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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r 31. 2018

2018년 3월 하반기의 영화들

2018년 3월 하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개봉작 8편.

<로건 럭키> (스티븐 소더버그) ★★★

<허리케인 하이스트> (롭 코헨) ★★

<쓰리 빌보드> (마틴 맥도나) ★★★★

<120BPM> (로뱅 캄피요)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

<퍼시픽 림: 업라이징> (스티븐 S. 드나이트) ★★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티븐 스필버그) ★★★★

<곤지암> (정범식) ★★☆




R028 <로건 럭키>

은퇴 선언을 번복한 뒤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신작 ‘로건 럭키’는, 여전히 재기 넘치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영화다. 케이퍼 무비에 우리가 으레 기대할 법한 긴장감 혹은 치밀함을 찾아보기 힘든 이 이상한 영화는 웨스트 버지니아라는 미국의 시골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 (극중에서도 ‘뜨내기’들로 지칭되는) 범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로건 럭키’는 예리하기보다는 푸근하고, 치밀하기보다는 엉성한 데서 그 장점을 드러낸다. 마치 소더버그가 2001년에 만들었던 ‘오션스 일레븐’(그리고 그 후속 시리즈에 해당되는 두 편)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느슨하게 풀어낸 ‘오션스 일레븐’이다. 내내 언급되는 ‘로건 징크스’와 대비되는 극의 제목 ‘로건 럭키’야말로, 마냥 긍정적이면서도 때때로 날카로운 이 영화의 화술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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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럭키 (Logan Lucky, 2017)

dir. 스티븐 소더버그

★★★



R029 <허리케인 하이스트>

허리케인이든, 하이스트든, 하나만 했어야 했다. 초대형 허리케인을 소재로 삼는 스펙타클 재난영화로도, 대규모의 현금 도난을 소재로 삼는 하이스트 무비로도 영 부족한 롭 코헨의 신작 ‘허리케인 하이스트’는, 말초적인 감각만을 노려서 손쉽게 만든 또 한 편의 킬링타임 블록버스터로서만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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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하이스트 (The Hurricane Heist, 2018)

dir. 롭 코헨

★★



R030 <쓰리 빌보드>

마틴 맥도나의 신작 ‘쓰리 빌보드’는 그의 전작들(‘킬러들의 도시’, ‘세븐 싸이코패스’)과 마찬가지로 각본의 힘이 굉장하다. 논쟁 가득한 소재들로 플롯을 다루어내는 진중함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플롯을 이끌어가는 기발함이 동시에 돋보이는데, 그래서 이 영화는 진진한 사회드라마로도, 씁쓸한 블랙코미디로도 훌륭하게 기능한다. 사실 ‘쓰리 빌보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세 차례 방화(放火), 그리고 이들의 전말이 밝혀지는 역순 사이에 놓여있는 딜레마다. 여기에는 원죄, 단죄, 속죄라는 영화의 주요 테마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기묘하게 교합되어 있는데, 이를 순행적으로 때로는 역순행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이 영화의 치밀한 구조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완벽에 가깝다. 그렇게 마틴 맥도나가 해부해서 펼쳐놓은 가상의 도시 ‘에빙’ 속 이야기는 결국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가 내뱉는 초반의 대사와 행하는 후반의 행동을 통해 세상으로 확장되고야 만다. 불 지르는 세상의 역설, 비틀린 세상에서 비틀려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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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

dir. 마틴 맥도나

★★★★



R031 <120BPM>

프랑스에서 1980년대 후반에 있었던 에이즈 성명단체인 액트 업 파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120BPM’은 감독인 로뱅 캄피요의 실제 경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자전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여과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큐멘터리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온 힘을 다해 뿜어내는 에너지와, 온 힘을 다해 스러져가는 반에너지가 한 데 모여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이 영화의 정수는, 생명의 활기가 넘치는 파티 장면과 죽음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투병 장면들을 오버랩으로 연결하는 부분들에서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작품의 엔딩이야말로 공감각적으로 결합된 심상들을 영상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를 시청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매우 인상적인 끝맺음 방식이다.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요즘 프랑스어권 영화에서 큰 인상을 남기고 있는 아델 에넬의 연기가 좋고,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의 연기가 특히 굉장하다. 1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해서 한 눈도 팔지 않고 직진하는 훌륭한 퀴어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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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BPM / Beats per Minute (120 Battements par Minute, 2017)

