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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반지 좀 구경하자

5세부터 38세까지 설레는 시간

by 별경

밤 11시. 엄마 반지 좀 구경하자고 했다. 10대부터 나는 이 시간이 좋았다. 엄마반지가 손에 헐렁이는 시절부터 엄마 반지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엄마 보석함에는 대개 알이 큰 각양각색의 원석반지가 많다. 원석의 빛과 색을 즐기려면 알이 커야 한다고. 오늘은 5세, 32세, 38세가 엄마 앞에 속닥이며 모였다. 유럽의 어느 플리마켓, 일본의 예쁜 금속공예 상점처럼 껴보고 싶은 것들이 가득하다. 그중에 각자 눈에 딱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이거 나한테 딱맞아요

헐렁이는 부분을 뒤로 숨겨 꽉 쥐고는 딱 맞다며 "이거 갖고 싶어요. 딱 맞아요"라는 5세, "이거 좀 괜찮은 듯" 무뚝뚝하지만 이것저것 구경하는 32세, 물 만난 고기처럼 알차게 껴보는 38세.


엄마 이게 딱 이쁜데,
이거 갖고 싶다

결혼 후 한때 명품에 빠져서 엄마가 준 원석반지, 목걸이들의 매력을 등한시한 적이 있다. 400만 원대 가방을 사고 나니, 800만 원대 가방을 사게 됐다. 600만 원대 목걸이를 사고 보니 900만 원대 목걸이를 보고 있는 나를 봤다. 사실, 그것들은 너무 갖고 싶었던 것들이지만 막상 가지고 나니 내 몸이 자유롭지 못할 무게감 때문에 정말 스페셜한 날 잠깐 할 뿐이다. 서서히 가방은 큰 에코백, 작은 에코백으로 바뀌다가 이제 가까운 외출에는 주머니에 차키, 물통만 넣어 다니는 날이 많다. 결국 나다운 것들로 돌아왔다.

가방 1개, 목걸이 1개로 명품소비는 멈췄다. 남편 덕분에 정말 갖고 싶은 것을 가져보아 생긴 여유, 그리고 1000만 원대를 넘기지 않고 헛헛한 소비를 멈출 수 있게 해 준 것에는 친정엄마의 역할이 크다. 엄마가 선물로 준 원석반지를 시작으로 알게 된 작가님에게 오더 한 나뭇잎목걸이. 그것을 착용한 후로 그 어떤 명품목걸이도 갖고 싶은 욕망이 1도 없어졌다. 확고한 기준이 생긴 내가 좋고, 나의 취향이 마음에 든다.

Special Order @jeweler_momo2

나도 엄마처럼 별이에게, 본인의 색을 나타낼 수 있는 기준을 어릴 때부터 심어주고 싶다. 엄마는 별이가 10살이 되면 비하고 활한 우주 같은 오팔 목걸이를 첫 번째 원석 선물로 주시겠단다. 딸은 결국 엄마를 닮아간다.


열 살 언니야 되면 니 주께,
알았제?
할모니 이거 껴봐도 돼요?

눈보라를 헤치며 6시간 반 만에 집에 도착했다. 친정엄마가 준 원석반지를 정리할 겸 보석함을 꺼내보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친정엄마와 헤어진 지 반나절인데 벌써 그립다. 아쉬운 마음에 전화 한 통 하며 반지를 껴본다. 다섯 살 꼬맹이도 이것저것 껴본다. 곁에 딸이 있어 다행이다.

친정엄마가 넘겨준 원석 반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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