 독일에서 가장 큰 공항이 있는 곳인데...!? 왁자지껄 휘향 찬란한 불빛을 기대한 사람은 제대로 실망할 것이다. 해가 지면 불야성이 되는 서울과는 180도 다른 풍경이다.


칠흑같이 깜깜한 밤이 되면 차량 전조등에 의지해서만 도로를 달려야 한다. 차로 이웃 나라에 다녀오다가 (독일은 총 9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어느새부턴가 길이 좀 어두컴컴해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독일 국경을 넘은 것이다.


우리 모친 말마따나 '돈도 많은 나라'에서 왜 가로등이 없을까?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돈' 때문이다.


1968년, 교통부 장관이었던 게오르그 레버(Georg Leber)는 자동차 보험사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에 가로등 설치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당시 4,000km 정도였던 아우토반 전체에 가로등을 설치,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이 약 100만 마르크에 육박했기 때문이다.(당시 환율을 따져봐야겠으나 현재 시점에서 단순 계산하면 50만 유로, 약 6조 8천억 원 정도다)


1970년부터는 위험하거나 붐비는 도로 일부에 가로등을 설치하기도 했었으나 고속도로를 확장하거나 새로 짓는 과정에서 가로등 설치는 다시금 배재되었다. 현재 함부르크시의 일부, 프랑크푸르트 공항 근처 일부를 제외하고는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는 고속도로는 매우 드물다.


과연 효율성을 따지는 국민답게 독일인들은 가로등이 차 사고 방지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가로등의 불필요함을 강조한다. 실제 가로등과 차량 충돌사고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논문(영국 역학과 공공 건강(Epidemiology and Community Health) 발표)이 있기도 하다. 불연속적으로 설치되어있고 밝기가 고르지 않은 가로등이 오히려 운전자에게 시각적인 부담을 줘서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둘째, 통행료가 없다


독일 주변 국가가 통행권(Vignette; 비넷) 판매 또는 구간별로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는데 반해 독일의 고속도로는 모두 무료다. 국적이나 독일 거주여부도 관계없다. 우리나라에서 심심하면 한 번씩 마주치는 톨게이트도 물론 없다. (단 7.5톤 이상 화물차에 대해서는 2005년부터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다. 톨게이트가 없으므로 차량 GPS와 휴대전화를 통해 요금이 부과된다 / Toll Collect )


스위스 비넷. 국경 넘어가기 전 휴게소에서 이 딱지를 사서 창문에 붙여야 한다

사진 / lenews.ch


그런데 매년 어마어마하게 드는 유지보수비의 충당을 위해 독일 정부는 수년 전부터 통행료 도입을 추진해오고 있다. 오는 2020년 10월부터 모든 아우토반 이용차량에 평균 68유로, 최대 130유로 상당의 통행권을 판매하고 자국민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으로 보상해 준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주변국들과의 갈등과 더불어 지난 6월 유럽 사법재판소(ECJ)가 이 같은 계획에 'EU 차별 금지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실행은 아직 요원하게 됐다.


자국민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미 수입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내고 있는데 추가로 세금을 더 내라니...! 지금 거두고 있는 세금이나 올바른 곳에 제대로 쓰라는 의견이 많다.





셋째, 속도 제한이 없다


옛날 옛적의 한 자동차 광고가 생각나는가? H사의 신형차가 아우토반을 무섭게 달리는데, 어느새 따라잡은 옆 차 독일 아저씨가 차창을 내리며 따봉을 날리는... 이 광고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우토반 = 속도제한이 없는 고속도로'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KCYHeY168jM

이 광고를 안다면 당신은 아재!


사실 아우토반(Autobahn)은 차(Auto)와 길(Bahn), 즉 찻길이라는 얘기일 뿐 무제한 도로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일부 구간 - 전체 아우토반의 70% - 에 속도 제한을 두지 않는 곳이 존재할 뿐이다.  


무제한 구간에서의 권장속도는 130km/h 지만 말 그대로 권장일 뿐, 주행차들은 저마다의 속도를 뽐낼 수 있다. 계기판을 보면 내가 이래도 되나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또 다들 그렇게 달리니 그다지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B3h2Rw1mHew

"No matter how fast you're driving in Germany , someone is driving faster than you"

톰 아저씨의 독일 아우토반 체험기 / David Letterman Show (2012)



아우토반에서 기록된 최고 속도는 432.59km/h다. 1938년, F1 드라이버인 루돌프 카라시올라(Rudolf Caracciola)가 V12기 통 엔진을 장착한 메르세데스-벤츠 W125로 기록했다. 라이벌이었던 번드 로즈마이어(Bernd Rosemeyer)는 같은 날 페르디난드 포르셰(Ferdinand Porsche)가 디자인 한 V-16 엔진의 아우디 차량으로 최고 기록에 살짝 못 미친 432km/h를 기록했다. (그리고 아쉬운 나머지 한번 더 도전했다가 죽음을 맞는다ㅠㅠ) 자그마치 80년 전의 기록이라니, 대단하다!


최근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아우토반에도 속도 제한(Geschwindigkeitsbeschraenkung; 게슈빈딕카이... 아따 길기도 하네..뒷말은 생략한다)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주행 속도를 120km/h로 제한하면 연간 9%(3백만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속도제한을 둠으로써 고속 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전체 차량 사망사고의 25% 차지) 및 수천 건의 부상사고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독일 정부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아우토반에서의 운전,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통행료가 도입되려면 아직 멀었고, 밤 시간대 운전과 추월 차선인 1차선만 피하면 된다.


어떠한가? 3無 고속도로, 독일의 아우토반. 당신의 스피드 본능을 일깨우는가?






<참고 글>

아우토반/ 나무위키, 아우토반 / 위키피디아, Autobahn / Wikipedia

The myth of Hitler's role in building the autobahn / dw

우리가 알아야 할 아우토반에 대한 상식 / germany.co.kr

 Weniger Licht, mehr Sicht / sz.de

Germany needs to keep its Autobahns free / Bloomberg Opinion

Top 10 Speeds Clocked on the Autobahn / how stuff works

A speed limit on Germany's autobahs / npr.org

On Germany’s autobahns, ‘Geschwindigkeitsbeschraenkung’ is a four-letter word to many / LA Times

정부의 민자도로 건설 계획에 뿔난 독일 국민들 / 스케치북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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