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둥새 Sep 17. 2019

누가 독일의 빵을 맛있다고 했는가?

맛은 없는데 중독성은 있는 독일 빵 이야기

지난해 독일 관광청 한국지사에서 발표한 독일 관광 마케팅 테마는 '독일은 미식의 천국(Germany is a Gourmet's Paradise)'였다. 이 뉴스를 듣고 나를 비롯해 내가 아는 한국 사람들이 모두 코웃음을 쳤다.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니야? 라면서..(얼마큼 성공적으로 관광객을 끌었는진 모르겠다)


독일은 '미식'과는 거리가 먼 나라다. 


마트에 가면 분명 값싸고 질 좋은 음식 재료들이 널렸는데, 독일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 하는지 모르는 게 확실하다. 옛날 척박한 환경에서야 그저 먹고살기 위해 대충 익혀서 뱃속으로 욱여넣었다고 이해해보지만, 왜 오늘날까지...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도 별미로 잘 알려진 슈바인학세(Schweinshaxe, 돼지족발)와 슈니첼(Schnitzel; 돈가스)을 만날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끔씩 안주로 먹는 거면 모를까) 게다가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대부분 짜고 비싸다. 음식 양을 많이 준다는 거 말고는 딱히 칭찬할 만한 구석이 없다. 


독 다니엘은 '그래도 맥주는 맛있어요..'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tvn




외국인이 보기에는 참 먹을 것 없고 심심한 메뉴들 뿐이지만, 여느 나라 사람들이 자국의 음식에 대해 그렇듯 독일 사람들도 자기네들 음식에는 자부심이 강한 것 같다. 특히 주식인 빵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아무리 작은 동네에도 빵집(베커라이, Bäckerei)이 몇 군데씩은 존재한다. 슈퍼마켓에도 항상 빵집이 딸려있다. 상점들이 문을 모두 닫는 일요일에도 빵집만큼은 예외다. 지역/매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이른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 약 3~4시간가량 영업한다.


덧, 독일에서는 종교적인 이유 및 노동자들의 쉴 권리 보장,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일요일에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 게 원칙인데, 빵집은 예외적으로 일요일 영업이 가능하다. 다만, 뮌헨에서는 일요일 빵집 영업시간을 3시간으로 제한했었는데, 최근 뮌헨 고등법원의 결정으로 더 긴 시간 동안 일요일 영업이 가능하게 됐다. (Sonntagabends Brötchen kaufen ist jetzt legal / Zeit )


일요일에도 문 여는 동네빵집들... 배고픈 자들이여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구원하리니!!




그렇다면 독일 빵들은 무엇이 특별할까?


첫째, 종류가 많다. 


독일 전역에 있는 다양한 빵 조합(길드; guild)에서 생산해 '독일빵연구소(Deutsches Brotinstitut)'에 정식으로 등록된 빵 종류는 무려 3,200개나 된다. 이 유서 깊은 독일빵은 201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동네 작은 빵집에서 당일에 판매하는 빵의 종류도 어림잡아 50개 이상은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브레첼은 물론이고, 다양한 종류의 브롯(brot)과 브뢰첸(Brötchen; 작은 빵)이 한가득이다.  밀, 호밀, 딘켈((Dinkel; 스펠트 밀) 등 베이스가 되는 곡물의 종류도 다양한 데다가, 이들을 섞는 비율에 따라, 익히는 방법에 따라, 만드는 모양과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의 빵들이 탄생한다. 독일 사람들의 견과류 사랑도 대단해 참깨, 치아씨, 호박씨, 해바라기씨, 아몬드 등 각종 씨앗들이 가득 담긴 빵도 흔하게 맛볼 수 있다.

독일 사람들도 빵 이름을 다 아는 건 아니라고 한다

이미지 / schulzens.de


빵집 매대 한편에는 샌드위치와 케이크(Kuchen; 쿠헨)도 자리 잡고 있다. 빵, 버터, 햄, 야채를 이리저리 조합해 내놓은 샌드위치들은 투박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의외로 맛이 좋다. 케이크들은 과일과 크림이 가득 올려져 비주얼은 좋으나 결코 우리나라 케이크의 달달한 그 맛을 따라가진 못한다.


크리스마스, 카니발 등 특정 시기에만 판매하는 빵들도 있다. 따라서 빵집에서는 그날그날 다른 종류의 빵들을 만나볼 수 있다. 


