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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밥일지

달래장과 잔치국수

달래장의 수고로움을 아시나요

by 별경
[달래장]
달래 160g
진간장 6T
고춧가루 2T
매실액 2T
다시마 물 6T
참기름 2T
참깨 2T

[잔치국수 재료]
국수 2인분
계란 2개
당근 1/4개
애호박 1/3개
현미유 2T
다진 마늘 1t
소금, 후추 약간

[잔치국수 육수]
물 900ml
코인육수 1개
새우분말 1/2t
국간장 1T
멸치액젓 1T
다진 마늘 1T

잔치국수는 12/4일 월요일 저녁메뉴였다. 원래부터 잔치국수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요즘 솥밥을 매일 해 먹으면서 주로 쪽파양념장, 들기름 양념장을 먹다가 솥밥 좀 한다는 사람들이 곁들여 먹는 달래장이 궁금했다. 나도 기억 언젠가 본가에서 달래장을 먹어본 적은 있었던 거 같은데 자주 먹어본 양념장은 아니었고, 밖에서도 딱히 자주 마주치지 않았던 양념장이다.


'달래'향이 뭔지 알 것 같은데 정확히 묘사하긴 어렵고 기억너머에 있는 달래장. 조미하지 않은 김을 구워서 달래장을 넣어 싸 먹으면 맛있었던 것 같은데 딱히 그 수고로움, 감사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어릴 적엔 비엔나 소세지 반찬이 제일 좋았다.

궁금해서 사본 달래 160g. 달래가 이렇게 생겼네. 유튜브에서 씻는 영상을 찾아봤는데 이마트에서 배송 온 달래의 뿌리 부분이 영 너무 더럽다. 그냥 비비고 설렁설렁 씻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상한 건 아닌지, 썩은 건 아닌지 원래 이런 몰골인지 포털에 열심히 검색해 본다. 컷 만들었는데 썩어서 못 먹는 맛일까 싶어 대충 씻어 먹어봤더니 씹을 때마다 입안 가득 알싸하게 톡! 쏘며 산뜻한 '달래맛'이 난다. 다행이다. 썩은 건 아니다.

달래가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식초 1T를 넣어 조물조물 씻고 뿌리와 수염 사이에 흙돌기를 뜯어주고 더러운 뿌리껍질을 벗겨준다. 정말 수염은 너무 많고 뿌리껍질은 거의 다 더러워서 내가 이놈의 달래를 왜 사서 이 생고생을 하나, 그냥 비슷한 맛일 텐데 쪽파양념장이나 먹을걸. 후회막심이었다. 도대체 이 달래는 언제쯤 손질이 끝나는 걸까. 끝나긴 하는 걸까. 너무 답답해서 유튜브 달래 손질 영상을 찾아보며 달래 껍질을 깠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달래 따위는 안 산다! 라 마음먹고 거의 30분을 달래 씻는데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껍질과 흙을 제거한 달래는 흐르는 물에 여러 번 깨끗한 물이 나올 때까지 흔들어 씻어준다.

드디어 달래손질이 끝났다. 달래가 이렇게 수염이 많을 줄이야.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달래장을 내준다면 그건 '난 너를 정말 아끼고 사랑해'라는 뜻이라 느낄 것 같다.

손질만 끝나면 이젠 쉽다.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라주고 양념을 넣고 젓가락으로 비벼주면 달래장 완성이다. 맛이 너무 궁금해서 먹어봤는데 와, 환상의 맛이다. 쪽파양념장이랑은 비교불가다. 역시 요리는 손이 많이 갈수록 더 맛있다.

"국수 먹고 싶다. 시장국수, 아 뜨끈한 멸치국수 먹고 싶다. 맛있겠다!!" 지난 주말 남편이 운전길에 국수집 간판을 보고 했던 한 문장이 머리에 맴돈다.


그럼 달래장도 만들었으니 잔치국수 한번 해볼까? 근데 이미 달래 다듬느라 많이 지쳐버려서 아주 간단한 고명만 준비하고 싶었다. 애호박과 당근을 꺼내본다.

현미유 1T와 다진 마늘 1t를 볶은 후 당근, 애호박을 볶아야 하는데 다진 마늘이 뒤늦게 생각나서 당근, 애호박을 볶다가 넣었다. 아쉽긴 해도 맛의 큰 차이는 없다. 그래도 맛있었다.

육수를 끓인 후 국수도 4~5분 삶는다.

아이가 먹은 잔치국수.

이건 달래장을 얹은 나의 잔치국수다.


남편에게 전화해 퇴근하고 잔치국수 먹을래? 물어봤더니 맛있겠다며 계란지단도 올려서 먹으면 맛있겠다 말한다. 속으로 귀찮아 죽겠는데 그냥 먹지 계란지단 같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계란을 푼다.

입을 씰룩이며 내생에 첫 계란지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국수를 삶고 육수를 더 만들었다.

참 놀라운 사실 하나. 잔치국수에 괜히 계란지단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달래장의 알싸한 매콤함과 고소하고 묵직한 단백질 맛이 환상의 콤비다.

결국 나도 두 그릇, 남편도 두 그릇을 비웠다. 남편 말대로 계란지단 부치길 잘했다.

겨울이면 뜨끈한 시장의 잔치국수가 생각난다. 남편은 "이 국수랑 파전이랑 막걸리 먹으면 최고겠다!"라며 슬며시 나에게 다음 도전 메뉴를 던져준다.


아, 그리고 누군가 달래장 앞으로 또 만들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무조건 YES. 푹푹 줄어드는 달래장에 마음이 급해진다. 달래 다듬을 마음의 준비가 되는 날 마트 가서 뿌리가 최대한 깨끗해 보이는 달래. 이번에는 두 봉지 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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