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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브러리 Jan 24. 2016

<브로크백 마운틴>(2005)

공백으로 완성되는 숭고한 사랑의 감정

Jack, I swear.


세상에 이리도 슬픈 맹세가 있을까.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단정 지어도 좋을 엔딩씬, 에니스가 남겨진 잭의 셔츠를 보며 내뱉은 세 어절의 독백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게다가 엔딩 크레딧과 함께 재생되는 밥 딜런의 명곡 'He was a friend of mine'과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The maker make'를 듣고 있노라면, 잭과 에니스의 슬픈 드라마가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영화를 보면서 동성애라는 다소 금기시적인 키워드에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내면에 각인된 구시대적 관습이 이 불순한 주제에 몰입하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허나, 이 헛된 상념들은 에니스의 짧은 맹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이 영화는 '동성애(同性愛)'가 아닌, '애(愛)'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만남을 갖는 잭과 에니스.


시놉시스만으로는 동성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일 것이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진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리라 예상했다. 덕분에 그들이 최초로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텐트씬이 선사하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화들짝 놀라 앉은 에니스(히스 레저 분)가 멱살잡이를 하며 관계를 거부해주길 내심 기대했다. 허나, 나의 작은 바람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에니스의 손은 이미 벨트를 풀어재끼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것이었다.


둘의 격렬한 동침을 목격하며 미간을 살포시 찌푸린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림이 너무나도 갑작스레 등장해버리니 의아해할 수밖에. 그러나 전체 영화를 보고 나면, 잠시나마 거부감을 느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단순하게 말초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가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사랑을 택한 두 남자가 겪게 되는 혼란과 방황. <브로크백 마운틴>은 바로 이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잭과 에니스.


두 주인공은 서로를 사랑한다. 비록 초기에는 자신들이 경험했던 강렬한 감정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지만, 재회를 통해 과거의 행위들이 온전히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허나,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결코 순탄치 않다. 둘은 각기 다른 상황에 놓여있던 존재들이다. 잭(제이크 질렌할 분)은 여태 피앙세를 찾지 못한 독신의 몸이지만, 에니스는 아내와 두 딸을 가진 엄연한 가장이다. 설령 사랑의 방향이 서로 같을지언정, 사랑의 방식에는 명백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연인의 관계로 발전하기를 원하는 적극적인 잭과 달리, 에니스는 온전히 사랑에 집중할 수가 없는 처지인 것이다.




둘의 사랑 방식 사이에서 벌어진 간극은 점차 넓어지게 되고, 두 청년이 중년의 영역에 발을 딛게 되는 무렵에 결국 이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는 막을 내린다. 무려 20년의 시간을 오랜 기다림과 짧은 만남으로 채워왔던 그들이다. 마치 에니스가 9살 때 경험했던 이야기가 되풀이되듯이, 둘의 만남은 잭의 죽음으로 인해 종결짓게 된다. 어쩌면 어린 에니스는 자신의 미래를 들여다봤던 것일 수도 있다. 이미 비극적 결말이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그였기에, 잭의 적극성에 훨씬 못 미쳤던 것이다. 만약 에니스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잭과의 아름다운 사랑에 열중하고 전심을 기했다면 그 결과값 역시 같았을까. 아니다. 오히려 가혹한 운명이 그의 숭고한 사랑에게 길을 비켜주었을 지도 모른다.



에니스는 한없이 추락한다.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열병 앞에서 그는 속수무책이다. 사랑이란 위대한 감정 앞에서 그는 한없이 작은 미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성과 본능의 깊은 괴리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는 에니스는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 딸, 온기가 돌았던 가정,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상실해버린다. 새로운 사람과 정상적인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마저 손수 걷어차버린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허름한 집. 그곳이 바로 자아마저 잃어버린 에니스의 마지막 종착지이다.


운명으로부터 모든 걸 빼앗긴 에니스에게 남겨지도록 허락된 유일한 것들은, 바로 잭의 셔츠와 브로크백 마운틴 엽서 한 장이다. 파란만장했던 20년의 모진 세월들이 달랑 두 가지 물품에 단단히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앞에서 진심 어린 맹세를 하는 에니스의 모습이 더욱 슬프게 와 닿는 것이다. 목적어도 없는 세 마디의 불완전한 문장이 진정 이리도 아프게 다가올 수 있는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에니스가 공백으로 남겨둔 목적어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끝까지 살아서 끝까지 사랑하겠노라고. 그리곤 셔츠 옆에 걸린 엽서에는 왠지 이 문장이 잭의 악필로 새겨져 있을 것만 같다. 

        

Well, see you around, I gu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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