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왕비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야
긴 연휴 별이는 아빠랑 온종일 함께하니 아빠 껌딱지다. 보통 평일은 엄마딱지, 주말은 아빠딱지인데, 설당일 집에서 쉬는 오늘 같은 날은 왕 아빠딱지다.
나는 밥하고 과일주고, 설거지, 빨래하고 빨래 널고, 점심 주고 과일주고 설거지, 빨래 개고 저녁 하는 동안 아빠는 별이와 공놀이, 그림놀이, 점토놀이를 하다가 '공주&왕자' 놀이를 했다.
아빠는 왕자야.
나는 공주야.
우리 같이 춤출까?
엄마는 뭐야
엄마는 왕비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야
에?
아빠는 엄마 거야
엄마 짝꿍이라고
아니야
엄마 싫어 미워!
다섯 살 아이에게 왕자님이 된 남편을 뺏겼다.
한참 그럴 시기(Electra complex : 3세~5세의 여아가 아빠에게 애정을 품고, 엄마를 경쟁자로 인식하여 반감을 갖는 경향)라는 것은 알지만, 때때로 가끔 그랬다가 하룻밤 지나서 엄마와 놀이시간이 길어지거나 아빠보다 스킨십(마사지, 포옹)이 잦은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딱지가 되는 것도 알지만, 다 알아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내 배를 갈라 낳은 자식이 나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너무 서운하다. 이제 시작이겠지? 싶기도 하다. 마음이 시려 토라진다. 다섯 살에게 맘 상한 나 자신이 어이가 없지만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남편이 거실에서 아빠와 딸의 관계, 아빠가 왕자님이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들린다. 차분하고 스윗한 아빠다.
오늘이 새로운 서툰 엄마인 나는, 기껏 엉덩이 씻기고 양치시키고 로션 발라 옷을 입혔더니 "잠깐만"하고는 자신 옆에 있는 엄마인형을 할머니인형 자리와 바꿔 버린다. 감정변화가 있을 때마다 표현하는 인형칠판이다.
꾹 누른 서운함이 톡 터져버렸다. 안방에서 이불, 베개, 물컵을 들고 텐트방(독방이 필요한 사람이 자는 곳)으로 왔다.
좋은 엄마가 되기란 참 어렵다. 갈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