(왼쪽부터) 크리스마스 슈톨렌, 카니발 베를리너, 세인트마틴 베크만

사진 / Pixabay, Flickr



둘째, 건강에 좋다


독일빵은 기본적으로 천연효모, 밀, 물의 세 가지 재료로 구성된다(맞다, 맥주 순수령에 의한 그 재료와 흡사하다). 설탕, 버터, 달걀 등이 듬뿍 들어가 우리에게 익숙한 빵들과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효모에서부터 올라오는 시큼털털한 맛과 통곡물(whole grain)의 거칠거칠한 식감이 특유의 시그니쳐라 하겠다. 


'몸에 좋은 건 입에 쓰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독일 빵은 입에 오래 담고 씹어야 겨우 구수한 맛이 올라온다. 맨 처음 한입을 베어 물면 (딱딱해서 잘 뜯어지지도 않는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뭐야 이거?' 하다가 목구멍으로 넘길 시점에서야 겨우 '음 뭐, 먹을만하네'라는 말이 나온다. 은근히 중독성 있다. 겉보기엔 딱딱하고 차갑지만 겪다 보면 익숙해지는 독일 사람들과도 흡사하다. 


독일빵이 치아(dental)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빵에 들어있는 영양분이 특별한 역할을 하기보다는 빵의 거칠거칠한 표면이 칫솔 역할을 해 치석을 없애주고, 빵을 오래 씹으면서 생기는 침이 입안의 산을 중성화시켜 튼튼한 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딱딱한 빵을 씹는 운동이 턱관절에도 좋단다. 


실제 둘째 유치원에서는 아이들 아침 도시락으로 '건강하지 못한' (미국식) 식빵과 크롸상을 싸오지 말라고 했었다. 또한 '학부모의 밤(엘턴 아벤트;Eltern Abend)'에 방문한 동네 치과 의사는 요즘 아이들이 딱딱한 빵 보다 달고 부드러운 빵을 즐겨찾기 때문에 턱과 이 건강이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그럼 풀떼기와 딱딱한 빵만 먹으란 말이냐?!  ㅇㅇ 독일 아이들은 잘들 먹는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독일빵집을 표방하는 제과점들이 많아졌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단연 '건강한 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파는 독일빵이 더 맛있다는 건 안 비밀. 아무래도 현지화를 시켜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독일빵은 더 부드럽고, 더 달다. 





최근 프랑크푸르트 인근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빵집이 생겼다. 목도 좋은 데다 맛도 괜찮아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소보로빵, 팥빵, 크림빵, 완두앙금빵, 소시지빵 등 전통(?) 한국 빵집다운 메뉴부터 딸기 생크림 케이크, 초콜릿 케이크 등 한국의 힙한 카페 부럽지 않게 다양한 케이크를 판다.


보통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는 주 고객이 한인이기 마련인데, 여기에서는 독일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빵은 고로케다. 까슬까슬하면서도 촉촉한 빵 표면을 한 입 베어 물면, 짭짤한 고기 야채 속이 한가득 입을 채운다.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괜찮고 출출함을 잠시 채워줄 간식으로도 제격이다. 커피든 탄산이든 곁들이는 음료도 아무거나 상관없다. 아아. 땡긴다 고로케. 






독일에 살다 귀국한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빵이다. 실제로 내가 독일에 살게 됐다니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독일 빵이 최고'라며 부럽다고들 했었다. 


진한 단맛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 제과점 빵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면, 오래도록 '씹고 뜯고 맛봐야' 겨우 즐길 수 있는 독일 빵은 잔잔한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는 - 아직까지는 그 빵의 참맛을 알지 못하지만 -  굳이 선택하라면 로겐 브롯(Roggenbrot; 호밀빵)보다는 허여 멀건한 밀가루 식빵을 선택할 테지만 - 한국에 돌아가 고로케와 초코 소라빵과 버터크림빵을 원 없이 먹다 보면 다시금 이 딱딱하고 거칠거칠하고 심심한 맛의 독일 빵이 생각날 것 같긴 하다. 


독일빵, 은근히 중독성 있다니까!?


둘째의 Lieblingsbrot, 브레첼(Brezel)










이전 07화 독일 술. 맥주 말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