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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Aug 29. 2019

나를 지켜보던 열네 개의 CCTV

언제나 어디서나 행실을 조심해야 한다

그날따라 분주한 아침이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둘째 유치원 등원 - 마트 쇼핑(살 게 몇 개 되지도 않았다) - 독일어 수업 참석이라는 동선을 짜 놓고도, 집에서부터 5분, 10분 늦어지더니 마트에서 물건을 계산할 때는 이미 수업에 지각하고도 남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급한 마음에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데 후방 경고음이 채 들리기도 전에 차 엉덩이 부분에 가벼운 충격이 느껴진다. 


아뿔싸, 급한 마음에 보관대에 삐죽이 튀어나와있던 쇼핑카트를 친 것이다.


아니 너는 왜 마침 거기 있고 난리란 말이냐


찰나의 순간, 주차장 주변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무심한 듯 날카롭게. 차창 안을 넘어서 내 안을 꿰뚫어버리는 듯한 매서운 눈길이다.


느껴지는 충격 정도로 봐서는 쇼핑카트가 망가졌을 것 같진 않고, 수업은 늦었고, 내려서 확인하기엔 왠지 겁이 나는 상황. 심각하지 않을 거라며 스스로 위로를 하며 일단 내빼자는 판단을 했다.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그 따가운 시선들도 함께 따라오는 것 같다. 이미 그중 누군가는 신고를 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신고했으면 어떡하지? 나 경찰서 가는 거야? 설마 카트 가지고 감옥이야 가겠어? 벌금이 무지막지하진 않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어떡하지? 아, 차 명의가 남편 걸로 되어있으니 나한테 전화 오진 않겠군. 아, 남편이 알게 되겠네. 어떡하지? 독일에서 쫓겨나는 거 아냐? 내려서 확인하는 척이라도 할걸. 이제라도 자수할까?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결국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바로 다시 제 발로 마트로 갔다(범인은 꼭 현장에 돌아온다는 말이 뭔지 알겠더라). 가장 먼저 발걸음을 향한 곳은 내가 쳤던 그 카트 보관대. 당연히 그때 그 카트는 없어진 지 오래고(맨 끝에 있었으니 누군가 써도 수십 번은 더 썼을 거다) 주변에는 평화롭게 쇼핑하는 사람들뿐이다.


마트로 들어갔다. 독일어 반 영어 반 바디랭귀지 반으로 매니저를 찾아 이실직고를 했다. 매니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보관대를 친 게 아니라 카트를 친 거지? 확인해보고 이상 있으면 전화 줄게. 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다행히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다.




독일엔 CCTV가 흔치 않다.


나치 시절 게슈타포와 같은 감시조직으로부터 겪었던 심각한 사생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테러로 공공장소에서의 CCTV 설치 확대 등 관련 규정이 완화되고 있는 추세지만, 안보보다 개인의 사생활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훨씬 강하다.


개인이 설치하는 CCTV는 기본적으로 불법이라고 보면 된다. 가정용 CCTV는 사유지만 촬영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며, 길가 등 공공장소를 촬영하는 것은 불법이다. 댁내 CCTV를 설치한다고 해도 드나드는 사람이 촬영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방범 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안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다는 차량 블랙박스도 불법이다. 사고 시에도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단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정보 남용 금지법(1970년), 연방 정보보호법(Bundesdatenschutzgesetz, 1977년) 제정 등 일찍부터 개인정보보호법 체계를 마련한 국가이기도 하다.


CCTV가 없다고 치안이 좋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기본은 지켜야 한다는 시민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인간 CCTV와 투철한 신고 정신도 질서를 지키는데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하게 발견한 이 사진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지켜보고 있다...


                                                                                                                    이미지 / reddit


여기엔 Eastern Europe이라고 나와있지만, 내가 본 버전은 Germany 였다. 동일한 사진에 Italy, Spain, Poland 등 다른 나라 이름으로 바뀐 버전도 있다. 특유의 국민성도 있겠지만 2차 대전을 겪었던 유럽의 노인 세대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것에 인이 박힌 듯하다.


한동안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최순실 일가의 독일 도피 행각을 기억하는가?

수많은 보도 가운데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 었던 건 최순실이 살았던 마을 주민의 인터뷰였다.


꼼꼼하기도 하셔라..


하도 행적이 이상했다고는 하나 일지까지 적어가며 이웃을 감시(?) 했다는데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독일에 와서 겪어보니 이 분이 그다지 유별난 것도 아니더라. 직설적인 독일 사람들, 이웃의 행태가 상식 밖이다 싶으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반드시 응징을 가한다. 직접 찾아와 싫은 소리 하는 경우도 있고, 얄짤없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한다.


관련해 들려오는 일화들도 많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 못해서 옆집 할머니에게 혼난 이야기부터, 한밤중에 주정차 금지 구간에 잠깐 차를 세워두었는데 그새 주민 신고로 딱지가 날아온 이야기, 키우던 개를 친구에게 주고 난 일주일 뒤, 경찰이 찾아와서 개의 행방을 물었던 이야기(개를 잡아먹은 거 아닌가 의심한 이웃이 신고했다고 한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며, 새벽에 화장실을 쓰면 신고하겠다고 아랫집 할머니께 협박(?) 당한 이야기,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꼭대기층까지 유모차를 들고 오르락내리락하기가 번거로워 며칠을 자전거 거치대 근처에 놓아두었더니 쓰레기로 테러를 당한 경우 등 조금은 치사하고 과한 이야기까지, 독일인들의 까칠함에 관한 인터넷에 올라온 경험담은 무궁무진하다.




나를 보던 열네 명의 사람, 열네 개의 CCTV. 오금 저리던 그 상황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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