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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Nov 14. 2019

독일 술. 맥주 말고,

세상은 넓고 술은 많다

독일에는 음료수만 전문적으로 파는 음료전문마트(getränkemarkt)가 있다. 


맥주, 와인, 물, 주스, 에너지 드링크, 청량음료 등 다양한 음료들을, 얼핏 어림잡아봐도 몇 백종 이상 취급한다(단, 유제품은 없다). 짝 단위로도 판매하며, 낱개로도 구매할 수 있다. 

이곳은 주당들의 천국!



이곳에서 내가 즐겨 찾는 곳은 당연하게도 와인과 양주 코너. 


유럽 각지에서 건너온 알코올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종별, 생산지별로 아름답게 나열되어 있는 술병을 보고 있노라면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매주 바뀌는 할인 품목을 찾아 득템을 노리기도 한다 - 술 좀 마셔봤다고 자랑할게 아니었다. 세상은 넓고 술은 많다.


이번 화에서는 흔해 빠진 독일 맥주 말고 여기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된, 숨겨져 있던 보석과 같은 술들을 소개해드릴까 한다.


옳소! 사실 난 맥주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배만 부르고 잘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1. Hugo (후고)


식욕을 자극할 목적으로 마시는 식전주(Apéritifs)다.


2005년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처음 개발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현재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즐겨 마시는 칵테일로 자리매김했다. 작은 규모의 식당에서도 아페롤 스프리츠(Aperol Spritz)와 함께 쉽게 접 할 수 있는 칵테일이다. 


후고는 스파클링 와인* + 엘더플라워 시럽** + 민트 잎 (+ 얼음 + 탄산수 + 라임)의 심플한 조합으로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옅은 탄산, 달콤한 맛과 상큼한 민트의 조합이 과연 식욕을 자극한다!


* '샴페인'이라는 프랑스 지역명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스파클링 와인은 독일에선 젝트(Sekt), 이탈리아에서는 프로세코(Prosecco)라고 한다.


** 엘더플라워(Elderflower)는 '딱총나무'의 꽃으로 유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음료 재료 중 하나다. 바이러스 증식을 늦추고 박테리아를 막아주는 효능으로 감기약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차(tea)로도 마시고 잼으로도 만들어 먹는다. 독일어로는 홀룬더블뤼텐(holunderblüten).


자, 후고로 입맛을 돋우웠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한번 마셔보자.



2. Riesling Wein(리즐링 와인) 


독일이 원산지인 리즐링(Riesling)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 중 하나다.  



리즐링은 토질과 기후 등 자연적인 조건으로 독일 중서부에 위치한 라인가우(Rheingau)와 모젤(Mosel) 지방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다. 


기본적으로 단 맛을 포함하고 있어 와인 입문자부터 고수까지 누구나 접하기 쉬우며, '화이트 와인 = 생선'이라는 공식을 깨고 육류까지 커버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특성을 지녀서 '화이트 와인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Trocken - Halbtrocken - Feinherb / Lieblich의 순으로 단맛이 더 강해지는데, 우리 입맛에는 가장 드라이한 형태인 Trocken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당도를 느낄 수 있다.  


와인 잘알못으로서 어느 와이너리의 어느 와인이 가장 뛰어나다고 추천할 수는 없지만, 실패 없이 괜찮은 리즐링 와인을 고르는 아주 심플한 방법만은 알고 있다. 


바로 와인 병목의 독수리 마크. 


독수리 모양은  ‘독일 우수 생산자 연합 (VDP ; Verband Deutscher Prädikatsweingüter)'에 가입되어 있는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을 뜻한다. 


1910년 설립 이후 독일 전체 1만여 개의 와이너리 중 현재 200여 개의 와인 생산자들이 가입돼 있다. 연합에서 와이너리에 먼저 초청(invitation)을 하는 형식으로만 가입할 수 있어서 가입 자체가 매우 까다롭다.  

유사품에 속지 마세요. 독수리만 기억하세요! / @Medium.com


VDP 안에서도 또 등급이 나뉘는데, 더욱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리즐링의 산지, 특성, 종류, 역사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화이트의 왕 리슬링 / 세계일보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리즐링 와인은 3유로대부터 30유로대까지 다양한데( 20~30유로가 넘어가면 상당히 고급으로 여겨진다), 독수리 마크가 있는 와인은 최소 7.99 유로다(이 가격 이하의 독수리 와인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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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가우 지역은 관광지로도 매우 훌륭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라인 강변을 따라 약 1시간 가량 달리는 길목 곳곳에 유서 깊은 와이너리가 있다.


이들 와이너리는 매년 포도가 한창 익어가는 여름 무렵부터 진행되는 라인 강변 음악축제(Reingau Musik Festival)의 무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숀 코너리 주연의 '장미의 이름으로' 촬영지였던 와이너리(Kloster Eberbach)도 있다. S모사의 회장님이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기념하는 만찬에서 마셨던 와인도 이 지역 와이너리(Balthasar Ress)에서 생산됐다.


