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강사놀음 05화

모자라는 커플

2부 놀음 (제가)

by 신디리

내게는 남편이라 부르기에는 관념적인 불편함이 생기고 동거인이라 부르기에는 주관적인 불편함이 생기는 애인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를 깍지라 부른다. 내게 콩깍지가 끼어있다는 의미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것 같다.

8년 전 그를 소개받을 때 나는 깜찍(?)하게도 그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90년 1월생이고 나는 78년 5월생이다. 끔찍하게도 그는 내 나이를 몰랐다. 소개해주는 분께 연상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2015년 10월 27일 저녁 7시에 부전도서관 앞으로 소개팅남을 만나러 나갔다. 부전도서관 앞 버스정류소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이렇게나 익숙하고 사랑스러워질 사람을 매우 어색하고 불편하게 기다렸다. 7시 정각에 전화가 왔다. 어디 있냐고 한 것 같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양같이 생긴 남자가 내 눈으로 달려 들어왔다. 아기 같은 웃음을 달고 내 삶에 합류한 순간이었다.

동그랗게 큰 두 눈은 서로 거리가 멀어 30센티 이하의 거리에서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상당히 귀엽게 보인다. 두 눈 중간에 역시나 큰 코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것이 아주 이국적이다. 해파랑길을 걷던 어느 날 편의점에서 술 취한 아저씨 셋이 그에게 “우와 한국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라고 말을 걸 정도다.


우리 둘은 연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모자(母子)로 보이기도 한다. 모자로 불렸던 에피소드를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한다. 8년 동안 총 여섯 번 벌어진 불상사다.


1. 2016년 첫 해파랑길, 포항에서 울산으로 내려오는 길, 울산 어디쯤에서 배고픈 찰나에 화덕 피자 레스토랑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우리 행색이 워낙 특이해서 그런지 사장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다. 도보여행하냐, 어디서 어디까지 걷냐, 며칠째냐 묻던 사장님은 어떤 사이냐 묻고 우리가 대답도 하기 전에 엄마와 아들이냐고 물었다. 우리 둘은 처음 듣는 ‘엄마와 아들 사이’ 워딩에 충격을 받고 화덕 피자를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사장님은 허둥지둥거렸다.


2. 두 번째 ‘모자 사이 사건’은 조금 더 충격적이다. 2016년 말 같이 살던 투룸이 좁아 이사를 알아보던 우리는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 분양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 1인 2가구는 안 된다고 해서 나는 자격이 안 되겠다고 말했더니 그 상담자가 그건 아주 쉬운 문제라는 듯 깍지를 손짓하며 ‘그럼 이 아파트는 아들 명의로 하면 되죠!’라고 말했다. 모자가 같이 살 집을 보러 왔다고 장담한 분양담당자는 그날 한 건의 계약을 놓치고 말았다.


3. 몇 달 혹은 1년이 지났을까,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매운 볶음 라면 시식을 했다. 깍지가 먹고 나도 먹었다. 맵다고 했더니 시식 코너 여성분이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거 좋아한다며 스몰 토크를 진행했다. 나는 깍지를 가리키며 (깍지는) 매운 것을 잘 먹지만 나는 잘 못 먹는다고 말했다. 시식 코너 아주머니는 세상 부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요즘은 진짜, 엄마들이 너무 젊다. 같이 다니면 오해하겠네...” 나는 그 아줌마의 오해가 상당히 애석했다.


4. 네 번째 사고는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봉화 청량산에 올랐다가 노부부를 만나 말을 나누게 되었다. 우리처럼 부산에서 왔다 하기에 반가웠다. 우리도 부산에서 왔다고 하니 ‘아들이냐’고 물었다.


5. 2019년 6월 해파랑길(울진 부근) 걷다가 정자에서 쉬면서 깍지 얼굴과 팔에 선크림을 발라 주고 있는데 현지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걷고 있는지, 궁금증을 풀다가 마지막 질문인 양 깍지가 내 아들이냐고 물었다. 나는 장난기가 도져 그렇다고 답했다. 아저씨는 근처에 친구가 하는 횟집이 있으니 아들과 함께 쉬고 가라며 적극적인 작업을 걸기 시작했다. 계속 걸어야 된다고 사양했더니 다음에 또 오면 꼭 연락하라며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 준다. 내 핸드폰 번호에 자기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해 보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라며 우리는 줄행랑을 쳤다.


6. 가장 최근의 사고는 작년이었다. 당시에는 여섯 번째라 아무렇지 않다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현타가 오는 사건이다. 내가 운동하는 곳에 깍지가 데리러 왔는데, 같이 운동했던 분이 깍지와 잘 아는 물리치료사였다. 그분이 깍지에게 어떻게 왔냐고 묻자 깍지가 나를 가리키며 데리러 왔다고 했다. 그분이 “아, 어머님 모시러 왔구나!”라고 말했다. 그 물리치료사는 깍지와 나이가 같았다. 운동하는 동안 내가 자신의 어머니뻘이라 생각했다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는 그분이야말로 나와 비슷한 나이대가 아닐까 생각했었기에 가장 충격적인 '모자' 사건이다.


이상이 8년 동안 12살 어린 깍지와 연인으로 지내면서 겪은 모자로 불린 가슴 불콰한 에피소드다. 이제 머지않아 깍지도 내가 깍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가 된다. 깍지가 나를 처음 만났던 날, 나를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만큼 자신이 그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젊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모자(母子)라는 커플로 살아온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부녀처럼 살기도 한다.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나는 깍지에게 물었다. 일곱 살 아이가 아빠는 당연히 안다는 것을 가정하고 묻듯 나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깍지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모른다는 답을 들으면 '깍지도 모르는 게 있어?' 반문하면서 당황하곤 한다. 강의 준비하면서 뭐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은 장군이 천군만마를 지닌 것 같은 것이다.

깍지는 수시로 내 볼을 꼬집는다. 실제로 우리 아버지가 많이 그러셨다. 깍지는 특히 내가 음식을 급하게 먹을 때, 대량 포장한 과자를 한꺼번에 다 먹을 때, 내가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쫑알거릴 때 한 손을 들어 내 양볼을 누르고 튀어나오는 입술을, 양볼을 누르고도 남은 어떤 한 손가락으로 건드리면서 '으이구 기요마!!!'라고 말한다. 깍지는 나를 이뿌 또는 기요미라고 부른다. 누가 봐도 우리는 좀 모자라는 커플이다.

진정한 사랑은 모자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에게 뭔가 모자란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귀여워진다. 깍지가 일부러 혀 짧은 소리로 대답할 때, 일부러 아기처럼 뒤뚱뒤뚱 걸으면서 내가 자기를 잘 보고 있는지 뒤로 돌아 확인할 때, 노래에 맞춰 이상한 춤을 출 때 나는 깍지가 내 아기인 것처럼 사랑스럽다.

우리의 관계도 모자란 상태를 유지한다. 일부러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다. 정열적이고 뜨거웠던 연애가 일단 결혼식과 혼인신고로 인해 남편과 아내라는 타이틀이 생겨버리면 귀여움이 사라진다. 깍지가 남편으로 고정되는 순간 '아빠처럼도 느껴지고 아기처럼도 느껴지는 모자란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아내로 고정되는 순간 남들에게는 엄마처럼 보이지만 우리끼리 있을 땐 철없는 딸처럼 여겨지는 귀여운 순간들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부부라는 형식으로 고정되는 순간 알록달록한 추상화의 색깔이 흐리멍덩해지는 것이다. 사랑은 모자라게 두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쭉 서로에게 좀 모자라는 커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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