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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의 지혜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가다

by 별경
《대나무가 길게 자라는 이유》

많은 가지를 뻗지 않는다.
에너지를 쓸데없는데 낭비하지 않는다.

자라다 매듭을 만들고, 다시 자라다 매듭을 만들기에 잘 부러지지 않는다. 스스로 매듭을 만든다는 것은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점검하고 반성하고 다시 또 전진하는 것이다.

-유튜브 '전한길의 성공과 행복' 영상 中-


대략 20대 후반쯤 주문제작한 반지와 목걸이로 기억한다. 각각 다른 공방에 요청한 것인데, 당시 꽂힌 문구로 평소 지니고 싶어 나름 신중히 고민 후 주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30대 초반쯤 이 목걸이와 반지를 꺼내봤을 때는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으, 이걸 어찌하고 다녔지
차라리 각인 없는 게 낫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찾지 않는 비선호 파우치에 넣어두고 오랜 시간 묵혀두었다. 어젯밤 친정엄마에게 선물 받은 새로운 원석 반지, 목걸이들을 정리함에 넣으며 전체 보석함을 정리하다 이것들을 발견했다. 10년 만에 손에 쥐었다. 제대로 관리도 안 하고 묵혀둔 이것들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가다

내가 20대 후반일 때 친정엄마가 매우 부러웠다. 엄마 앞에서 "엄마는 좋겠다.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음악, 어떤 그림,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엄마는 잘 아는데.. 나는 이제껏 수많은 것들을 경험한 것 같은데 뭘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 말을 하면서 꺼이꺼이 울었던 밤이 생각난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뒤이어 곧 너도 너의 취향을 찾게 될 것이라고. 본인보다 더 멋진, 지금이 과정이 된 의 길을 찾을 거라 엄마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은 간절함에 양한 악기소리를 들려주며, 끌림이 있는 소리를 따라 음악을 들었다. 해금 연주곡, 다양한 버전의 캐논변주곡, Eddie Higgins Trio의 Shinjuku Twilight를 즐겨 들었다. 별마당도서관에 가서 헤르만헤세 데미안을 시작으로, 황야의 이리,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비슷한 결의 책들을 주말마다 가서 읽었다. 이어폰을 꽂고 화자가 듣는 노래를 함께 들으며 책을 읽을 때 묘한 쾌감을 느낀 휴일의 짜릿함이 생각난다. '취향'을 증명하는 시대에 나는 뒤쳐진 것 같았다. 조금 더 살다 보니 그렇게 느낀 것도 내가 만든 세상이었고, 어쨌든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나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들려주며 부지런히 나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시작점,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시기.

그때를 지나 어느 날부터 나는 매일에 듣고 싶은 분위기의 노래가 생겼고, 아로마마사지를 받으며 후각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에게 증명하는 취향이 아닌, 10년 동안 '스스로에게 좋아하는 것 채우기'를 반복하며 현재 내가 행복의 감정을 느끼는 포인트들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삶이 보다 편안하고 충만해졌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롭고, 믿음직함을 이른다.


이때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날을 되짚어본다. 눈앞이 캄캄하고 두려울 때. 현명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나를 지켜줄 것을 찾아봤지 싶다. 부적처럼 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지니고 싶던 날. 아마 그날 제작 요청한 반지 같다.


목걸이와 반지에 새겨진 문구를 따라, 지난날 어린 나를 만나보니 감사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혼란한 날들도 많았지만, 대나무의 지혜처럼 매듭을 짓고 되돌아보고 매듭을 짓고 되돌아보는 과정을 반복해서 지금까지 성장해 온 내면의 발자취가 보인다. 앞으로도 최소한의 필요한 가지들만 뻗어가며, 매듭지어 스스로 점검하는 견고한 날들을 쌓아가길 바라본다.


10년 전 각인을 새긴 목걸이,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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