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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Feb 20. 2018

2018년 2월 상반기의 영화들

2018년 2월 상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재)개봉작 7편.

<올 더 머니> (리들리 스콧) ★★★

<12 솔져스> (니콜라이 퓰시) ★★

<염력> (연상호) ★★

<블레이드 러너> (리들리 스콧)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피터 웨버) ★★★

<오직 사랑뿐> (암마 아산테) ★★★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김석윤) ★★





R011 <올 더 머니>

리들리 스콧의 만듦새는 장르를 불문하고 안정적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도통 믿어지지 않는 이런 기묘한 전개의 납치극을 다루면서도, 자제된 드라마와 적절한 서스펜스를 배합할 줄 아는 연출력은 거장의 솜씨라 할 만 하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돈에 대한 지독한 이야기로 읽힐 수밖에 없는 이 영화는 보는 것만으로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모든 것을 가진 자가 필사적으로 잃지 않으려 했던 것과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자가 필사적으로 얻으려 했던 것이 동일시되는 순간이 바로 이 영화의 맥일 것이다. 그건 돈이었고, 욕심이었으며, 동시에 무위(無爲)였다. 이토록 허망한 스릴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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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더 머니 (All the Money in the World, 2017)

dir. 리들리 스콧

★★★



R012 <12 솔져스>

상투적이고 과시적이지만, 때때로 강력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이야기가 지니는 강력함이 이 영화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것은 맞다. 개성을 살린 몇몇 인물들에 대한 접근과 묘사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캐릭터들을 전달하는 매개체에 해당하는 화법일 것이다. 포스트 9.11을 소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작품들과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는 진부한 이야기를 같은 화법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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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솔져스 (12 Strong, 2018)

dir. 니콜라이 퓰시

★★



R013 <염력>

연상호의 전작에 해당하는 실사영화 ‘부산행’과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각각 장르적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를 나누어 담아낸 것만 같은 작품들이었다면, 그의 신작 ‘염력’에서 그 두 요소들은 한데 뭉쳐져 있다. 그런데 그 두 목소리를 조화롭게 섞어내는 데 ‘염력’은 결국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돼지의 왕’, ‘사이비’를 위시한 그의 애니메이션이 으레 그러하듯 부조리가 산재한 사회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지만, 초능력이라는 장르적 소재를 결합하자 그 목소리는 가닿을 곳을 잃고 방황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신석헌(류승룡)이라는 캐릭터가 전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 클 것이다. 한 장면 속에서 최대한 어리숙하고 바보같은 얼굴로 초능력을 쓰다가도 그 직후 장면에서는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로 부조리 속에 항거하는 그의 얼굴에 완전히 공감하기란 퍽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염력’은 섞이지 못하는 두 가지 목소리와, 와닿지 못하는 두 가지 얼굴의 영화다. 솔직히, 이제는 실사 영화가 아닌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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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 Psychokinesis (염력, 2018)

dir. 연상호

★★



S015 <블레이드 러너> [재개봉]

이번에 재개봉하는 리들리 스콧의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는, 가장 좋아하는 SF 영화 중 한 편이다. (그리고 아마 내가 좋아하는 SF 영화 중에서 그나마 대중적인 편일 것 같다.) 연출, 각본, 연기, 편집, 촬영, 음악이 모두 유려한 이 작품은, 영화가 다름아닌 종합예술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사이버펑크적 비주얼을 품격있게 끌어올리는 리들리 스콧의 연출과, 신시사이저에 서정을 불어넣는 반젤리스의 음악은 정말 이 영화가 8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라곤 믿기 힘든 세련됨을 보여준다. 디스토피아 SF라는 장르적 매력 속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철학적 서브텍스트를 교묘하게 흘려넣은 이 영화는, 인간을 인간이라 믿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즉, 영화 속 ‘레플리컨트’)를 인간으로 여기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렇다면 이 두 질문을 환기하는 것은, 엔딩 즈음에 등장하는 로이(룻거 하우어)의 대사와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유니콘일 것이다. 어떤 영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재평가되곤 한다. 이미 만들어진 지 3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회자되어야 마땅한 ‘블레이드 러너’는 바로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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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dir. 리들리 스콧

★★★★☆



S016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재개봉]

피터 웨버의 2003년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더없이 잔잔한 연못에 이는 잔물결과도 같은 영화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직접적인 묘사 없이도 관능적인 감각의 결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물론 거기에는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의 섬세한 연기가 큰 공을 차지할 것이다. 서서히 조여오는 이야기 속에서 마지막 파국이 더없이 강렬하게 다가오다가도, 실제 그림과 함께 서서히 멀어지며 이야기를 매듭짓는 방식은 이 이야기의 강약조절이 유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이다. 다만, 이 영화 역시 다른 수많은 영화들이 범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네덜란드어로 들려졌어야 할 네덜란드에서 일어나는 네덜란드인들의 이야기를, 영국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답답한 심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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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2013)

dir. 피터 웨버

★★★



R014 <오직 사랑뿐>

실화가 가진 이야기의 힘을 온몸으로 역설하는 작품. (주인공들의 연설을 포함해서) 강렬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다소 희석되는 것 같은 연출상의 아쉬움은 더러 보이지만, 인상적인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이야기 초반, 루스(로자먼드 파이크)와 세레체(데이빗 오예로워)가 어둑한 밤거리를 걷다가 낡이 밝아오는 장면은 그 자체로 영화의 주제의식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특히 훌륭하다. 어두운 시대를 밝힐 수 있는 의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오늘날 환기되어야 마땅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 원제인 ‘A United Kingdom’이 지니는 중의적인 의미가 상당히 인상적인데, 그 의도를 살리지 못하고 단순한 로맨스물로 치환시킨 국내 제목 ‘오직 사랑뿐’이 퍽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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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뿐 (A United Kingdom, 2016)

dir. 암마 아산테

★★★



R015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어느덧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여전히 김석윤 감독과 김명민, 오달수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은 적잖이 실망스럽다. 2011년작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추리사극이라는 장르를 상당히 균형감 있게 조율해 낸 작품이었고, 2014년작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은 전작보다는 아쉽지만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시리즈물이라는 점에서 평가될 만 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과하다. ‘흡혈괴마’라는 이국적 소재를 선두로 무리한 설정들을 잔뜩 갖다붙이고, 감초와도 같은 역할을 하던 코미디와 유머는 자제할 줄 모르고 남발된다. 이목을 끌만한 이야기들을 조악하게 얽어서 만들어낸 것만 같은 이번 작품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더해지는 무리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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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 Detective K: Secret of the Living Dead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2017)

dir. 김석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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