와이너리마다 투어, 시음 및 판매까지 하고 있으니 기회가 되면 한번 들리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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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블렌츠(Koblenz)까지 이어지는 라인강의 중간 지점에는 '뤼데스하임(Rüdesheim am Rhein)'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얕은 언덕인 니더발트(Niederwald)로 이동한다. 올라가는, 또는 내려오는 길에 눈앞에 펼쳐지는 강과 포도밭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봄과 여름이면 초록색 싱그러운 포도 이파리와 알알이 영근 포도알들을 볼 수 있고, 가을이 되면 포도잎이 샛노랗게 변해 흡사 유채꽃밭을 보는 느낌도 난다. 언덕 위 게르마니아(Germania) 여신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 참새 골목에서 리즐링 와인을 마시는 코스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조금 더 서쪽으로 이동하면 우리에게도 너무나 유명한 '로렐라이(Loreley 또는 Lorelei)' 언덕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관광지까지 소개하면 너무 길어지니 이쯤에서 그만. 


다음 술은 브랜디다.



3. Asbach (아스바흐)



위에서 언급한 마을 뤼데스하임에서 생산된, 독일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브랜디(Brandy)다.


브랜디는 과일주를 증류하고 숙성시켜 만든 술을 말하는데, 이곳에서는 당연히 포도를 이용해 만든다. 


늦가을에 푹 익은 단풍을 닮은 바알간 색이 시각을 자극하고, 바닐라, 초콜릿, 나무를 닮은 부드러운 향과 맛도 일품이다.


아스바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디이기도 하다. 약 120년의 역사를 지녔다.


후고 아스바흐(Hugo Asbach)라는 증류주 제조업자가 프랑스에서 익혀온 코냑 생산 방법을 바탕으로 1892년부터 만들어졌다. 1924년에는 여성고객을 타깃으로 한 브랜디 초콜릿을, 1951년에는 브랜디를 첨가한 커피를 선보였다. 이렇듯 다양한 베리에이션들은 뤼데스하임에서, 또는 마트에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아스바흐는 8년 산, 12년 산, 오리지널(Uralt), 식전주, 스페셜 에디션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오리지널 아스바흐(Asbach Uralt) 경우 알코올 도수는 36%, 가격은 12.99 유로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있는 마트 할인행사에서 구입하면 9.99유로에도 살 수 있다.)


다양한 음용법이 있으나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좋고, 심플하게 콜라와 섞어서 마셔도 좋다. 


잠 안 올 때 분위기 있게 두어 모금 마셔주면 꿀잠 자는데도 도움이 된다. 



4. 페더바이서(Federweisser 또는 Federweißer)



초가을 한철만 나오는 귀한 술. 


갓 수확한 포도를 가지고 만든 스파클링 와인으로, 특유의 청량감과 높은 당도가 특징이다. 


효모가 깃털(Feder)처럼 하얗게(Weisse)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청포도를 가지고 만드나 적포도(Federroter)로 만들거나, 그 둘의 중간 정도의 로제(Rose) 페더바이서도 종종 눈에 띈다. 보통 양파 케이크(zwiebelkuchen)와 곁들여서 마신다. 


당분 함유량이 많아 알코올 느낌이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알코올을 함량하고 있다. 약 5~10%로, 일반적인 와인(11~13%)보다는 낮지만 맛있다고 홀짝홀짝 마시다가 취하기 십상이다.


페더바이저는 유통 중에도 계속 발효 상태에 있다. 발효 중에 생성되는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완전히 밀봉하지 않기 때문에 운반하는데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반드시 병을 세운 상태로 옮겨야 한다. 만약 쇼핑백 또는 차 안에서 병이 기울어지거나 쓰러지기라도 하면... 대환장 파티가 시작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페더바이서는 이동수단과 냉장시설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와이너리 근처에 사는 사람들만 맛볼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해당 시기만 되면 독일 전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먼 외국에서 페더바이서를 접한다는 건 아직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9월 전후로 독일에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꼭 마셔보시라고 권해드린다. 


페더바이서는 익혀 먹는 재미도 있다. 

전문가들은 원하는 당도에 도달할 때까지 상온에 보관하는 것을 추천한다. 너무 찬 곳에서는 발효가 중지되기 때문이다. 알코올 도수도 발효가 진행됨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올라간다(효모가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뱉어내는 원리다).



5. 콘(Korn)



가성비 최고의 술이다. 


밀, 호밀 등을 원료로 한 증류주이며, 알코올 함량에 따라 Korn (32%), Kornbrand (37.5%),  Doppelkorn (38% 이상)으로 구분된다. 


