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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팔 Jul 03. 2024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

영화 <양치기> 리뷰

문제적 사회

 영화 <양치기>는 아동 학대와 교권 추락이라는 최근 몇 년간의 사회적 문제를 동시에 다룬다. 가정 폭력을 당하는 초등학교 5학년 요한은 학교에서도 괴롭힘을 당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는 학교가 싫었던 것인지, 무관심한 엄마의 눈길을 끌고 싶어서인지 그는 갑자기 선생님이 자신을 때려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거짓말을 한다. 이로 인해 담임 선생님 수현의 삶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고작 12살 아이의 거짓말 하나가 한 성인의 삶을 완전히 박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냐는 것이다.

 SNS에 떠도는 자극적 숏츠 영상처럼, '요즘 애들' 요한이 그만큼이나 교묘하고 악랄했던걸까? 아동 학대와 교권 추락이라는 어찌보면 상반되어 보이는 두 문제를 동시에 이야기 속에 배치하여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진실 VS 거짓

 어린아이는 솔직한 듯하지만 또 그만큼 자주 거짓을 말한다. 혼나는 것이 무섭거나, 상황을 피하고 싶거나, 관심을 받고 싶거나, 거짓말이 가져올 파장을 어른만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설픈 거짓말을 한다. 누구나 한 번쯤 어린 시절에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초등학생 때 부모님께 휴대폰을 압수당했었는데, 엄마가 잠든 사이 몰래 가져간 적이 있었다. 압수한 휴대폰이 사라진 것을 눈치챈 엄마가 추궁하자 나는 머쓱하게 휴대폰을 내밀며 '핸드폰이 우편함에 들어있던데?' 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했었다.

 아이의 거짓말은 파악하기 쉽다. 말하는 눈을 조금만 제대로 바라본다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성인이라면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 <양치기>속 어른들은 진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아니, 전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아무도 요한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눈 맞춰주지 않은 것이다.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수현이 학교에서 정직을 당하게 되자 사람들은 아주 쉽게 그녀를 비난한다. 그들에겐 그녀를 비난하는 것이 아이를 지키는 정의로운 스승이 되는 가장 쉬운 길이었다. 이 모습 역시 요즘의 사회를 잘 나타내고 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이 하나 일어나면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은 완전무결한 사람인 것처럼 한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고, 그가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도덕성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수현이 아이를 때렸다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접한 학부모들은 항의하고, 봉사활동을 하던 보육원에서조차 그녀를 쫓아낸다. 심지어 같은 선생님들마저 수현을 믿어주지 않고 피하며, 상황을 과장해 소문을 퍼뜨리기까지 한다. 이런 모습을 볼 때, 과연 교권은 누가 추락시키고 있는 것인가? 교권 추락의 가해자는 정말 '약고 악독한 요즘 애들' 인가?

요즘 애들은, 요즘 어른은!

 '요즘 애들은 약아서, 악독해서, 우리 때랑 달라!' 라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에. 이 말은 무려 기원전부터 있어온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천사같이 순수하고 선한 모습이다가 '인간의 본성은 역시 악해. 순 선생 당신의 말이 맞았소!'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악마 같기도 하다. 언제나 그래왔다. 오늘날 와서 달라진 것은 오히려 어른들의 모습이다. 무엇이 옳은지 가르치려 하지 않고, 무엇이 진실인지 파악하려 하지 않고, 내 품안의 것들을 끌어안는 것에만 급급하다. '요즘 어른'의 모습은 그렇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관심 갖지 않고, 적당한 수준의 친절 정도는 선택적으로 베풀어볼 수 있지만 나의 공간과 시간은 내어주기 싫은. 아이가 멍든 채 돌아다니고 비명소리가 울려도 잠깐 눈 감으면 내 시야에서 벗어나니까. 잠깐 눈 감으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양치기>는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짚고 가야 하는 문제들을 거침없이 던진다. 어른이 과연 제대로 된 어런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점점 무관심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너무 쉽게 외면해 오진 않았는지, 보이는 것을 별 고민 없이 진실로 믿고 누군가를 맹렬히 비낸해오진 않았는지.

 요한이 툭, 하고 던진 거짓말의 화살은 스크린을 뚫고 관객들을 날카롭게 찔러온다. 

나는 과연 이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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