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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May 07. 2020

형제 자매의 날들

독일을 대표하는 형제들... 그리고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의외의 소득

"형제는 사이가 나쁘면 평생의 적이지만 사이가 좋으면 인생의 벗이다" (나무위키 '형제자매' 항목 참조)


이보다 더 형제자매 관계를 잘 설명한 한 마디가 어디 있을까!


같은 핏줄을 타고 나와서 누구보다 더 가까이에서 지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부모님의 또 다른 자식' 정도에 불과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을 함께 하는 '소울메이트'이기도 하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흥부와 놀부'나 '의좋은 형제', 성경 속 인물인 '카인과 아벨'이나 '요한과 야고보' 등  옛 이야기들 속에서도 극과 극의 관계를 맺고 있는 형제자매들의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어느편에 더 가까우신가요?



우애를 한 차원 더 넘어 훌륭한 업적을 이룬 형제자매들도 있다.


독일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형제자매들을 살펴보자. 





1.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친 석학, 훔볼트(Humboldt) 형제


-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1767-1835) 

-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 


왼쪽이 형 빌헬름, 오른쪽은 동생 알렉산더


베를린 근처의 포츠담(Potsdam)에서 태어난 이들 형제는 프로이센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재력은 물론, 지덕체까지 겸비한 엄친아 중의 엄친아들이다. 독일은 물론이고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


형제간의 전문 영역은 조금 다르다. 


형 빌헬름의 가장 큰 업적은 독일 교육 시스템의 개혁이다.


프로이센은 당시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었는데,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을 추진한다. 이때 교육부 장관에 임명된 빌헬름은 교육 개혁의 핵심으로 1810년, 베를린 대학교를 창설한다.


빌헬름이 설립 목표로 내세웠던 이념은 ‘교육과 연구의 통합(Die Einheit von Lehre und Forschung)’, ‘학문의 자유(die Freiheit der Wissenschaft)’, ‘학생의 전인적 교육(eine allseitige Bildung der Studenten)’.


이 전에도 대학들은 많았지만 베를린 대학교를 근대 대학 교육의 효시라고 일컫는 이유는 따로 있다. 대학 설립 이념이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근대 대학의 기본 이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베를린 동독에 세워졌던 베를린 대학교는 독일이 분단되며 소련의 통치 아래 남게 된다. 이에 반발한 일부 교수와 학생들이 동 베를린을 탈출해 서 베를린에 '베를린 자유 대학 (Freie Universität Berlin)'을 새로 설립한다. 그리고 기존의 베를린 대학교는 1949년에 '훔볼트 대학교’로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른다.


빌헬름은 교육 개혁 외에도 주 교황청 대사, 주 오스트리아 대사 등으로도 활동했으며, 언어학자, 철학자로서 당대의 지식가 괴테, 쉴러와도 친밀하게 교류하는 등 모범 석학의 전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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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내에서만 활동했던 빌헬름과는 달리, 동생인 알렉산더는 세계를 무대로 모험을 즐기는 학자였다. 


대학 시절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대원이었던 게오르크 포르스터(Georg Forster)를 알게 됐고, 그와 한 유럽 여행이 계기가 되어 세계 탐험까지 나선다.  


알렉산더는 중남 아메리카, 중앙아시아, 중부 유럽 등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연구를 펼쳤는데, 이 중에서도 1799년부터 1804년까지 5년에 이른 라틴 아메리카 대륙 탐험은 그의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령이었던 멕시코, 쿠바, 페루, 베네수엘라 등의 나라에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수풀을 헤치며 기후, 식물학, 천문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한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 최고봉으로 여겨졌던 안데스 산맥의 침보라소(Chimborazo, 6,268 m) 등반에 성공하기도 했다. (90세까지 장수했으니 필시 체력도 타고났음이 틀림없다.) 


알렉산더는 이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코스모스(Cosmos)>, <자연의 풍경>, <세계의 자연>, <신대륙 적도지역 여행기> 등 역작을 집필한다. 