베트남 보드카인 넵 머이(Nep Moi)와도, 중국 백주와도 비슷한 느낌의 향과 맛이 난다. 알잔으로 마셔도 좋고, 맥주와도 찰떡궁합*이다


*독일에서 폭탄주는 'Herrengedeck', 직역하면 '남자들의 메뉴'라고 불린다. 보통 맥주(Pils)와 독주(위스키 등)의 조합을 총칭하는데, 가장 흔한 조합은 맥주 + 콘이다. '여자들의 메뉴(Damengedeck)'도 있는데, 이는 스파클링 와인과 탄산음료의 조합이라고 한다. (난 차라리 남자 쪽을 택하겠다.)


콘은 한국인 주재원들이 회식할 때 비용 절감을 위해 많이 찾는 술이기도 하다. 


관세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독일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소주가 꽤 비싸게 팔리는 편이다. 한국에서 2천 원짜리 소주 한 병이 이곳 한인 마트에서는 4유로 상당(약 5.5천 원)에 유통되고, 식당에서는 10~15유로  이상을 받는다. 


콘은 0.7L 용량에 약 5~6유로선이다. 소주 한 병 값으로 콘을 두어 병 살 수 있으니 가격 면에서 뿐만 아니라 용량이나 알코올 도수로 따져 봤을 때도 매우 효율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소주를 대체할 만한 고마운 술이라 하겠다. 


혹자들은 '부랑자나 먹는 술' 이라며 평가절하 하지만, 딱 취하려는 게 목적이라면, '콘' 만한 게 없다!



6. 예거마이스터(Jägermeister)



식전주로 시작했으니, 식후주(Digestifs) 소개로 마무리해야겠다.


학교 다닐 때 이태원에서 좀 놀아보셨다고 하는 분들은 예거마이스터라는 이름이 익숙하실 게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트레이트보다는 에너지 드링크(ex. 박카스)와 섞은 형태의 '예거밤(Jägerbomb)'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다. 


예거마이스터는 양조장이 아닌 식초 회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주류에 관심이 많았던 식초 회사의 아들, 쿠어트 마스트(Curt Mast)가 사업을 물려받으며 비로소 이 술이 탄생하게 된다. 56가지 허브와 향료를 섞어 만드는데, 1년 이상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생산 첫해인 1935년부터 지금까지 80년 동안 레시피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다양한 허브가 첨가되어서 그런지 술보다는 약초에 가까운 맛이다. 실제로 초기에는 소화제와 기침약으로 이용됐다. 독일의 국민 소화제인 '이베로가스트(Iberogast)'와 맛이 무척 닮았다. 체코의 대표 식후주인 베체로브카(Becherovka)와도 비슷한 맛이다.


'사냥(Jäger)의 대가(Meister)'라는 의미를 가진 이 술의 이름은 쿠어트의 취미가 사냥이었던 데에서 기인한다. 사업수완이 좋았던 그가 당시 동네에 주둔해있던 나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부러 강하고 공격적인 이름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추후에는 당연히 발뺌하지만... 글쎄?) 


단단해 보이는 초록색 네모 다란 병에는 뿔이 잔뜩 달린 사슴 머리가 그려져 있는데, 이 로고 때문에 한동안 술의 원료 중 하나가 사슴 피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예거마이스터의 알코올 농도는 35%이며, 0.35L에 6.69유로, 0.7L는 11.99 유로다. 

스트레이트로 마실 때는 엄청 차게 마시는 걸 추천한다. 


이외에도 아펠바인(Apfelwein; 사과와인), 글뤼바인(Gluewein) 등 특징적인 다른 독일 술들도 있으나, 나의 개인적 취향과는 좀 멀기 때문에 술 소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한참 신나게 독일 술 추천하고 나서 무슨 헛소리냐고 할 진 모르겠지만, 

술 좀 마셔본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최고의 술은 역시 소주다. 



여기저기 안 어울리는 데가 없으며, 조금만 마셔도 적당히 취기가 올라오는 게 딱 술맛 나는 술이다. 


최근 정부에서 '음주 미화 방지'를 위해 여자 연예인들의 소주 모델 기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부질없는 짓이다. 연예인 대신에 해골을 그려놓는다고 해도 마실 사람은 다 찾아 마시게 되어 있다.



냠. 오늘은 아껴놓은 순대에 소주 좀 마셔줘야겠다.






<참고글>

화이트의 왕 리슬링 / 세계일보

10 Things You Should Know About Jägermeister / Vinepair

16 Things You Didn’t Know About Jägermeister / Thrillst

Hugo(Cocktain) / Wikipedia

Wenn der Traubensaft zu rauschen beginnt / Deutsches Weininstitut

가을 한정판 와인 페더바이서 / Daniel-Asset

Korn (liquor) / wikipedia

https://asbach.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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