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강사
칭찬만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정적인 말이나 고쳐야 할 점은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는 잘한다 잘한다 부추겨야 진짜 잘하는 스타일이라고 장담하면서... 그것은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 전혀 변화하고 싶지 않다, 그냥 네가 나에게 맞춰라, 나는 성장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쓴소리도 해달라 하고, 기꺼이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다면 더 나은 인간관계나 경력을 쌓을 수 있다. 뜬금없이 기분 나빴던 말들이 종국에는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다.
8년째 강의로 생계를 이어올 수 있도록 힘을 준 문장 2개가 있다. 정작 그 말을 한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내게 그토록 중요한 말을 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언젠가 그분들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그게 자신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될 때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강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2시간짜리 강의만 하다가 처음으로 3시간짜리 강의를 하게 되었다. 늘어난 1시간 분량의 콘텐츠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강의장에 들어갔다. 그저 기존 내용에 좀 더 예시를 넣고 길게 설명하면 될 거라 안위했다. 그 폐해는 강의를 마칠 때 즘 나타났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데 30분이나 시간이 남아버린 것이다. 맨 뒤에 앉은 한 선생님이 의자를 책상에서 쭉 빼 오른 다리를 왼 허벅지에 올리고는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다. 그분은 주절거리던 나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알았으니까 나가 보소!”
무거운 정적이 강의실을 짓눌렀다. 그 강의를 어떻게 마무리 짓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막상 그 말을 한 선생님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전혀 논리적이지도, 공감되지도 않는 내용을 우월감과 자의식에 똘똘 뭉쳐서 말하고 있는 초보 30대 강사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알았으니까 그만 말했으면 좋을 것 같은 강의’는 절대 하지 않으리라 작정하고 강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의 준비에 소홀하지 않는 강사가 된 것이다.
강사로서의 의식과 태도를 바꾸게 한 말이 하나 더 있다. 강의를 시작한 지 3년쯤 지났을까. 그날도 행정공무원 강의를 하러 갔다. 준엄하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강의장에 들어섰고, USB를 본체에 끼우고 PPT를 띄웠다. 마이크를 체크하고 물병을 꺼내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강사님, 계속 그런 표정으로 강의할 거 아니지요?”
나는 그제야 강의를 듣는 교육생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얼마나 불안할까. 강사라고 들어온 사람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강의 준비를 한다. 2시간 내지 3시간 동안 저 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데, 전혀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재미없는 말을 듣는 것은 아주 고역이기 때문이다.
강사라면 그런 불안을 사전에 해소시켜 줄 의무가 있었다. 멋지게 보이려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주 틀린 생각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느 강의실에 들어서든, 사람이 있든 없든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싱글벙글 웃는다.
내가 교육생 입장이 되어보고 더더욱 강의 전의 강사 태도가 교육생들의 호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컨펌하게 되었다. 이틀 동안 CS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받는 과정이었다. 강의 도중에 어떤 사람이 들어와 강사와 아는 사이인 듯 인사를 하고 맨 뒷줄에 앉았다. 그분은 한눈에도 다음 강의를 진행할 CS강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눈웃음이나 고개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내가 투명인간처럼 느껴졌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그 강사는 메인 강사와 큰소리로 웃고 떠들면서도 교육생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의 강의가 막상 시작되자 180도 변한 모습으로 교육생들을 대했다. 과도한 웃음과 질문을 던지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내 명찰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윤정 님은 그럴 때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질문을 하는데, 영 대답하고 싶지가 않는 것이다. 강의에 호응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진작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강사는 강의 전 교육생에게 조만간 있을 강의가 재미있고 의미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표정, 자세, 눈빛으로 최대한 드러나게 해야 한다. “강사님, 계속 그런 표정으로 강의할 거 아니지요?”란 말은 강사와 교육생의 관계가 강의를 시작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강의장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뼈 때리는 말이다.
김희봉 강사 역시 <다시 강단에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학습자는 교육 내용이 아니라 먼저 교수자를 받아들인다. 학습자가 교수자와의 첫 만남에서 느끼는 감정을 비롯해서 교수자의 표정, 시선, 제츠쳐, 매너 등과 같은 비언어적인 행동에 대한 수용 여부가 학습에 앞선다는 의미다. 아무리 교육 내용이 좋을지라도 교수자가 학습자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거나 학습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강의 경력이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두 문장. '알았으니까 나가보소'란 명령문은 '대충대충 강의를 하지 말고 완벽한 콘텐츠를 가지고 와서 우리를 감동시켜 주세요.'라는 강의의 본질을 요구하는 기원문이다. “강사님, 계속 그런 표정으로 강의할 거 아니지요?”란 의문문은 '강사님의 인성이 훌륭하기를 기대하고 강의 내용과 부합해 우리 시간을 알차게 만들어 줄 것 같네요!'라는 감탄문이다. 강의로 먹고사는 한 이 두 문장은 매해 바뀌는 다이어리의 맨 앞장에 바른 정자체로 정좌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