떠돌이 생활을 마친 알렉산더는 형이 있는 베를린으로 돌아오고, 형의 사망 후에도 20년 이상 더 살면서 강의와 집필에 몰두한다.   


동 시대인들은 알렉산더를 두고 '나폴레옹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단다. 찰스 다윈도 "(알렉산더) 훔볼트가 없었다면 [종의 기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고. 


알렉산더의 연구 업적 덕분에 훔볼트 해류, 훔볼트 만, 훔볼트 강, 훔볼트 산 등 지구 곳곳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심지어 달에도 그의 이름을 딴 바다(Mare Humboldtianum)가 있다!







2. 아디다스와 푸마를 세운 경영자 다슬러(Dassler) 형제 


- 루돌프 (루디) 다슬러 (Rudolf 'Rudi' Dassler, 1898 ~1974) : 푸마 설립자

- 아돌프 (아디) 다슬러 (Adolf 'Adi' Dassler, 1900 ~ 1978) : 아디다스 설립자



다슬러 형제의 고향은 바바리아(Bavaria) 지역의 헤르초게나우라흐(Herzogenaurach)라는 작은 마을이다. 신발공장에 다니는 아버지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어머니를 둔 4남매 중 셋째와 막내로 태어났다. 


1924년, 두 형제는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Gebrüder Dassler Schuhfabrik; 줄여서 Geda)'을 설립하고,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스파이크 운동화를 고안해 인기몰이를 시작한다.


사교적인 성격의 타고난 비즈니스맨 형 루디, 혁신적인 엔지니어 동생 아디. 그리고 스포츠를 장려하는 시대적 상황까지.. 성공을 보장하는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은 없을 듯하다. 게다가 1936년에 개최된 베를린 올림픽에서 '게다'표 운동화를 신은 선수들이 금메달 7개, 은메달 5개를 획득해 좋은 성적을 거두자 다슬러 형제의 신발공장은 더욱 승승장구하는데... 


기쁨도 잠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루디'만' 강제 징집되며 형제간 동업은 삐그덕거리기 시작한다. 루디는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동생과 갈라서고 새로운 브랜드 '푸마(Puma)'를 설립한다. 아디는 기존 회사명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디다스(adidas)'로 바꾼다.


그때부터 깊어진 두 형제간의 골은 죽을 때까지 회복되지 않는다. 죽어서도 묘지 양 끝에 멀찍이 묻힐 정도다. 


불화의 원인으로는 ▲루돌프가 혼자만 군에 징집되어 죽을 고생을 한 것을 두고 아디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뒤끝설'과 ▲폭격을 피해 방공호에 숨어있던 아디가 뒤늦게 합류한 루디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을 했다는 '하극상설', ▲ 타고난 바람둥이 었던 형 루돌프가 동생의 부인과 눈이 맞았다는 '불륜설'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디다스와 푸마의 본사는 둘 다 다슬러 형제의 고향 마을에 위치해 있는데, 형제간 불화로 인해 마을도 사실상 둘로 나뉘었다. 형제들의 살아생전엔 아디다스 파와 푸마 파는 서로를 불가촉천민처럼 여기며 내외했다고 한다. 집집마다 적어도 한 명 이상은 두 형제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두 회사 간 화해의 자리가 마련되어 공식적으로 화해를 했지만 앙금이 완전히 풀어지기엔 불화의 기간이 너무 길었던 듯 하다.   


 




3.  나치에 맞서 싸운 숄(Scholl) 남매


- 한스 숄(Hans Fritz Scholl, 1918~1943)

- 조피 숄(Sophie Magdalena Scholl, 1921~1943)



한스와 조피는 뷔텐베르크(Württemberg)에서 6남매 중 각각 둘째와 넷째로 태어났다. 


두 남매는 어린 시절 각각 히틀러 소년단과 독일 소녀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나치의 만행을 알게 되고 후회하며 활동을 그만둔다. 이는 두 남매가 추후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 계기가 된다.


