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자라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연휴의 첫날은 시댁에서 저녁을 먹고, 다음날 지방 친정집으로 왔다. 엄마에게 게장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현관 밖에서부터 달큰한 게장냄새가 콧가를 자극한다. "오, 맛있는 냄새" 평소 말수 적은 남동생도 반응하는 게장냄새는, 우리 집 향수음식이다. 점심식사 방어, 저녁식사 집밥+대방어, 광어. 다음날 점심은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자연산 우럭, 감성돔, 볼락이다. 당분간 회 생각이 전혀 나지 않을 만큼 배가 꽉 차게 회를 가득 먹고, 게장이 있으니 정량을 오버해 숨이 찰만큼 먹었다. 다 큰 30대 남매가 게장과 밥 먹는 모습을 보고 "먹기 싫나? 고통스럽게 밥을 먹노."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엄마밥을 이렇게 먹을까 싶어서 꾹꾹 배에 자리를 늘려가며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
별이도 내 입맛을 닮았는지 게장을 싹싹 비우고, 남편은 자연의 재료를 돋보이게 살리는 장모님 식단을 존중하며 평소보다 나름 꽤 잘 먹었다.
이거 저 가져도 돼요?
저 반지 만들어주세요.
삼촌, 삼촌, 삼촌 어딨지?
친정아빠는 서울 출장 때문에 종종 두세 달에 한 번은 서울에 오셔서 하루이틀씩 주무시고 가신다. 그에 비해 엄마, 남동생은 자주 못 보는데 별이는 삼촌바라기가 되어 온종일 졸졸졸 따라다닌다.
삼촌이 왜 좋냐 물으니, 쑥스러운 얼굴로 손을 베베꼬며 "삼촌이 멋있어서.."라는 별이. 말수 적은 삼촌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삼촌이 하는 다리모양, 행동을 따라 하고 슬쩍슬쩍 표정을 관찰한다.
하루 더 자고 갈래?
원래계획은 친정에서 1박을 하고, 올라가는 중간 여수쯤에서 1박을 하고, 집에 도착해 하루 푹 쉰다음 마지막 연휴를 시댁에서 마무리하는 것이다. 친정엄마가 서울 올라가는 길에 먹으라며 유부초밥과 삶은 계란 도시락을 싸줬다.
점심에 횟집에서 밥 먹고 차 한잔 후 위로 올라가는 것인데, 엄마가 하룻밤 더 자고 갈래 물었다. 남편 없이 왔더라면, 혼자 왔더라면 하루고 이틀이고 더 있다가겠지만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남편도 세 가족 오붓한 여행을 하루쯤 바라지 않을까 싶어 엄마에게 이번에는 그냥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횟집에서 카페에서 이제 곧 이별을 앞둔 우리는 별이의 재롱을 중심으로 웃음꽃을 피웠다. 카페에 비치된 인형 뽑기 하나에도 오늘이 내일에 그리운 날임을 알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서로에게 마음을 전했다. 나를 배웅하는 걸음에 남동생은 하룻밤 엄마집에서 더 자고 간단다. 별이는 갑자기 할머니와 함께 집에 가고 싶단다. "별아, 다음번에 할머니 서울집에 놀러 오세요 얘기해~" 별이는 "싫어 싫어 할머니 데리고 가자..!!" 눈물이 고이고, 차창밖 친정엄마는 뒤돌아 눈물을 훔친다.
결국 서울이 아닌 친정집으로 차를 돌렸다. 하룻밤 연장이다. 흔쾌히 처가에서 하룻밤 연장을 ok해준 남편에게 고맙고, 나의 엄마를 좋아하는 별이에게도 고맙고, 남편과 같은 INTJ인 남동생도 하룻밤 연장해 삼촌과의 추억을 늘려주어 고맙다.
하룻밤 더 지난다고 내일의 그리움을 덜어내겠냐만은 감사함에 내일 떠나는 발걸음,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까지. 모두가 오늘보다 가볍고 따스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