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강사놀음 03화

지킬강사와 하이드

2부 놀음 (수신)

by 신디리

주의 : 하이드가 매우 폭력적이고 저급한 단어를 사용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양면성을 끔찍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소설 속 지킬 박사는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또라이가 숨어 살고 있다. 그 또라이 이름이 하이드다. 지킬 박사는 수시로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하이드 때문에 결국은 죽게 된다.

강의를 할 때 나는 지킬강사다. 인문학은 마음공부라고 정의하는 한없이 인문학적인 강사다. 하지만 일상생활 중에 튀어나오는 하이드 때문에 강사놀음을 하면서도 가끔씩 피곤해진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민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각에 그렇다.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지 않고, 게임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툭, 탁, 빵, 퍽 같은 소리가 터질 때는 그 인간에게 ‘저기요, 이어폰을 끼세요, **놈아.’라고 말하고 싶다. 핸드폰 글자를 입력할 때마다 띡, 띡, 띡 입력 소리가 들릴 때는 상냥하면서도 진정 궁금한 얼굴로 다가가 ‘왜 문자 칠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설정을 해 두었나요?’ 물어보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그 사람의 핸드폰을 낚아채 멀리 던지기 대회에 나간 듯 최대한 멀리, 그리고 세게 집어던지고 싶다. 스벅에 가면 항상 입구 근처 바테이블에 앉는다.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특별히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따귀를 날리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 굉음을 내며 신나게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보면 운전하고 있는 놈을 총으로 쏘고 싶어 진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뻐끔거리는 인간들을 보면 저절로 인상이 찌그러진다. 곧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게 되면 인상이 더 찌그러진다.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상관이 없다. 우리나라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국가니까. 길거리에서 흡연을 허용하는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국가 시스템을 이용해 별 죄책 감 없이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흡연자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다.

길을 걷다 내 앞에서 알짱거리면서 혹은 쩔뚝거리면서 천천히 걷고 있는 노인을 보면 밀치고 씩씩하게 걸어가고 싶다. 마치 늦은 밤 여자아이에게 부딪쳐 쓰러지자 그 아이를 밟고 지나간 하이드처럼.

얼마 전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지하철이 멈췄는데 타려는 젊은 할머니가 가쪽으로 서 있지 않고 정중간에서 내리는 나를 가로막을 태세로 서 있었다. 나는 가쪽으로 그녀를 피해 내리지 않았다. 정중간에서 아주 비껴 나게 내리면서 나보다 30센티는 작을 것 같은 그 사람의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 지하철을 처음 타보지 않았을 텐데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라는 눈빛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휘청거렸고, 지하철에 올라섰다.

나는 그녀에게 준 가해가 충분했을 거란 안도와 함께 누군가 내 뒷덜미를 낚아채 ‘야, 이 사람아, 어른을 그렇게 치고 가면 어쩌나?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경찰서에 가자.’라고 할 것 같아 발걸음이 빨라졌다. 경찰서에 가서 무슨 일 하냐는 질문에 나는 강의를 하고, 무슨 강의를 하냐는 물음에 인문학 강의를 한다고 답하면 ‘인문학 강의한다는 사람이 어른에게 그렇게 폭력을 쓰면 어떡합니까?’라는 추궁을 받는 장면이 떠올라 심하게 도리질을 쳤다.

지하철역을 벗어나 주택가 골목에 들어서자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아니 잠시 들어왔던 가해자의 정신이 빠져나갔다. 아니 하이드는 들어오지도, 빠져나가지도 않았다. 그저 수그러들 뿐이고, 언제나 존재한다.

모든 인간에게 하이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폭력성은 인류애와 함께 역사의 혈관을 직류 한다. 이 세상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때까지 그렇다. 서로 죽이는 활동을 하면서도 영웅이 되고, 나라를 구했다고 하는 주제에 그까짓 가해자 정도야... 하고 고개만큼은 쳐든 채로 수그러지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묻지 마 살인을 하면 전국으로 방송이 되고 평생 살인자로 취급을 받는다. 전쟁 중에 적군을 쏴 죽이면, 많이 쏴 죽일수록 나라로부터 훈장을 받는다. 똑같은 생명체를 소멸한 것이 소속 집단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리 평가가 되는 것이다.

스포츠도 우리의 폭력성을 기반으로 한다. 권투, 킥복싱, UFC, 레슬링, 태권도, 유도, 가라데는 순전히 폭력으로만 상대를 대하는 원시적인 시합이다. 그런 경기를 즐겨보는 것은 지킬이 아니라 하이드다.

중3부터 고2까지 태권도장을 다녔다. 발차기와 품새가 재미있었다. 가끔 관장님은 대련을 시켰다. 나는 그게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서로 발로 차기도 하면서 팔로 내리치라는 것이다. 이제 그런 판을 벌이게 허용해 줄 테니 그 짓을 하라는 거다. 내가 세게 치면 상대도 세게 나올 텐데. 상대 공격이 거세지면 나는 우물쭈물거리면서 그러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진정 자유롭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때림을 나눠보고 싶기도 했다.

가끔 이상한 공상을 한다. 저 사람과 나만 지구에 남게 되어 적이 된다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생존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면 내가 저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러고는 ‘아 저 사람 정도야 껌이지 않을까.’ ‘쟤는 좀 힘들 것 같은데...’, ‘쟤랑은 막상막하겠는걸...’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주 조금 흥분을 하곤 한다.

내 속에 있는 가해자를 인정할 때 마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한다.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순수한 선과 순수한 악으로 나누기 위해 약물을 개발한 것이다.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두 가지 모습으로 나누었다. 결국 그는 하이드의 모습을 한 채로 자살했다. 이 정도 글이면 인정한 게 될까. 이 폭력성을, 가해자의 마음을 좋은 곳에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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