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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Oct 31. 2019

폴란드 아줌마 J

그녀의 까칠함은 어디서 기인한걸까?

J는 멋진 악센트의 영국식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폴란드 출신 아줌마다.

 

이 모델이 머리가 조금 더 짧고 나이 들면 비슷할 듯. 상당한 미녀다. 

출처 : desktopnexus


십 대 아들 둘을 키우는 J가 독일에 온지는 10년이 넘었다. 거주 기간만큼 독일어를 잘 하진 못한다고 겸손해 하지만, 대화 도중 중간 'and'를 'und'로 잘못 말하는 경우가 허다한 걸 봐서 영어만큼 독일어도 잘하는 게 틀림없다.


우리는 월요일 영어 수업 (할매할배들의 나라 참고)에서 만났다. 당시 읽었던 책은 영국 작가가 쓴 로맨스 소설이었는데 영어 실력과는 별개로 영국에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잘 와 닿지 않는 생소한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책이 너무 어려워',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별로 재미없는 거 같아'라고 투덜거리는 독일 할머니들을 보며 J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면서 '이 표현은 너무 아름답지 않니?', '내가 런던에 있었을 땐 말이야, '라면서 영국 유학시절을 회상했다.




매 수업 시간마다 그녀는 할머니들과 언쟁을 벌이곤 했다.


책과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도 J는 갑자기 독일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독일은 너무 재미가 없어. 애들이 학교 끝나고 나면 할 것도 없고, 주말에 어디 다닐 데도 없잖아? 영화를 한편 보려고 해도 제대로 된 영화관도 없고,,, 상영시간은 왜 이러니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시설에 비해 돈도 비싸게 받고. 영화관 같은 건 결국 공공재나 다름없는데 더 저렴하게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야? 


특히 십 대 청소년들에게 독일은 최악이야. 할 일이 없으니 술 마시고 깽판이나 치고 다니는 거지. 주말에 공원에 나가봤니? 술 한 병씩 든 애들이 지들끼리 하릴없이 벤치에 앉아 시시덕거리고만 있단 말이야.


반격하는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고 하고픈 말을 아낌없이 하는 J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싸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강사가 중재를 하고 나서야 겨우 다음 주제로 넘어가곤 했다.





독일 할머니들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아니! 일회용 접시나 도구는 가져와봤자 소용없어. 손도 안 댈걸? 제대로  다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수업 날에 포트럭(Potluck) 파티를 제안받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나에게 걱정 어린 조언도 해준다.


독일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알면 남들도 다 아는 줄 안다니까. 정말 불친절한 사람들이야. 너 파싱(Fasching)이라고 들어봤어? 아이고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건 카니발이랑 똑같은 축젠데... 그리고 새해 전날 밤에 독일 사람들은 보통  불꽃놀이를 하는데....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어리바리한 나에게 J는 이런저런 정보를 주며 어떻게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고 하는 친절함도 갖추고 있었다(실제 A4지 7장에 달하는 생활 정보를 정리해 보내주기도 했다!)


독일 사람들은 나치 시절 이야기를 마치 포르노(porno)처럼 여긴다니까?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조차 없어. 자기네들이 잘못해놓고 왜 그러는지..


그렇다. 그녀는 독일을 싫어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가 J가 폴란드 출신이라는데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초록색이 독일, 주황색은 폴란드. 옆에 붙어있으니 사이가 좋아 보인다.

출처 : Wikipedia



 폴란드와 독일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언어, 인종, 종교, 문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양국 간 공통점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오히려 폴란드와 독일 - 신성로마제국, 독일 기사단, 프로이센 등 이름은 바뀌지만 결국 지금의 독일 - 은 1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씹고 물고 뜯고 화해했다가 또다시 싸우는 과정을 지루하게 반복해왔다. 다음과 같은 전설에도 양국의 비우호적인 관계가 잘 드러난다.


8세기, 크라쿠프(Kraków; 폴란드의 옛 수도)의 공주 반다(Wanda)는 아버지(Krakau) 뒤를 이어 폴란드의 여왕이 된다. 반다 여왕이 다스리는 폴란드는 태평성대를 누렸고, 여왕의 지혜와 용맹, 그리고 미모는 나라 밖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수많은 왕자들이 구애했지만 여왕은 모두 거절한다.

 어느 날, 뤼딩어(Rüdiger)라는 독일의 폭군이 폴란드를 침입한다. 반다 여왕은 직접 군을 이끌고 나가 적군들을 마주한다.  이 자리에서 독일군들은 여왕에게 한눈에 반하여 싸움을 거부해버린다. 전쟁 없이 패한 뤼딩어는 자살하고, 반다 여왕은 비혼 상태로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았다.


또 다른 엔딩도 있다. 

리티기어(Rytygier)라는 독일 왕자가 반다 여왕에게 구애를 한다. 반다는 거절하고, 그 분풀이로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한다. 리티기어는 전투에서 죽었으나, 반다 여왕 또한 비투엘라 강에 스스로 몸을 던진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앞으로도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어느 버전이든, 양국의 관계가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나의 미모가  나라를 망치고 있구나.. 에잇!  @Wikipedia







폴란드의 본격적인 역사는 10세기부터 시작되는데, 초기 폴란드-신성로마제국의 관계는 향후에 비하면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고 한다. 서로보다는 더 위협적인 적들이 내외부에 도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전쟁, 대홍수, 대튀르크 전쟁 등에서 서로 동맹을 맺고 공통의 적에 대항해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현재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 왕국(1701-1918)과는 내내 갈등을 겪었다. 두 나라의 악감정은 주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폴란드는 한때 동유럽의 최강국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잇따른 전쟁과 내부 분열로 국력이 약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호시탐탐 폴란드를 노리던 이웃 나라들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3국은 합심해 야금야금 폴란드 땅을 나누어먹기 시작하고, 결국 1795년부터 폴란드는 3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끊임없는 독립운동에도 불구하고 폴란드가 다시금 독립하게 되는 시점은 무려 123년이 지난 후인 1918년이다. 그마저도 자생이 아니라 세계 1차 대전이 끝나면서 당시 미국 대통령 윌슨이 주장한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서다.


