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 않은 인생의 가치로운 사랑의 감정들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주연: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올리버(아미해머)
콜미바이유어네임은 퀴어영화에, 성적으로 상당히 노골적인 장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산뜻하고 순수하다. 이렇게 산뜻한 퀴어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주인공 소년 엘리오 덕분이다. 17세 소년 엘리오는 또래 소년들처럼 어울려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보통 혼자 있는 것을 즐긴다. 여름 휴가 동안 독서나 사색을 즐기며 악보를 옮기고 기타를 친다. 아는게 많은 이 소년은 직설적으로 느껴질 만큼 명료하고 깔끔한, 그래서 가끔은 건방지게 느껴지는 말투로 시종일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상에서 연구원인 아버지께서 보조연구원 올리버와 그리스조각품을 분류하는 작업을 할때 나누는 대화처럼 곧게 뻗은 직선이 관능적이며 마치 나를 한번 탐닉해보라는듯 도전적인 시선은 정확히 엘리오를 묘사한 표현이었다. 나른하고 관심없는 척 무심하다가도 사랑에 상처받은 유약한 얼굴과 무방비하게 보일만큼 저돌적인 얼굴을 오가는 이 모든 표정들이 관능적으로 보이는 것은 역시 배우의 역량이 크다. 눈빛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엘리오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콜미바이유어네임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됐다. 영화의 마지막, 모닥불 앞에서 엘리오의 공허하고 슬픈 눈빛은 사랑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가슴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소년의 실연의 마음이 관객의 마음이 되어 그대로 느껴지는 명연기였다. 그는 이미 떠났고 돌이킬 수 없노라고 내귀에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무겁게 짓눌러오는 깊은 슬픔과 텅빈 가슴.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른다. 첫사랑이 끝났다.
한편, 엘리오 못지않게 이 영화를 싱그러울 만큼 산뜻하게 색칠한 것은 류이치사카모토의 may in the backyard, 여름날의 햇살처럼 경쾌하면서도 감성적인 피아노곡들, Sufjan Stevens의 목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이탈리아 크레마마을, 모스카차노마을의 녹음 가득한 풍경이다. 실제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크레마마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담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나무들이 흔들거릴때는 일본영화처럼 담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감성이 느껴진다. 특유의 발랄함과 순수함이 콜미바이유어네임에도 있다.
혼란스럽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엘리오와 진심으로 다가가는 올리버의 사랑은 사랑의 진심의 순간들만을 담아낸 영롱한 진액과 같아 모든 순간이 빛났다. 영화가 끝나고 먹먹한 감정이 그대로 남았다. 관심, 망설임, 설렘, 열정, 환희, 애틋함. 슬픔까지 사랑을 하며 겪게 되는 말로 설명하기 버거운 무수한 감정들이 떠올라 여운이 쉽게 가시지를 않았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슬퍼하는 엘리오에게 감정을 빨리 치유하기 위해 하나하나 삭제하다 보면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에게 줄 것이 별로 없어진다고 말한다.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감정들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은 분명 가치롭다. 그래서 시작이든 하고있든 끝났든간에 인생을 찬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역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중의 마음' 하나쯤은 간직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