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강사놀음 04화

강단 위 신디리 vs 도로 위 신띠리

2부 놀음 (수신)

by 신디리

여자 두 명이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차 한대가 날아오듯 지나갔다. 과속한 차에 한 명은 공중으로 붕 뜨고, 다른 한 명은 길에 쭉 뻗어버렸다. 전날 밤 봤던 유투브 사고 영상이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2018년 봄, 대구에서 강의를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하다가, 막상 편하게 전화걸 사람이 없는 걸 자각하고는 그나마 전화를 걸어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두 세명을 떠올리고 그 사람들과 얽힌 사연이나 추억을 더듬어 간다. 눈은 도로와 교통신호와 다른 차들을 주시하지만 뇌는 끝임없이 다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 돌아다닌다.

만덕 터널은 정체되는 구간이다. 오후에 지나가려면 신호를 다섯 번 이상은 받아야 한다. 터널만 지나면 20분 안에 집에 도착할 수 있다. 만덕 2터널은 터널 직전에 차선이 4개에서 2개로 줄어든다. 아무도 안 다니는 맨 끝 차선으로 쐥 하니 달렸다. 그리고 터널 직전에 끼어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매우 절약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빨리 가려고 하는 자체가 난폭운전이라는 걸 몰랐다. 급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유롭게 사는 게 행동요령이라며 인문학 강의를 하러 다니면서...

터널 들어가기 직전 흰색 소나타가 터널로 들어갔다. 그다음 내가 들어가려고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 소나타를 따라오던 직진 차선의 검정 그렌저도 양보하지 않았다. 나는 급정지했고, 그랜저도 급정지했다. 그랜저가 나에게 미친년이라고 욕할 거 같았다. 창문을 내리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나는 재빨리 터널로 들어왔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다른 차의 운전자들이 내 차만 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랜저가 뒤에 따라오고 있는지 룸미러를 볼 생각도 못했다. 차라리 누군가가 내 차를 세워서 욕이라도 해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터널을 나오자마자 앞차의 소나타 운전자가 얼굴을 창문으로 내밀더니 차를 옆으로 세우라고 손짓했다. 나는 깜빡이를 켰고 소나타 뒤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진 못했다.

소나타 운전자가 내 차로 다가왔다. 나는 창문을 내렸다. 그가 경찰이라며 공무원증을 보여줬다. 면허증 달라고 해서 손을 벌벌 떨며 건네줬다. 경찰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경찰청에 교육하러 다니는 인간이 난폭운전자라고 소문이 나면 이제 강의가 끊기겠구나"였다. 그 사람은 내 차 번호판을 보면서 뭔가를 조회했다. 제발 내가 강의 나가는 곳, 혹은 내가 강사라는 것이, 내 사업자등록증이 나타나지 않는 조회이기를 바랬다. 연예인이나 공인이 사고가 나거나 안 좋은 일에 연루되면 얼마나 자유롭지 못할지 바로 이해가 됬다. 내가 미래에 영향력 있는 강사가 될 자격이 있는 걸까? 내 무의식은 진짜 명강사이길 바라는 걸까? 나는 유명강사가 될만한 내공이 있는 인간일까?

그 경찰은 뒤에 사고가 난 차와 일행이라고 했다. 아마 같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었나 보다. 뒤에 따라오던 일행이 나 때문에 급정거해서 사고가 났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안 그럼 뺑소니가 된다고. 몇 분이 지났을까... 그랜저와 트럭 한 대가 터널을 빠져나와서 내 차 뒤에 주차했다. 나는 차에서 나와 그랜저를 향해 걷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렸다. 무조건 ‘잘못했다, 내가 혼이 나갔었다’ 하면 멱살을 잡지는 않겠지? 기도하면서.

그랜저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문을 쾅 소리나게 닫았다.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나는 "운전을 왜 그런 식으로 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 사람의 2미터 앞까지 걸어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도 내게로 다가오며 똑같은 말을 했다. "운전 왜 그렇게 하세요?" 나는 똑같은 대답을 했다. 다시 남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다가오더니 "아니, 왜 그렇게 운전해요? 차에 할머니까지 타고 계신데..." 다행히 그 할머니는 내리지 않고 계셨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나갔었습니다." 그렇게 화내던 분들도 이후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진심은 다 통하는 건가 보다.

그 차를 박은 트럭에는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 인부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이마에 '착한 사람'이라고 쓰여 있는 분들이었다. 내가 ‘죄송하다’고 하니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시간이 뺏겼지 않냐니까, 어차피 일 마치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세 차의 보험사에서 각각 현장지원 직원이 10분 만에 출동했다. 사진 찍고, 얘기하고, 사인하고, 여러 질문을 했다. 내 보험사가 ‘걱정하지 말라, 월요일에 연락하겠다.’고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보험사 직원이 위로한다고 '괜찮다, 별문제 없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듣고 있던 소나타 차주이자 경찰이 '지금 그런 식으로 말해도 되는 것이냐? 이 사람 때문에 다 이 상황이 됐는데, 그럼 다같이 경찰서로 가서 얘기해볼까? 그런 말은 우리 안 듣는 데서 해야지!' 라고 소리쳤다. 우느라 정신이 없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빨리 보험사 직원이 돌아가야지 괜히 말이 길어져서 일이 커지면 안된다. 세 차의 보험사 직원들에게 100% 내 과실임을 인정했다.

보험회사 직원들과 트럭의 총각 두 명도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나는 소나타와 그랜저 일행에게 터널 들어오면서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말 죄송하다고 다시 한번 얘기하는데 폭풍 눈물이 다시 터졌다. 한 인간이 어떻게 실수를 하게 되는지, 그건 순식간의 일이다. 그리고 그런 실수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다 용서해준다. 왜냐면, 세상은 원래 아름다운 곳이니까. 내가 그렇게 울고 있으니 그랜저 운전자의 어머니가 ‘큰일 날 수도 있었다, 이제 진정하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큰 사고가 날뻔한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섬뜩했다.

신디 : 진짜 내가 그때 뭐가 씌였었나봐. 내가 왜 그랬을까?

깍지 : 계속 운전해서 피곤해서 그렇지! 누구나 실수를 해...

그날 밤 깍지는 이렇게 답해줬다.

나 같았으면 똑같은 상황에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깍지 : 진짜 내가 미쳤었나 봐. 내가 왜 그랬을까?

신디 : 그러니까... 왜 그렇게 급하게 운전했어? 집에 와서 할 것도 없었으면서... 휴 ~

이렇게 응답하는 주제에 나는 소통 강의를 하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인문학 강의, 소통 강의하러 다닐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강의가 많냐, 적냐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 강의를 할 만한 인간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인간은 실수할 수 있지만 그 실수를 통해 꼭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강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뭐냐고 묻는다면 언행일치라고 답한다. 강의에서 말하는 내용대로 살아가고 있을 때 펼친 강의는 대부분 만족스럽다. 반대로 내가 주장하는 내용대로 살고 있지 않을 때 내가 하는 말들은 청중들 가슴에 박히지 못하고 강의실 허공에 길 잃고 헤맨다. 책을 읽는 것보다, 강의 내용에 관해 공부를 하는 것보다, 강의 스킬을 연구하는 것보다 내가 언행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인문학 강의를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깍지가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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