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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Oct 21. 2019

독일 사람 셋이 만나면 클럽을 만든다?

독일인들이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


Treffen sich drei Deutsche, gründen sie einen Verein

"독일 사람 세명이 만나면 클럽을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디 물 좋은 나이트를 상상하고 있었는가? 실망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의 클럽은 페어아인(Verein). '함께 모이다'라는 뜻의 vereinen에서 유래한다. 영어로는 단순하게 클럽, 우리나라 말로는 협회나 동호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Verein이라는 단어는 1774년도에 처음 독일 사전에 등장했다. 초기 클럽들은 독일어 교육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뒤로는 보다 나은 노동환경을 쟁취하기 위한 클럽, 즉 노동조합(Arbeitervereine)이 생겨났고 19세기 중반부터 산업화 및 도시화와 더불어 '페어아인'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현재 독일에는 약 60만 개의 클럽이 존재하며(2014년에는 무려 63만 개에 달했다고 한다), 약 3천6백만 명의 독일인, 즉 두 명 중 한 명 꼴로 적어도 하나 이상의 클럽에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클럽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농구, 배구, 축구, 테니스, 유도, 자전거, 체조, 승마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클럽이 전체의 22.6% (약 9만 개)로 가장 많다. 그 외에도, 생각이 닿는 범위 - 자선, 환경, 인권, 정치, 성별, 언어, 예술, 취미, 자원봉사, 학부모 모임 등 -의 모든 주제에 대한 클럽이 존재한다.


독일에서 가장 큰 클럽은 자동차 동호회 'ADAC(Allgemeine Deutsche Automobilclub)'다. 1903년도에 창설되어 현재 2천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된 클럽은 1765년에 만들어진 '애국 사회 함부르크(Patriotische Gesellschaft Hamburg)'다. 시민들의 공공선(common good)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는 클럽이다. 가장 오래된 스포츠 클럽은 1888년에 창설된 'BFC Germania'이라는 축구 클럽이고, 비공식적인 최고(最古) 클럽은 '슛첸페어아인(Schützenverein)라는 궁술/사격 클럽으로, 그 기원이 12세기부터라고 한다.


상상 그 이상의 특이한 목적을 가진 클럽들도 존재한다. 아래에서 잠깐 살펴보자.


겨울 호수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베를린 물개(Berlin Seals)' / 환경보호클럽 '로빈우드(Robin Wood)'
다양한 종류의 설탕을 모으는 설탕수집가 클럽/ 독일 최대 오토바이클럽 'Streetbunnycrew'에서는 자선행사시 분홍색 토끼옷을 입고 라이딩을 한다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Flying Spaghetti Monster) 신봉 종교단체 FSM, 어린이용 자동차를 타고 스피드를 즐기는 Bobby-Car-Sport-Verband
남자 190cm, 여자 180cm 이상만 가입할 수 있는 키 큰 사람 클럽(Klub langer Menschen), 가장 특이한 수염을 뽑는 Belle Moustache e.V
강제로 웃어야 하는 웃음 클럽(Lachclub) / 기계 대신 전통적인 농기구를 이용하자는 '큰 낫 클럽(scythe club)'


*사진출처 : Get to know the concept of the German Verein / dw.com




사실 클럽을 만들기 위해서는 3명이 아닌 7명이 필요하다. 


클럽 개설 과정은 다음과 같다.

- 클럽 활동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모은다. 본인 포함 7명이면 된다. 

- 정관(Satzung)을 작성한다. 정관에는 반드시 클럽명, 소재지, 설립 목적, 주요 활동계획, 의사회, 가입방법 등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 킥오프 미팅을 통해 회장, 부회장, 회계, 서기 등 이사회(Vorstand)를 선출하고, 멤버들의 서명을 받는다.

- 클럽 신청서를 지방법원(Amtsgericht) 제출한다. 정관과 첫 미팅 회의록은 공증을 받아 첨부한다.

- 법원의 최종 승인을 득하면 클럽명 뒤에 e.V.(eingetragener Verein; 인증 클럽)를 붙이고 정식 활동에 나설 수 있다.


클럽 하나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6주, 비용은 100유로 정도다(공증비 30유로, 신청비 70유로).


클럽의 성패는 회원들이 하기 나름이다. 워낙 워라밸이 잘 맞는 나라 그런지 클럽 활동도 열심이다. 남들에게는 별 의미 없고 지루해 보이는 것들도 좋아하는 하는 사람은 또 목숨 걸고 하는 게 이런 활동 아니겠는가. 클럽 활동이 예전만 못하다고 우려하는 시각들도 있지만, 클럽 3개 중 1개는 회원 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클럽문화는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사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독일에 왔으니 이왕이면 '인싸'가 되고자 동네 클럽을 서치 해봤다. 인구 1.7만 명의 작은 동네에 무려 130개나 되는 다양한 클럽들이 있었으나 결국 입회를 포기해야만 했다. 의욕만 앞세우기에는 언어의 장벽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대신 큰 아이를 통해 내 로망을 달성하기로 했다. 