dir. 로뱅 캄피요

★★★☆



R032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는 영화 속에 관능적인 순간을 녹여낼 줄 아는 연출가이고, 제임스 아이보리의 각본을 그가 연출한 신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도 그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현재의 사랑을 간절하게 끌어내려는 당김의 멜로다. 영화의 군데군데 편광 효과 혹은 필름 자국을 삽입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삶에 평생 동안 반복적으로 투사될 사랑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영화이기도 하다(극중 누군가는, 영화를 ‘필터’라 칭한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으며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만, 정작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다(그는 자신의 혈통을 단정짓지도 못하고, ‘아까 그 연주’를 요청받았지만 자꾸 다른 편곡을 들려주며 논점에서 우회한다). 그리고 그건 성정체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성’이 곧 ‘자신감’이라고 믿는 엘리오는, 그래서 올리버(아미 해머)에게 느끼는 감정을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전반부는 성장영화처럼, 후반부는 멜로영화처럼 짜여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분수령이 되는 장면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해 돌려 이야기하는 장면이라는 사실 역시 이 영화의 맥과 맞닿아있다.) 다양하고 정확하게 쇼트들을 쌓아올린 뒤 감정의 절정을 이끌어내려는 순간 그 진앙(震央)을 이어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컷어웨이 쇼트로 마치 봉인하려는 듯한 연출 상의 타이밍이 훌륭한데, 그래서 역설적으로 마치 여진과도 같이 더 짙은 여운이 뒤따른다. 쉽게 잊혀지지 않을 엔딩이 지나가고 나면, 결국 이 영화는 (영화 속 언급되는 여름과 겨울의 의미에서 분명히 유추되듯) 첫사랑의 기억을 떠안아 간직하려는 영화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 반짝였던 여름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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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2017)

dir. 루카 구아다니노

★★★★



R033 <퍼시픽 림: 업라이징>

거대 로봇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이야기가 동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블록버스터. 전작에서 느껴지던 무게감은 (물리적 의미에서든, 비유적 의미에서든) 거의 사라지고, 마치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껍데기스러운 이야기만 남았다. 거대 자본을 등에 떠안은 블록버스터가 지니는 단점들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이 속편은, 기예르모 델 토로가 메카닉과 괴수에 가진 환상과 애정으로 만들어냈던 전작에 대한 향수만 자꾸 자극한다. 제이크(존 보예가) 혹은 아마라(케일리 스패니)와 같은 매력적인 새 캐릭터들이 있지만, 글쎄, 그것만으론 이 속편을 구제하기에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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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 업라이징 (Pacific Rim: Uprising, 2018)

dir. 스티븐 S. 드나이트

★★



R034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를 보며 행복해서 감격에 겨운다는 게 이런 걸까. 이미 ‘블록버스터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붙인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장르에 선사했던 20세기 후반의 황홀함을 21세기가 20년 가까이 지나간 2018년에 이르러 다시금 선물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한 번의 관람으로는 채 다 파악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양의 레퍼런스로 무장한 채, 다양한 취향을 가진 관객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 수많은 서브컬처들을 한꾸러미 펼쳐놓는다. (그 중에서도 스티븐 킹 원작, 스탠리 큐브릭 연출의 1980년작 ‘샤이닝’에 바치는 어마어마한 오마주가 영화의 중반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스티븐 스필버그의 최고작 중 한 편인 ‘A.I.’가 원래 큐브릭의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 오마주는 더욱 흡족하게 다가온다.) 이런 날렵하고 감각적인 영화를 이미 70살이 넘은 노장이 만들었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자신의 영화를 분자 단위로 완벽히 통제하고 있는 거장의 손길이 허무맹랑한 가상세계를 걸출하게 빚어냈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그러니까, 이쯤 되면 블록버스터의 제왕이 꿈의 공장 헐리우드에 재림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위대한 블록버스터는 나를 실재하지 않는 영화 속 그 세계로 완전하게 데려다놓는다. 최근 10년 간 여기에 성공한 영화는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그리고 이 영화가 유일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는 언제나 다재다능했지만, 클래식한 고전의 묵직함을 지닌 ‘워호스’와 사이버펑크적 SF의 화려함을 지닌 ‘레디 플레이어 원’이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는 스필버그의 2010년대 역시 굉장하다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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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2018)

dir. 스티븐 스필버그

★★★★



R035 <곤지암>

가장 인상적인 한국형 호러영화 중 한 편인 ‘기담’을 선보였던 정범식 감독의 신작 ‘곤지암’은, 공포영화의 목적이 오싹한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라 본다면 성공적이다. ‘곤지암’은 상당히 무서운 게 사실이니 말이다. 괴담으로 퍼져있던 곤지암 정신병원에 대한 소문을 직접 체험해보는 방송을 생중계한다는 발상을 그대로 영화에 담아낸 이 작품은, 가벼운 페이크다큐의 형식을 빌어 공포를 유발하기도 한다. 조금씩 긴장감을 고조해가던 이 영화는 후반부에 미친듯이 휘몰아치는데, 그 부분만큼은 말초적 공포를 확실하게 자극한다. 그러나 ‘기담’이라는 인상적인 데뷔작을 선보였던 연출가에게 기대하는 건, 그저 또 다른 파운드 푸티지 장르 중 하나로 남게 될 ‘곤지암’ 그 이상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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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 Gonjiam: Haunted Asylum (곤지암, 2017)

dir. 정범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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