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강사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이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던 1910년 전후에서 해방이 되기까지 35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총 12권의 대하소설이다. 독서 강의를 할 때도 <아리랑>을 꼭 추천도서로 소개한다. 우리 조부모님, 외조부모님이 살았던 시대를 온전히 느껴볼 수 있어서 나를 인문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그렇다.
아리랑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삶을 살다 나온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의 부모님, 오빠들, 친척들은 15세가 된 할머니를 18세 된 우리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보내고 모두 만주로 떠났다. <아리랑>에는 우리 할머니의 가족들이 만주에서 겪었을지도 모르는 내용들이 나온다. '우리 할머니의 오빠도 어쩌면 이 인물처럼 살지는 않았을까?' 외할머니는 위안부에 안 끌려가려고 18세에 자기보다 나이가 두 배 많은 36세, 아이가 셋이고 부인과 사별한 방앗간 주인과 한 밤중에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외할머니의 친구들은 대부분 실종이 되었다고 한다. <아리랑>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아리랑>을 읽은 나는 훨씬 선하고 맑은 사람이다.
"모르면서 떠들지 말고, 공부 좀 하세요!"
그 남자는 내가 말을 하려고 하면 '신디리님, 신디리님, 신디리님' 그러면서 계속 나를 불러댔다.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는 것이 아주 불편했다. 전혀 나를 존중해주지 않으면서 표면적으로는 존중하는 척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해 보였다. 내 말을 유심히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이면서 말이다.
2020년 가을, 오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목소리로 짐작컨대 60대 초반의 남성이다. 그는 내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전화했다는 말로 자신의 소개를 대신했다. '내가 올린 영상 중에 칭찬받을 만한 게 있었나?' 어리둥절했다. 나는 '내가 올린 영상 중에 욕먹을 만한 게 있었나?'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나란 인간이 세상을 아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건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자만심이 절은 건지 헷갈린다.
그 남자는 <아리랑>을 구독자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한 내 동영상에 대해 할 말이 많아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는 우리 외할머니가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한밤중에 시집간 이야기 같은 내용들이 <아리랑>에 있고, 당시 우리 외할머니 친구들은 다 실종되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고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취조를 시작했다. 지금 할머니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1988년쯤 돌아가실 때의 나이가 55세라고 했다. 그렇다면 1933년생이라는 말인데, 18세에 결혼했으면 1951년이 되니까 일제 강점기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그분은 모르면 떠들지 말고 공부 좀 하라고 소리를 친 것이다. 내 동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나처럼 똑똑하고 사회 리더로서 강의도 하는 분이 <아리랑> 같은 엉터리 얘기에 감동을 받아서 유튜브로 퍼트리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리랑>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과연 이게 사실일까'를 생각하라, '정말로 4천 명을 죽였을까?' 고민해 보라고 했다. 조정래가 거짓말을 한 거라고 한다. 광기라고 한다. 4천 명을 죽인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애초에 내 생각을 뜯어고치려고 전화한 사람인 것 같았다. 통화 중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동영상을 비공개로 돌렸다. 내가 비공개로 돌렸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자기 할 말 바로 다음에 ‘끊겠습니다’라는 말을 달아 붙이고는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야 내 영상이 나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챘다. 들은 내용을 고대로 얘기해도 질타를 받을 수 있다. 내가 제대로 걸러서 전해야만 인플루언서가 될 자격이 생긴다.
공무원교육기관에서 독서 강의를 하면서 추천도서로 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과 같은 소설을 언급하면 정치색이 있는 책을 강요한다는 식으로 불만을 내비치는 공무원을 가끔 만난다. 불만의 분위기가 느껴지면 일부러 불편한 책을 많이 읽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보수주의자라면 양서의 진보주의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야만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정치색이 거의 없다. 오로지 우리 조부모님들이 살았던 시대를 살아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현시대 외에 다른 시대도 경험해 보길 바랐기에 추천했을 뿐이다.
최근에 외할머니의 막내 동생으로부터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꼬마일 때 광복했던 날을 기억하고 계셨다. 마을 사람들이 이불장 가장 깊은 곳에서 꺼낸 꼬깃꼬깃해진 태극기를 들고 나와 흔들었다고 한다. 어른들이 ‘광복이 됐단다! 아이고, 광복이 됐다!’며 소리를 지르면서 거리로 나왔다. 조그마했던 외할아버지가 느끼기에도 동네 분위기가 흥분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또 덧붙였다. ‘우리 누이가 안 붙들래 갈라고 광복되기 전에 집에서 잔 적이 없다. 밖에 나가 잤다.’ 외할머니의 아버지가 어딘가 은신처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밥을 가져다주곤 했다는 것이다. 년도 계산을 해보니 12~13세에 집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숨어 잤을 확률이 높았다. 결국 외할머니가 <아리랑>에 나오는 누군가처럼 살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대중 강의를 하고, 영상을 업로드하고, 책을 쓰고, SNS를 하는 순간 책임이 따른다. 다행히 나는 그런 것들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하고, 고칠 점이 있으면 고치면 되지만 흥분한 상태로 막무가내로 예의 없이 자기주장을 말하는 사람들은 내 에너지를 갉아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내공을 길러둬야 한다. 강사는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인플루언서이고, 누군가의 확신에 흠집을 내서 도발시키는 자극제이기도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