두 남매는 함께 뮌헨 대학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아우구스트 폰 주교(Clemens August Graf von Galen)로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한 실상을 전해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1942년 5월, 남매는 세 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비밀 단체 백장미단(Weiße Rose)을 결성한다. 백장미는 비폭력과 평화를 상징한다. 나치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름이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나쁜 양심입니다. 백장미단이 당신을 절대 평화롭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폴란드를 점령한 이래 30만 명의 유대인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했다… 독일인들은 아둔한 잠 속에서 이러한 나치의 범죄를 조장한 셈이다… 사람마다 나는 이러한 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나는 양심에 꺼릴 것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모두가 유죄, 유죄, 유죄이다!”    

-백장미단 전단지 내용 중                                                             


백장미단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나치의 만행을 고하고 인간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내용의 전단지를 제작, 배포한다. 1943년 2월 18일, 뮌헨 대학교 교정에서 여섯 번째 전단지를 뿌리며 호소하던 숄 남매는 게슈타포에게 체포되고 만다(남매의 후견인이 밀고했다). 나흘 뒤인 2월 22일, 두 남매는 사형 판결을 받은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실제로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올바름 넘치는 세상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날씨는 화창한데 나는 간다. 그러나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는가. 얼마나 젊고 희망에 찬 생명이… 만약 우리가 한 행동이 많은 사람을 깨우쳤다면, 지금 죽는다고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 조피 숄, 재판정에서

"자유여 영원하라! (Es lebe die Freiheit!)"
- 한스 숄, 처형 전 마지막 유언


당시 오빠 한스는 고작 25세, 조피는 22세였다. 그러나 꽃다운 청년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당시 침묵으로 나치에 동조하던 독일인들의 양심을 흔들었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다.  


태어난 날은 달랐지만 죽음은 함께 했던 의로운 남매다.





4. 명불허전 그림(Grimm) 형제


- 야콥 그림 (Jacob Grimm, 1785~1863)

- 빌헬름 그림 (Wilhelm Grimm, 1786~1859) 

왼쪽이 형 야콥, 오른쪽은 동생 빌헬름


<신데렐라>, <개구리 왕자>, <헨젤과 그레텔>, <라푼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백설공주>, <브레멘 음악대>, <빨간 모자> 등... 전 세계 남녀노소 누구나 제목만 대면 다 아는 <그림 동화>를 쓴 주인공이다. 


그림형제는 독일 중부 헤센주의 하나우(Hanau)에서 한 해 차이로 태어났다.(연년생 형제들인데도 용케 사이가 좋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 많은 형제들, 잦은 이사 등 좋은 형편은 아니었으나 서로를 의지하며 꿋꿋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다.


두 형제는 같은 대학(Malburg)에서 언어학을 공부한다. 사실 본업도 작가가 아닌 언어학자다(이 외에도 도서관 사서, 언론인, 외교관, 정치인 등의 다양한 타이틀이 있다). 독일어 사전(Deutsches Wörterbuch)을 편찬하고 독일어 문법도 정리했다. 


민담을 수집해 발간하게 된 이유도 언어학에서 출발한다. 언어의 변천사를 연구하다가 옛 이야기들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지역별로 간직한 민담들을 수집하며 공통되는 독일 문화를 발견하고 보존했던 것에 의의가 있다.  


이렇게 수집된 민담들은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Kinder-und Hausmaerchen)> 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발간된다. 수록된 이야기는 총 200개가 넘는다.


그림 형제는 우애가 좋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형인 야콥은 평생 싱글로 지내며 동생을 돌봤고, 동생 빌헬름도 마흔이 다 되어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갔지만 계속해서 형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둘 형제는 죽어서도 나란히 곁에 묻혀있다. 다슬러 형제와 아니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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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소개한 사례들마다 형제들 간 관계가 각각 다 다른 게 참 흥미롭다.


