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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r 11. 2018

2018년 3월 상반기의 영화들

2018년 3월 상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개봉작 7편.

<더 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

<레드 스패로> (프란시스 로렌스) ★☆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

<팬텀 스레드> (폴 토마스 앤더슨) ★★★★☆

<온리 더 브레이브> (조셉 코신스키) ★★☆

<아이, 토냐> (크레이그 질레스피) ★★★☆




R021 <더 포스트>

‘워호스’를 기점으로 노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2010년대에 들어 만들어내는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감탄스럽다. 그의 신작 ‘더 포스트’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가 얼마나 훌륭하고 성실한데다 올곧으며 영리한 연출가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직업적 소명을 다루는 언론영화의 얼개 속에 주도권의 향방에 대해서 역설하는 여성주의적 시각이 우아하게 결합된 이 작품은, 그 가치만으로도 시종일관 빛난다. 거기에는 상술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원숙한 연출은 물론, 리즈 한나와 조쉬 싱어의 걸출한 각본,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의 여전한 호연 역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토마스 매카시의 ‘스포트라이트’가 그랬듯이, 모두의 노력과 업적을 이야기함으로써 ‘더 포스트’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에둘러 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말미에 연달아 등장하는 두 마디의 대사야말로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한다. ‘언론은 정부가 아닌 국민을 섬긴다(The Press serves the governed, not the governer)’, 그리고 ‘캐서린, 그건 당신 일이죠(Catherine, that’s your job)’. 무엇을 알려야 하는가, 그러나 어떻게 밝혀야 하는가, 그리고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더 포스트’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영화다. 다소 사족처럼 덧붙여진 오프닝과 엔딩을 뺀 모든 장면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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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트 (The Post, 2017)

dir. 스티븐 스필버그

★★★☆



R022 <레드 스패로>

이렇게 매력 없는 스파이 스릴러도 오랜만이다.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한 뒤에도 최대한 자극적일 수 있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고 있는데, 그 방법에 있어서 개연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는 사정없이 뒤틀리고 만다. 속고 속일 수밖에 없는 스파이라는 직업적 면죄부 뒤에 숨은 채, 인물들이 특정 행동을 하는 이유를 전혀 따라갈 수 없는 궤적을 만들어놓고는 이야기의 전모를 밝히려 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생길 수가 없는 한계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러시아 스파이를 비롯한 모든 러시아인이 대충 억양만 어설픈 척 하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은 백번 양보해 눈감아주더라도, 이렇게 단점으로 가득한 영화를 보는 것도 곤욕이다. 애써 영리한 척, 사실적인 척 하는 무식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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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스패로 (Red Sparrow, 2018)

dir. 프란시스 로렌스

★☆



R023 <리틀 포레스트>

동화되고 싶은 삶이 있다면 이런 걸까. 동명의 일본 원작 소설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가 있기 때문에, 특유의 분위기가 한국에서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순례 감독의 사려깊은 터치가 녹아있는 ‘리틀 포레스트’는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마치 자극적일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덜어내듯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바람에 실려 흘러가듯 지나가는 사계절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영화에 몸을 맡기면 되는 종류의 영화다. 영화를 가만 보다 보면, 이 낙낙하고 소소한 삶에 그대로 동화되어 살아가고만 싶어진다. 역할에 알맞게 녹아드는 배우들과, 입맛을 자연스레 돋우는 요리들을 보는 재미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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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 Little Forest (리틀 포레스트, 2018)