독립의 기쁨도 잠시,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입하면서 제2차 대전이 발발한다. 뒤이은 소련의 침입으로 폴란드는 다시 한번 분할 점령되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이 전쟁으로 폴란드계 유대인 300만 명을 비롯해 폴란드인 600만 명이 사망하고, 수도 바르샤바는 90% 이상 파괴된다. 아직까지도 복구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 악명 높은 홀로코스트인 아우슈비츠도 폴란드에 위치한다. 무식한 나는 아우슈비츠가 여태 독일에 있는 줄 알았다


1945년 해방을 맞은 폴란드에는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다. 그리고 1989년, 폴란드 인민공화국은 붕괴되고 폴란드는 마침내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지금의 모습이다.


간략하게나마 폴란드 역사를 살펴보니, 어라? 기시감이 든다.

폴란드의 아픈 역사가 마치 우리나라의 그것과도 같다.  


독일 일간지 슈피겔(Spiegel)은 폴란드인의 특별한 애국심(exceptional patriotism)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3국의 점령기를 거치면서 굳건해졌다고 설명하며, 폴란드-독일 관계를 한 마디로 '피가 낭자한'(bloodshed) 관계라고 정의하고 있다. 폴란드를 한국으로, 독일로 일본으로 바꿔도 충분히 말이 된다. 





현재 독일에는 약 3백만 명가량의 폴란드인이 살고 있다. 선조가 폴란드인인 폴란드계 독일인, 이민 와서 시민권을 취득한 구(舊) 폴란드인, 폴란드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이주인들이 모두 포함된 수치다. 통계마다 수치는 약간씩 다르나 터키(3.7%)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약 1.9%) 소수 민족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폴란드는 18세기 프로이센의 지배하에 있을 때부터 국경 지역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됐고, 종전 후 국경이 일부 변경되며 독일계 폴란드인, 또 폴란드계 독일인들의 국적 변경이 다수 이루어졌다. 1980년대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약 30만 명의 폴란드인이 서독으로 이주해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 독일은 또다시 경제적인 이유로 이민자들을 환영하게 됐는데, 2004년 폴란드가 EU에 가입하면서 외국으로의 이민은 더욱 손쉬워졌다(2004년 한 해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로 이주한 폴란드인은 약 2백만 명에 달한다). 이후 독일로 유입된 폴란드인 숫자는 더욱 증가한다.


그리고 여느 이민자들이 보통 그러하듯 대부분의 폴란드/동유럽 이민자들은 언어의 장벽과 이질적인 문화 때문에 주로 보통의 독일인들이 기피하는 일에 종사하게 된다. 남자들은 농장, 건설현장 등 힘을 쓰는 일에, 여자들은 청소도우미, 오페어(Au Pair; 보모) 등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학력이 높아 전문 직종에 근무하는 인력들도 있다.)




 J는 틈날 때마다 본인이 지식인 집안에서 자란 엘리트라는 사실을 자랑하려고 애썼다.  


폴란드에는 아동용 독일어 책이 없어. 그래서 나는 영어/독일어/폴란드어로 된 책을 집필하고 있단다. 출판사와 이야기 중에 있어,


라던가,


우리 엄마는 프랑스 접경지역에 살았던 유년시절부터, 의사로 활동했던 현역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폴란드 문화를 설명한 책을 쓴 적이 있어.


또는,

 

우리 남편은 XXX 은행의 임원으로 있는데...


라며 본인은 그저 그런 이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애써 강조하며 안물안궁한 내용에 대해서도 TMI을 남발하곤 했다.


타국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자존심인지 괜한 자격지심의 발로였는지 모르겠다. 나름의 생존방법 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외국으로 건너간 초기 한국인 이민자로부터 나타나는 보편적인 (부정적인, 또는 밑바닥의) 이미지와 그걸 깨고자 하는 1.5세 또는 2세들의 열망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언어는 짧고, 손재주나 산수계산은 빨라 소규모 슈퍼마켓(Grocery Store) 세탁소를 주로 운영했던 부모님 세대와, 그 밑에서 더 배우고 자라 비로소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았는데, 이민자 출신 성분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자식 세대들.


아니면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에 대입해보면 좀 더 쉽게 설명이 될까? 

분명 가해자였던 그들이, 역사의 오점을 남긴 놈들이, 아직도 잘 먹고 잘 살면서 우리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허탈함. 뿌리깊은 곳에 아직도 우월함을 가지고 있으며 타 민족을 무시하는 자만심.


비록 일본과는 달리 독일 대통령과 총리는 매년 홀로코스트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있지만, 역사적 앙금과, 현실 세계에서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하는 J의 입장은 분명 다를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켜켜이 쌓여온 갈등, 미움, 상처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기에.




매 수업 시간마다 할머니들과 언쟁을 벌이던 J는 결국 수업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자체 휴강한 후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제 차 한잔 하자고 했는데, 그 언제가 언제가 될 진 모르겠다.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후인 지금, 이제 만나면 험담 좀 함께 나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참고 글>

폴란드인 감동시킨 독일의 사죄, 독일 통일을 앞당겼다 / kbs news

A History Of Betrayals / spiegel

'Germany Needs Immigrants'/ spiegel

Germany–Poland relations / wikipedia

Princess Wanda / wikipedia

Princess Wanda / naked history

독일-폴란드 관계 / 나무위키

폴란드의 역사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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