불가근불가원, 각자도생 하면서도 우애의 끈은 놓지 않았던 훔볼트 형제,

죽을 때까지 서로를 증오했던 다슬러 형제,

대의를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한 열정적인 숄 남매,

찰떡처럼 붙어 다녔던 그림 형제들까지..!



이들 형제에 이어 나는 프랑크푸르트 근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김씨 자매를 소개하려 한다.





우리 집 두 딸의 나이 차이는 정확히 5년 하고도 4개월이다. 


첫째는 올해 열두 살. 벌써 사춘기 문턱에 들어섰고, 둘째는 고작 일곱 살. 아직 떼쟁이 유치원생이다. 

과연 수준이 맞을까 싶지만.. 베프도 이런 베프가 없다.


특히 요즘엔 그 우애가 더욱 두터워졌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학교 가기, 친구와 만나기, 놀이터에서 놀기 등 모든 대외 활동이 원천 봉쇄되어 의지 할 사람이라곤 서로 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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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매의 하루 일과는 느지막한 아침에 시작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서로 밤새 안녕했는지를 확인하고, 함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자연스럽게 공부방으로 향한다.


숙제를 하는 거라면 고요해야 마땅한데, 대신에 낄낄/낑낑 거리는 소리가 나면 보면 어느새 강아지(때로는 고양이) 놀이가 한창이다. 한놈은 강아지, 한놈은 착한 주인 역할인데, 보통 못된 할망구(나도 모르는 새 이 역할은 나에게 맡겨져 있다)를 피해 달아나는 플롯.


한낮에는 동네방네 시끄럽게 베란다 정원에서 커다란 비치볼로 축구도 하고 있고, 

언제 꺼냈는지 물총을 가지고 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서로 쏴대고 있을 때도 있다 (이러다 한놈이 울면 놀이 끝) 온 집안을 집안을 뛰어다니며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를 할 때도 있고, (이럴 때 필요한 건 사자후 한방) 볕이 좋을 때는 베란다 테이블에 함께 앉아서 분위기 있게 책을 보(는척 하)기도 한다.


오후만 되면 공원에 나가자고 성화다. 

집 앞 공원에서 기가 막힌 나무 동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키도 덩치도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겉에서 보면 잎이 무성하지만, 안쪽에는 넓은 공간에 잔 가지만 빼곡히 나있어 아이들의 오름 본능을 충분히 자극한다. 한참 걷다가 나무가 눈에 띄면 후다닥 달려가 새끼 원숭이들 마냥 저 높은 데까지 재빨리 오른다.   

가지에 기대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나무껍질과 이파리를 모으면서 나는 알지 못할 둘만의 놀이를 하며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낸다.


숙제를 다 끝낸 날 밤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그 날 볼 영화를 고른다. 

근 한 달 사이에 어린이 대상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시리즈 정주행도 끝냈다. 

재밌는 장면은 서로 곱씹어 보며 또 돌려보고,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는 둘이 손을 꼭 잡고 토닥여 주기도 한다. 

한놈이라도 할 일을 끝내 놓지 않으면 아무도 TV를 볼 수 없는 연대책임제 때문에 때로는 으쌰 으쌰 하며 서로를 독려하는 모습도 볼만하다.


항상 둘이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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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진 않냐고? 어휴 말도 마시길.


하루 종일 싸운다. 적어도 30분에 한 번씩은 티격태격하는 것 같다.

아무리 환상의 짝꿍, 베프중의 베프, 우애가 깊더라도 이 세상에 안 싸우는 형제자매는 없지 않을까?


싸움의 이유는 매우 다양하고 매우 사소하다.  


