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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Oct 12. 2019

세계적인 철학자는 왜 독일에서 나왔을까?

이 모든게 날씨 때문이다

닷새째 비가 내린다. 


쏟아붓기도 하다가,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기도 했다가..

하루 종일 빗줄기가 끊이지 않은 날도 있었고, 간간히 햇살이 비치던 날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하늘이 '삼일 굶은 시애미상'을 하고 있는 건 매한가지다.


드디어 겨울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독일은 북위 47~55˚의 고위도에 위치해있다. 사할린섬과 비슷한 위치다. 프랑크푸르트의 위도가 50도. 서울의 위도가 37도이니, 상당히 차이가 난다.


따라서 겨울에는 해가 더 늦게 뜨고 일찍 진다. 10월 말에는 서머타임이 해제되므로 해는 더더욱 일찍 진다. 

겨울철 평균 일출시각은 오전 8시, 일몰 시각은 오후 4시 반. 8시간가량의 짧은 낮을 보내면 두 배 이상되는 긴 밤이 온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엔 그냥 하루 종일 밤이다. 


독일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위쪽에 위치해있다.

Germany-South Korea Relations / Wikipedia



여느 서부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일은 편서풍과 대양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겨울철은 온화하고 여름철은 비교적 서늘하다. (물론 바다를 끼고 있는 북쪽 지역과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는 남쪽 지역은 또 다른 특성을 보인다)


문제는 습도다. 여름에는 고온건조, 겨울에는 저온 다습해 우리나라 날씨와 정반대의 특성을 보인다. 

겨울 평균 기온이 0도 전후로 비교적 온화한 반면, 습도는 약 80% 정도로 무척 높은 편이다. 습도가 높으면 체감 온도는 훨씬 낮아진다. 공기 중 수분이 냉기를 더 확실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습기는 한기를 머금고 뼛속까지 스며든다. 기온이 높다고 방심하면 제대로 앓아누울 수 있다. 


코와 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가끔은 시베리아보다 더 낮은 기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반짝 추위는 그나마 양반인 편이다. 일주일 정도면 잦아들기 때문이다. 독일의 겨울은 장장 반년 동안 지속된다. 지독하기 짝이 없다. 독일 사람들도 겨울을 '글루미 시즌(Gloomy Season)'이라며 표현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올해도 8월 말부터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많이 나기 시작하다가, 반짝 인디언 서머가 온 후 9월 중순부터는 다시 10도 남짓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다. 패딩점퍼는 진즉에 꺼내 입고 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비타민 D가 항상 부족하다.


기억나는가? 초등학교 때 배운 비타민의 종류와 효능. 부족하면 구루병에 걸린다는 비타민 D.  음식으로 보충해야 하는 비타민 A, B, C와 달리 비타민 D는 햇빛을 쬐면 저절로 생성된다고 했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 부족할 일이 거의 없다고도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독일 겨울엔 해를 볼 일이 없으니 비타민D도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2016년 Health Monitoring의 저널에 따르면 독일 성인 30.2%가, 특히 겨울철에는 50% 이상이 비타민 D 부족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 약국에서는 비타민 D 제품이 한 코너 가득 진열되어 있다. 종합 비타민에도 비타민D의 함유량이 꼭 강조된다.


참으로 다양한 비타민 D 제품들




해가 귀하니 그만큼 소중히 여긴다. 해가 뜨면 모두들 해바라기가 된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던 봄, 둘째의 유치원 친구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아이 엄마가 나를 양지바른 곳에 앉히더니 "햇빛은 옷을 통과하지 못한대. 그래서 이렇게 직접 쐬어야 해"라면서 자기 셔츠를 팔 끝까지 걷어 부친다.

급기야는 마당에서 놀던 자기 아이를 불러 상의를 훌러덩 벗기고 일광욕을 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정통으로 비치는 해를 맞으며 기미와 잡티를 걱정할 뿐이었지만.. 


한 겨울에도 해가 뜨면 담요 하나만 들고 테라스에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식당 야외 좌석에 사람들이 꽉 차있다고 발길을 돌리지 말자. 안쪽에는 자리가 텅텅 비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리고 태양을 피하고 싶어 안쪽에 자리 잡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아시아인들이다.) 이쯤 되면 해님을 영접하는 수준이다.




실존주의의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계절은 분명 겨울임에 틀림없다. 

왜? 우울하니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4부를 탈고한 시점이 1월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지 않은가?


신도 죽었고 해도 죽었고


계몽주의 칸트는 평생에 걸쳐 항상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한 걸로 유명하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산책 시간이 3시 30분이었을까? 

겨울철, 아직 해가 떠있을 시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믿는다.)


해 지기 전에 산책하는 칸트

Lithography, 1924. Reproduction. Koenigsberg museum



이밖에도 헤겔, 쇼펜하우어, 막스, 엥겔스, 하이데거 등.. 철학과 사상은 잘 몰라도, 이름은 한 번씩 들어본 유명 철학자들, 왜 하필 다들 독일 출신이었을까? 


다소 억지스럽지만, 이들의 철학과 사상이 나온 배경에는 독일의 긴긴 겨울밤이 있지 않았나 싶다.


깊은 밤만큼 생각도 감성도 깊어지는 법. (그래서 연애편지도 보통 밤에 쓰지 않는가!)

비 오는 겨울밤 - 진리를 찾아, 자아를 찾아, 그리고 영영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을 봄을 그리면서 - 그들은 그렇게 고뇌했으리라.




독일의 지독한 겨울은 비로소 부활절을 맞으며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3월 말부터 간간히 해가 비치면서, 바람이 한결 따뜻해진다.

겨우내 잘 살아남았던 나무들로부터 파릇파릇 연두색이 보인다. 형형색색의 꽃도 여기저기 피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지고, 할머니들은 총천연색의 깔맞춤 패션으로 마실을 다닌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된 것이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있을지니! 


없던 신앙심이 저절로 생길 정도로 독일의 봄은 아름답다.


꽃이 좋아지게 된 이유는 독일의 겨울을 겪어서이다. 결코 나이 들어서가 아니다.




독일에 온 이래 두 번의 여름과 두 번의 겨울을 지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겨울을 지내야 할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또로록 빗방울 소리를 안주삼아 막걸리 한잔을 즐기던 나였지만, 꽃노래도 하루 이틀이지..

독일의 겨울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태세이다. 


겨울이 막 왔는데, 벌써 봄을 그리고 있다.





<참고글>

습도 / 나무 위키

Clamate - Germany / Climates to travel 

Meteocast

World Weather & Climate Information

Geography of Germany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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