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는 영화
영화 레이디 버드는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배우 그레타 거윅이 처음으로 감독으로서 만든 영화이다. 주인공 소녀 레이디 버드는 영화에서 속마음을 독백으로 낭독하지 않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그녀의 감정과 생각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다. 순간순간 속이 들킨 것 처럼 흠칫했다. 다른 부모님은 자식이 특별히 잘난 것이 없어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해주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느낌은 아닌지 불만스럽고 원망스럽고 서럽다고 느낀 순간이 레이디 버드에게도 있었다. 사랑하는것과 좋아하는 것은 단지 감정의 강약 차이가 아닌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그레타 거윅도 했었나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성장기를 거쳐 어른이 된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레이디 버드에게서 찾을 수 있다. 집과 동네를 떠나 도시로 가고 싶어하던 크리스틴(레이디버드)은 지방에서 살다가 본인이 원해서 도시로 상경해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의 과거이다. 그녀가 얼마나 간절히 떠나고 싶어했으며 그 기회를 낚아채기위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리고 한편으로 고향 새크레멘토를 애틋해하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에게 불만스러워하고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어하며 나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조금 특이한 구석은 어쩌면 십대시절에 누구나 가지고 있던 모습일 수 있겠다. 지금까지 그레타 거윅이 출연한 영화들은 대부분 뉴욕이 배경이었다. 노아 바움백과 함께 연출 겸 주연으로 참여한 '프란시스 하' 역시 뉴욕에서 고군분투하는 스토리다. 그만큼 그녀는 도시를 욕망했으나 실제로 도시에서의 삶은 힘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역시 이 복잡한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레이디 버드 영화평론을 보면 사랑스럽다라는 평이 많다. 사실 본인의 모습과 레이디 버드가 오버랩되면서 흑역사를 보는 것처럼 오글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포인트는 분명 있다. 미성년자, 가톨릭여학교, 가족, 집, 새크레멘토.. 그녀를 붙잡아 속박하던 것들이 한 걸음 멀어져 떠난 사람의 눈으로 보니 다 사랑스럽고 외로울 때 삶에서 위로가 되는 소중한 것이 되어있었다. 스스로 지은 예명, 레이디 버드처럼 멀리 날아가버린 후에야 그녀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크리스틴을 사랑하게 됐다. 대상이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그리운 마음이 필요하고 그리운 마음은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커진다. 우리가 이 영화를 사랑스럽다고 느꼈다면 그것 또한 이제는 한 걸음 떨어져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연출이 좋다고 여겨진 부분은 레이디 버드와 엄마와의 관계, 엄마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녀가 딸에게 내뱉는 말은 좀 심할 때도 많고 딸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기도 한다. 엄마도 사람이다. 엄마는 무조건적으로 나를 한없이 사랑하며 격려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를 평가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버거워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은 깊고 한없이 따듯한 사랑이 가득하다. 감독도 이런 마음으로 영화상에서 처음과 마지막을 엄마와의 장면으로 찍은 것이 아닐까?
그레타 거윅, 당신과 만나서 얘기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