동네 신문을 살펴보던 중 '펜싱'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맛보기' 펜싱 수업(Schnupperkurs "Fechten für Kinder")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면서도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희소가치 높은 종목.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 따님께서 남현희, 김지연 버금가는 실력 충만한 미녀 검객이 될지 또 어찌 알겠는가?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6주짜리 시범 수업이 끝난 후, 큰 아이는 드디어 정식 클럽 회원이 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느낀 감동 포인트 셋.


첫째, 저렴하다.


대부분의 클럽들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으므로 회비는 운영을 위한 실비 수준으로 책정된다.


우리 동네 스포츠 클럽 가입비는 60유로인데, 펜싱은 전문 코치와 특수 장치 이용을 감안해 140유로의 추가 비용을 받는다. 즉 총 200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25만 원이다. 


한 달치 비용이라고 해도 수긍이 가능한 수준인데, 자그마치 1년 치 비용이다! 한 달에 2만 원 꼴인 셈이다.


거저먹는 기분으로 큰 아이는 일주일에 두 번씩, 한 시간 반씩 훈련 한다.(2020년도부터 회비를 20%나(!) 인상한다는 고지를 받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훌륭한 수준이다.)



둘째, 언어의 장벽은 핑계일 뿐.


큰 아이가 속한 초등부에는 약 30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한국인은 우리 아이가 유일하다. 독일어를 거의 못하는 아이도 우리 딸 뿐이다.


처음엔 언어가 문제가 될까 싶어 가입을 망설였다. 말이 안 통해 답답해 하진 않을까, 혹시 무시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저희가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영어는 조금 하는데 독일어는 못해도 괜찮을까요?"


시범 수업을 신청할 때, 그리고 정식 회원 가입 시, 두 차례에 걸쳐 문의를 했었는데 두 차례 모두 답변은 명확했다. 


"언어는 문제가 안됩니다(Das mit der Sprache ist kein Problem). 걱정 마세요."


답변대로 별 무리 없이 운동을 시작 한지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었다. 아이의 독일어 실력도 여전하다.




셋째, 강제 심사숙고 기간.


시범 수업을 마치고 정식으로 클럽을 가입하려는데, 어라? 클럽 가입을 자꾸 말린다. 


아이가 혹시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으니 두 세 차례 더 와 본 다음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는단다. 


권유대로 세 차례에 걸쳐 공짜 훈련을 받고 겨우(?) 클럽 가입을 완료했다. 


정식 회원도 됐으니 이제 장비를 구매할 차례. 지금까지는 클럽에서 대여해주는 유니폼과 장비로 훈련을 했는데, 이제 좀 때깔 나는 새 장비를 사주고 싶었다. 마스크, 칼, 전용화, 바지, 조끼, 장갑, 양말, 가방... 또 뭐가 있더라?


갖추어야 할 장비와 유니폼 종류들이 꽤 많아서 어떤 걸 우선해 구매해야 하는지 문의하니, "지금 시점에는 아무것도 살 필요가 없다"고 한다. 굳이 사주고 싶다면 크리스마스에 하나, 생일 선물로 하나씩 차근차근 구매해도 충분하단다. 


게다가 한두 달에 한 번씩 다른 회원들이 떠나거나, 작아져서 사용하지 못하는 중고 물품들을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도 있으니 전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한다..


무슨 스포츠던지 우선 전문 장비부터 풀 장착한 다음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는 분위기의 우리나라와는 달리, 내가 내 돈 주고 뭘 하겠다는데도 만류하는 모습을 보니 좀 감동이다. 

 



펜싱을 시작한 지 일 년여 만인 지난 6월, 큰 아이는 독일펜싱협회에서 발급하는 펜싱 패스(Pass)를 획득했다.


펜싱 패스를 보유한 사람들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를 위해 필기/실기시험을 치룬다.


그리고 새 학기가 시작된 9월, 처음 출전한 아마추어 펜싱대회에서 당당히 동메달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었다. 동네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얼굴과 이름이 보도된 건 덤이다. 


가문의 영광이다



클럽 소개로 시작해 딸래미 자랑으로 마무리한다.


장하다 우리 딸. 사랑해요 페어아인!♥









<참고 글>

Deutschlands Vereine sind auf Landflucht / Zeit onlind

Get to know the concept of the German Verein / dw.com

Zahl der Vereine / Spiegel

Explained: How to start your own Verein in Germany / local.de

How to Found a Charity in Germany / tbd

독일의 Verein 문화 / gutentag Korea

팟캐스트 Slow German 해석 #17. Verein / 독일 축구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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