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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Mar 19. 2018

영화를 사랑하세요?

시네필의 지형도를 다시 그려보는 <시네필의 초상>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애정고백은 늘 설레고 떨리는 법


사랑의 감각에 대한 자의식


시네필(Cinephile)이란 참 이상한 말이다. 음악, 연극, 회화, 문학 등 어느 예술 분야에나 애호가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애호가 집단을 일컫는 고유 명사를 가진 예술은 오직 영화 뿐이다. 시네필의 어근이 되는 필리아(Philia)라는 말은 본래 이상(異常) 성욕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물론 시네필이란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건 크기의 문제다. 사랑의 크기. 애호가? 아니, 나는 그 이상으로 영화를 좋아해.


시네필이라는 호칭에는 일종의 자의식이 흐르고 있다. 단순히 취미로 즐기는 것 이상으로 영화를 사랑한다는 자기 확신. 예컨대 얼마 전 한 대학생 감독이 GV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정말 사랑합니다!    


물론 사랑고백은 언제나 설레고 떨리는 법. 사랑한다는 말은 확신 없이 내뱉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다소간 이상하게 들렸다. 영화에 대한 사랑을 자신한다고? 어떻게? 영화 동호회나 시네필 커뮤니티에서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나보다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 영화에 대한 애정을 의심해보게 되는 순간들. 에이, 마틴 스콜세지 영화는 당연히 보셨겠죠? 혹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영화도 좋아하세요? 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등뒤에 흐르는 식은 땀. 나는 정말 시네필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사랑이란 감각의 문제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거나 몸이 배배꼬이고야 마는 기묘한 생리현상. 그렇기 때문에 사랑실증주의란 성립 불가능한 법이다. 세상에 수많은 영화가 있는 것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영화 글을 쓸 수도 있고, 영화 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화를 보기만 하는 사람보다 더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방법의 차이일 뿐. 그러니 프랑수와 트뤼포와 함께 회자되는 그 유명한 시네필 3단계 이론은 잠시 잊어버리자.


트뤼포의 시네필 3단계는 잊어 버리자!


시네필의 다양한 얼굴들


안녕하세요? <시네필의 초상> 기획자입니다.


영화 전공자나 영화업계 종사자가 아닌 시네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 <시네필의 초상>은 인터뷰를 통해 영화를 생각할 때 느끼는 생동하는 사랑의 감각을 포착하고자 합니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OOO해야해, 따위의 고정관념은 모두 버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각자가 영화에 대해 품고 있는 기억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예정입니다. 사랑의 정의(定意)에 대한 토론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 대한 수집을 통해 시네필의 지형도를 새로이 그려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입니다.


영화 비전공자나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시네필이라는 말에 결착되어 있는 권위주의를 해체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론에서 논했던 것처럼, 시네필이라는 용어에는 강한 자의식이 담겨 있어 종종 폐쇄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독립 영화계에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영화 커뮤니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 시네필 집단의 마초성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게 균질적인 시네필 문화에 대한 우려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김홍준 감독님이 (인류학 전공자답게) 시네필 하위 문화(Sub Culture)의 다양성에 대한 분석을 제안하신 바 있습니다. 쉽게 예시를 들자면, 씨네큐브를 드나드는 관객과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찾는 관객은 서로 영화 취향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죠. <시네필의 초상>은 제각각의 선호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영화를 사랑하는 다양한 페르소나(Persona), 즉 얼굴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난 시네필이 아닌데?


시네필이라는 말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빗 린치의 팬인 한 인터뷰이는 시네필이라고 불리기를 극구 거부하였습니다. 그(녀)는 데이빗 린치를 예술가 혹은 화가라고 생각하며, 영화라는 매체 혹은 장르에 갇혀서 사고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이러한 목소리 또한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 메타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에, 적극적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영화를 끌어안고 사는 삶


사랑이란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는 법이죠.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있나요?


바쁜 일상 속에서 영화를 끌어안고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짬을 내어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영화에 대한 글을 쓰거나 영화를 직접 만드는 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영화의 영토(領土)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혼자서 영화를 보기 힘들면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글쓰기가 어려우면 팟캐스트나 유투브에서 떠들기도 합니다. 영화 전공자는 아니지만 블로그에 긴 비평을 쓰는 사람들도 있고, 트위터에서 단평을 주고받는 트네필(트위터 시네필)도 많습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자기만의 영화 사랑법을 찾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 영화광부터 실버 영화관 관객까지, 온라인 시네필부터 아마추어 감독까지. 다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인터뷰는 브런치(https://brunch.co.kr/@cine-portraits)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누구든지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원하는 분이나, 주변에 영화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신 분은 아래의 트위터 계정 또는 이메일로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트위터 @cine_portraits

이메일 connected.jeon@gmail.com


다음주에 첫 번째 인터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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