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
말 그대로 회사를 나왔다.
인도에 온 지, 회사를 다닌 지 한 달 만에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많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4주라는 다소 짧은 시간 안에 내린 결정이기에 누군가는 성급한 결정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지난 한 달은 매 순간 뒷 목을 조여왔던 지옥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고심 끝에 지원을 했던 회사였고
나를 지금의 인도까지 오게끔 했던 회사였기에 아주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사실 첫 출근을 할 때부터 느낌이 이상하긴 했다. 처음부터 미리 겁을 먹고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며 출근하기 전, 동료들은 나에게 회사 분위기와 대표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히스토리를 들으면서 의아한 부분이 많긴 했지만 내가 직접 겪어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우선은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고 출근을 하기로 했다.
내가 새로 온 사람이어서 그런지 나를 건드리시진 않았지만, 대표님은 동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시는 것을 일삼으셨다. 대표님의 자리는 바로 내 앞자리였고 그 모습을 매일매일 지켜보고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주눅이 들었다. 대표님만 오시면 긴장이 되고 심장이 덜컹거렸다.
‘조금 있으면 나한테도 저렇게 욕을 하실 건가.’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억압적인 공기에 나는 계속해서 짓눌렸고 가끔씩은 공포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회사 내에서 쌍욕을 들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일이 잘못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크게 들었다. 내가 욕을 들으면 잘할 수 있는 것도 더 주춤하며 못하는 아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러한 환경에서 계속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주일 뒤 대표님을 찾아갔다.
내가 결정한 회사고 내가 일할 회사이기에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닌 대표님과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욕하시는 것에 대한 내 의견과 사전에 회사와 약속했던 부분들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들 그리고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중하고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솔직히 대표님을 찾아가기까지 너무나 떨렸고 겁이 났다.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 뿐이었고 떨리지만 대표님을 찾아갔고 솔직하게 다 말씀드렸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그리고 이후 어떤 상황으로 돌아갈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두려웠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대표님은 내게 잘 이야기했다며 앞으로 나에게는 욕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사전에 약속했던 부분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들도 원래대로 고쳐주셨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이제 편하게 업무에만 집중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뒤,
이 회사는 내가 절대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확신을 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퇴근 후 저녁을 먹으러 숙소로 갔더니 거실에 대표님이 계셨다. 하필이면 그 날이 다른 동료들은 모두 야근이라 회사에 남아있었고 나 혼자 일찍 숙소로 간 날이었다. 많이 당황했지만 당일이 숙소 대청소날이라 확인차 오셨겠지라는 생각으로 덮어버렸다.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고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침까지만 해도 선반에 있던 나와 내 룸메이트의 물건들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순간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께서는 내 방으로 따라오셨고 침대 위 널브러진 물건들을 가리키며 내 물건을 찾아가라 하셨다. 방 안의 선반을 치우시면서 거기 안에 있던 물건들을 죄다 쏟아놓은 것이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나에게 내 옷장을 열어보라는 지시를 하셨다.
당황했다.
열기 싫었다.
내가 내 옷장을 지금 왜 열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나는 내 손으로 옷장을 열고 있었다.
그러더니 긴 옷은 다 거실에 있는 옷걸이로 빼고 속옷 같은 것은 잘 정리해서 침대 옆 서랍에 넣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멍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회사 숙소니까 정리를 잘하고 깔끔히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남기신 채, 대표님은 댁으로 돌아가셨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내가 진짜 이 회사를 다니고 싶은 건가,
다녀야 하는 건가,
말아야 하는 건가,
다닐 수 있을까,
업무적으로 얻는 게 많으면 이 정도쯤은 참아야 하는 건가,
회사라는 조직은 원래 이런 건가,
어떡하지,
여기는 한국도 아니고 인도인데,
정말 많이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수많은 고민 끝에 결국 그만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렇게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물론 나오는 것 역시 쉽지는 않았다.
많이 기대했기에 그만두는 것에 있어서 사실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나 자신을 믿고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업무적으로 힘든 것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지만 아주 기본적인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는 참을 수 없었다.
그건 참아야 하는 것도 참을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그곳에 적응해나가고 익숙해지면서
부당한 대우임에도 하나씩 무뎌질 나 자신을 보는 것이 싫었다.
‘버틴다’는 말을 이 곳에서 쓰고 싶지 않았다.
잃을 것과 얻을 것,
이 두 가지가 너무나 명확했고 그 둘 중 나에게는 잃을 것들이 얻을 것보다 더 소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 최선을 다했고 할 만큼 했으니 아주 많이 떳떳하고 당당하다. 정말 기대를 많이 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회사를 나간다는 결정을 하는 것이 들어가는 것보다 얼마나 배로 힘든 일인지 다녀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삶은 원래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그 삶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 안 하고 푹 쉬고 싶다.
인도에 온 이후 어제 처음으로 깨지 않고 5시간을 연달아 잘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이 곳, 인도라는 나라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있을 테니까.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겠다.
천천히 그리고 제대로,
매 순간 진심을 다해 살아온 나이기에
앞으로도 더욱더 내 삶을 진심으로 대하면서
지금 이 상황도 잘 헤쳐나가고 싶다.
인생은 늘 새롭다.
나도 참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