dir. 임순례

★★★



R024 <플로리다 프로젝트>

만약에 ‘마법의 성’이 진짜로 있다면. 션 베이커의 신작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혹 이런 가정에서 출발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엔딩을 향해 전력질주하면서도, 자신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현란한 포장으로 덮어서 숨기려는 거짓 선물과도 같은 영화다. 이때 그 포장으로 덮어버린 것은 동심이 파괴될 수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일 것이다. 그래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마지막 시퀀스는 그 자체로 황홀한 영화적 순간이 된다. 오직 영화이기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 마법과도 같은 장면은, 이 세상 수많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들에게 관찰자이자 동행자로서 션 베이커가 줄 수 있는 진심어린 선물이다. 변두리의 삶을 다루면서도 결코 손쉬운 동정에 매몰되지 않고,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대신 아래에서 함께 하려 한다. 션 베이커의 시선은 가볍지만 더없이 진중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래서 더욱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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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2017)

dir. 션 베이커

★★★★



R025 <팬텀 스레드>

데뷔 이래로 줄곧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왔던 폴 토마스 앤더슨은, 그의 여덟 번째 장편 ‘팬텀 스레드’에 이르러 홀연히 극의 배경을 영국 런던으로 틀었다. ‘펀치 드렁크 러브’에 이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두 번째 멜로로 보이는 ‘팬텀 스레드’는 한 치 앞도 종잡을 수 없는 환상적인 영화다. 이미 어떤 경지에 도달한 듯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터치는 ‘팬텀 스레드’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이 영화에는 시공간을 배회하는 유령과도 같은 오묘한 신비로움, 그리고 시공간을 기워내는 바느질과도 같은 우아한 매끄러움이 공존한다. 당연히, 이 영화는 드레스를 만드는 의상 디자이너 레이놀즈(다니엘 데이-루이스)와 그 소사회에 들어오게 된 알마(비키 크리엡스) 사이의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건 누가 주도권을 쥘 것인지의 역학관계에 대한 고찰인 동시에, 손에 완전히 넣기 위해서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스터’에서 부성을 다루던 양상과는 정반대의 관점에 서서 ‘팬텀 스레드’는 결핍된 모성에 대해 진진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세계 속에서 바라볼 때 지극히 흥미로워진다.) 이 영화 속의 애증에는 기이한 독성이 서려있는데, 그 독성은 결국 영화 속 ‘유령’의 유일성과 정당성이 부정당할 때 비로소 퍼져나간다. (알마(Alma)는, 스페인어로 영혼을 의미한다.) 아니, 대체 이런 기이한 멜로영화를 폴 토마스 앤더슨 말고 누가 만들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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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스레드 (Phantom Thread, 2017)

dir. 폴 토마스 앤더슨

★★★★☆



R026 <온리 더 브레이브>

조셉 코신스키가 ‘트론: 새로운 시작’ 혹은 ‘오블리비언’에서 보여주었던 비주얼적 강점이 이 영화에서 십분 발휘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의 힘으로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온리 더 브레이브’는, 소방수라는 직업군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로 남게 될 것 같다. 전형적이고 관습적인 관계 혹은 갈등의 양상이 아쉽지만 영화 전체에서 세 번 등장하는 불타는 곰의 이미지는 강렬하고, 실화의 무게에 빚을 지고 있는 엔딩의 여운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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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리 더 브레이브 (Only the Brave, 2017)

dir. 조셉 코신스키

★★☆



R027 <아이, 토냐>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폭행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크레이그 질레스피의 ‘아이, 토냐’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쉽사리 믿어서는 안 된다는 본질적인 역설을 강조하는 특이한 영화다. 실제 사건의 뒤에 감춰진 복잡한 인물 간의 관계와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다루면서도, 이 영화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굴곡진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아이, 토냐’는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간접성을 피력한다. 결국 이야기를 전달할 능력을 가진 자들이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할)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영화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기자’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짜여진) 인터뷰 장면을 제외하면 극중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의 말도 근거를 갖고 있지 않으며 모두의 말이 자신의 입을 통해서 재차 번복되는 이 소동 속에서, ‘아이, 토냐’는 간접적으로 관객들에게 경고한다. 경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절대로 손쉽게 믿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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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토냐 (I, Tonya, 2017)

dir. 크레이그 질레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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