TV는 뭘 볼 거다, 언니가 공부할 때 노래를 흥얼거려 집중이 안된다, 내가 엘사 역할을 할 거다(인 투디 언노운 노래 부르다 말고), 내가 꽃이 그려진 컵을 쓸 거다(밥 먹다 말고), 언니가 놀아준다 그래 놓고 안 놀아준다..(쓰고 보니 둘째의 변이 대부분이군)


다툼의 조짐이 보이면 신경이 곤두선 채로 이 놈들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는데, 오래지 않아 지가 먼저 시비 걸어놓고도 결국 힘과 논리에서 밀린 둘째가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엄마~ 언니가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둘째를 달래는 척, 첫째에게는 눈을 찡긋찡긋 하며 혼내는 척하는 게 하루 종일 무한 반복. 여간해선 화를 잘 내지 않는 첫째가 근엄한 목소리로 동생 이름 석자를 읊조릴 때면 무조건 언니 편을 들어줄 타이밍이다. 


그러다 내가 못 참고 폭발하면 또 금세 둘이 동맹을 맺고 평화모드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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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역할이 참 많다.


분명 내 딸이긴 한데, 가끔 친구 역할도 해준다(매우 좋은 대화 상대이다). 요즘엔 동생의 언니이자 친구이자, 가끔은 엄마 노릇까지도 대신해주느라 고생이다.


첫째에게 '너는 동생이랑 노는 게 재밌니?'라고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응!' 하고 대답한다.

가끔은 '엄마, 내가 동생이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라면서 꿈을 꾸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어느 날은 하도 싸우길래 '네가 동생 가지고 싶다며! 그러니까 네가 잘 데리고 놀아!'라고 괜한 소리를 했더니, '누가 저런 동생 낳아달라고 했어!?' 하고 반격도 할 줄 안다.


둘째도 제 몫은 한다.


엄마한테 혼나고 시무룩한 언니를 어르고 달래서 웃게 만드는 건 둘째 몫. 

밤에 화장실 가기 무서워하는 언니를 위해 같이 가서 망을 서주기도 한다(역할이 조금 바뀐 것 같긴 하다!)


언니가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있으면 그 옆에서 알짱거리다 선율에 맞춰 노래도 흥얼거리고 웃긴 표정으로 춤도 춰준다. 언니와 환상의 틱톡(Tiktok)의 짝꿍이기도 하다. 보통 촬영을 담당하는데, 가끔 모델로 등장해 주기도 한다.


오늘은 밥 먹다 말고 갑자기 한놈이 <겨울왕국 2> 주제곡을 부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한 소절씩을 번갈아가며 노래를 완성한다.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느낌.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도 감동스러워 눈물이 찔끔 다 나더라. 




코로나로 인한 방학/휴교/사회적 거리두기/자가격리/가택연금 (이 중 뭐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기간이 이제 두 달째 접어들었다.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답답해하면서도 어느덧 이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식구들끼리 24시간을 꼬박 붙어있으면서 서로 지지고 볶고 낄낄대고 꽥꽥대고 웃고 떠든다. 


먼 훗날 언젠가 이 시절을 회상했을 때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


(첫째는 빠르면 열흘 후에,  둘째는 6월 초에 다시 학교엘 갈 수 있을 것 같다. 앗싸~!)





* 커버사진 : Image by Lorri Lang from Pixabay 



<참고 글>

근대 대학의 효시’ 베를린대 아십니까? / 주간동아

How Alexander von Humboldt put South America on the map / dw.com

THE REMARKABLE VON HUMBOLDT BROTHERS / Howard Gardner

남아메리카 탐험의 원조 알렉산더 폰 훔볼트 / 신동아

빌헬름 폰 훔볼트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훔볼트 형제의 통섭> 책 소개 / 알라딘


Puma and Adidas' rivalry has divided a small German town for 70 years — here's what it looks like now / Business Insider

[백투더패션] 아디다스와 푸마가 형제라구요? / 아시아투데이

형제기업 아디다스-푸마, 60년만에 화해 / 한겨레


<[조한욱의 서양사람] 백장미> /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조피 숄 -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여자의 죽음 / 한국일보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나치 맞서다 희생된 비폭력의 순결한 꽃들 / 부산일보

백장미단 / 위키피디아

숄 남매 / 나무위키


판옵티콘과 시놉티콘 개념의 도서관 :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그림형제 도서관 / Zoe's Lirary 

그림형제의 길 / 손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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