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화 '살짝' 엿보기 #4-2
화장실 이용에 치사하게 돈을 받는 건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능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수작일까?
사실 유료 화장실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유료 화장실의 역사는 2000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서기 74년, 잦은 내전으로 로마 재정이 바닥났을 때 베스파시아누 황제가 세금을 걷어들이기 위해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더럽고 치사한 것들'이라는 적군들의 비난이 빗발쳤을 때, 황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The earliest pay toilets in history were erected in ancient Rome in 74 AD, during the rule of Vespasian, after a civil war greatly effected the Roman financial scene. His initiative was derided by his opponents, but his reply to them became famous: "Pecunia non olet," i.e. "money does not smell.”
(출처 : Whatever-happened-to-pay-toilets / neatorama)
이미지 / pixabay
유료 화장실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용자의 품위'를 거론한다. 화장실 인프라(수도, 전기세 등) 유지와 청결을 유지함으로써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볼일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노력 봉사(인건비)의 대가로 유료 개방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홈리스 등이 화장실을 점거하고 더럽히는 걸 방지하는 장점도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료 화장실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보다 심오한 주장도 있다. 한 푼이 아쉬운 가난한 사람들, 홈리스, 실업자들이 볼일을 볼 권리조차 앗아간다는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말이다.(나는 얘네 편)
오래전 경험 상 미국에서는 화장실 인심이 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한 때 유료화장실이 성행했다고 한다.
20세기 초 철도가 미국 전역에 깔리면서 기차역마다 현대식 배관 시설을 갖춘 화장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철도 회사는 화장실 문에 자물쇠를 채워두고 직원들과 기차 승객들에게만 화장실을 개방했는데, 후에 동전으로 열리는 출입문을 교체하고 운영 편의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한 것이 유료화장실의 시초다.
화장실 사용 비용은 10센트이고 10센트짜리 '다임(dime)'으로만 이용이 가능했다(거스름돈은 주지 않았다고 함). 오늘날의 1달러가 1970년대에는 약 7달러의 가치를 했다고 하니, 화장실 이용료 치고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러한 유료 화장실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공항, 버스정류장, 고속도로 휴게소 등 5만 개 이상에 달했다. 그 많던 유료화장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968년, 오하이오에 사는 고등학생 Ira와 Michael 형제는 Gessel은 '유료화장실 추방위원회(Committee tp End Pay Toilets in America; CEPTIA)'를 설립하고, 최초로 발간한 뉴스레터 'Free Toilet Paper'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유료 화장실이 인간의 기본권을 비윤리적으로 침해한다고 느낀다. 배출은 인체의 중요한, 꼭 필요한 기능이다 - 돈이 있건 없건 말이다 (We feel that pay toilets are unjust infringements on our basic human rights... elimination is an important body function that must take place, dime or no dime)"
CEPTIA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료화장실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
직접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펜실베이니아, 캘리포니아, 오레건, 일리노이 주 등에서 관련 법안을 입안(시켰으나 통과는 안됨)하면서 미국 전역에 유료 화장실에 대한 찬반이 지속적으로 논의됐다. 유료 화장실 옹호자들과의 오랜 싸움 끝에 1973년, 시카고 시장이 유료화장실을 없애겠다고 선언하면서 반대론자의 승리로 끝났다! 추후 캘리포니아, 알래스카, 플로리다, 아이오와, 네바다, 뉴욕, 뉴저지 주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통과됐으며 1976년 CEPTIA는 승리를 선언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출처 : WHY DON'T WE HAVE PAY TOILETS IN AMERICA? / Pacific Standard)
최근 들어 미국에서도 유료화장실이 슬금슬금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발심은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다.
'카피레프트(Copyleft)'로 유명한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도 CEPTIA의 뜻을 좇아 유료 화장실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유료화장실을 이용하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Please don't pay to use a pay toilet / Richard Stallman) 워낙 무료 화장실이 많아 딱히 50년 전만큼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뮤지컬 '유린타운(Urinetown)'은 미국인 극작가가 유럽 여행하며 실제 겪었던 화장실과 관련된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유린타운>은 물 부족 현상으로 용변권을 통제당하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도시 화장실을 모두 통제하는 '유린 굿 컴퍼니'의 사장은 부패한 국회의원 및 경찰과 결탁해 가난한 시민들이 낸 이용료로 부를 축적하고, 거슬리는 사람들은 '유린타운'으로 유배를 보낸다. 일개 화장실 관리인이었던 바비는 용기를 내 공권력에 대항하고, 마침내 화장실 탈환에 성공하는데... (출처 : 눌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 박병성)
결국 유린타운은 '기본적인 본능마저 통제당하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곳'을 의미한다. 뻔한 결말은 아니라고 하니 기회 되면 한번 볼 만하겠다. (보는 내내 왠지 방광이 힘들어 할 것만 같다)
이십여 년 전, 파릇파릇한 고등학생 시절 명동역 화장실에서 사용료를 받던 할머니가 문득 생각난다. 어머, 화장실에서 돈을 받다니 별꼴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시내에서는 다 그런가 보다.. 하며 어쩔 수 없이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합법이었을까?
우리나라만큼 화장실 인심이 좋은 나라도 없는 것 같다. 가끔 몰카를 찍히거나, 칼 맞아 죽을 걱정은 할지언정. 지하철 화장실은 이제 예술의 경지에 까지 오르고 있다. 칸칸마다 화장지는 기본이고, 예쁜 그림도 걸려있으며, 결코 볼일 보는 소리를 가려주지는 못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에티켓 벨과 위급상황 시 역무원과 연결되는 비상벨도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화장실들이 모두 유료로 운영된다면? 우리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영원한 결코는 없는 법. 만약, 혹시나, 먼 훗날에 유료 화장실이 도입된다면? 아-상상하기도 싫다. 내 다음 생애에서나 일어나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