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편안함에 이르렀나

유리멘탈의 개복치 탈출기 3-1

by 신디리

오늘은 2026년 2월 11일. 마지막 브런치 글을 쓴 지 1년 4개월이 지났다. 지금의 나는 꽤나 평온하다. 불안장애의 신체화 증상을 느꼈던 순간은 1년 전이었고, 약의 도움이 필요한가 싶은 정도의 우울감을 느낀 지도 8-9개월이 지났다. 아직 입면장애가 있어서 자기 전에 약을 먹긴 하지만, 하루에 만보 이상 걸은 날이면 약 없이도 곯아떨어지기 때문에 그냥 운동하기 싫어서 약을 먹고 잠에 드는 방법을 선택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2025년 7월, 다니던 회사의 임금체불이 시작되어 10월 말에 퇴사했고 고용노동부와 법률구조공단을 들락거리며 밀린 급여를 받아낸 후 지금은 넉 달째 백수인 상태다. 5년 전 직장을 잃고 불안장애로 처음 정신과를 내원했던 때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세상 평온하다. 나이는 30대 중후반, 그때보다 더 불안해야 정상(?)인데, 놀랍도록 아무렇지도 않다. 임금체불은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뭐랄까,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뭐' 싶달까. 사주 철학가 몇 분이 나보고 귀족 사주라더니, 아무래도 나는 귀족 같은 백수가 체질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몰락한 귀족인거지…^^


시리즈 제목을 "유리멘탈의 개복치 탈출기"라고 지어놓고는 탈출기를 쓰지 않았다는 친구의 날카로운 지적에 '아 맞네…?' 하고서는 다시 펜을 잡았다. 사실 지난 1년 동안 뭐 대단한 걸 하진 않았다. 관련 서적은 잔뜩 사놓고 읽질 않았고(어떤 유명한 사람이 책은 그냥 사서 모으는 거랬다), 혼자 진지하게 각 잡고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들도 그다지 실천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노력’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은 끊임없는 노력이었음을. 내게는 숨 쉬듯 일상적인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생각지 못한 치유의 방식일 수 있음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지난 5년간 나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피드를 마음 회복 콘텐츠들로 도배해서 매일 들여다봤고(SNS 중독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

나를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각종 프로그램들을 찾아다녔고(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치유 모임, 별의별 모임),

그렇게 돌아다니며 알게 된 좋은 사람들을 기회만 되면 만났고,

산세베리아도 죽이던 식킬러였는데 ‘식물도 공부하면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유튭으로 깨작깨작 독학하다가 화분 30개를 키우는 식집사로 거듭나버렸다.


정말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일상의 것들이 5년간 차곡차곡 모여 한결 단단해진 내가 만들어졌다. 지금 글을 쓰면서 스스로 놀랐다. 내가 나 스스로를 “단단”해졌다고 표현할 수 있다니? 너무 대견하잖아?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소원을 이뤘잖아...?!


우선 왜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생겼는지 다시 돌아보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1년 전에 쓴 글을 보니 그 당시의 상황만 설명이 되어 있고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써놨던데, 지금은 약간 알 것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지난 5년간 내가 이 병마를 이기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자세히 톺아보고자 한다. 그럼 레츠고.

작가의 이전글유리멘탈의 개복치 탈출기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