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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Apr 11. 2018

4인 4색: 영화의 모더니즘 아카이브 특별전

2018.04.04 - 2018.04.08, 서울아트시네마.

20세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각각 다른 측면으로 가장 중요한 족적을 남긴 감독들을 꼽으라면,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된 작품들을 만든 네 감독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장-뤽 고다르(프랑스)의 1965년작 ‘미치광이 피에로’, 루키노 비스콘티(이탈리아)의 1954년작 ‘센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이탈리아)의 1962년작 ‘일식’,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프랑스)의 1966년작 ‘당나귀 발타자르’. 이 중 처음 보는 작품도 있었고 재관람하는 작품도 있었지만, 이런 고전영화들을 스크린으로 접할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무리해서 네 작품 모두 (특히 좋아하는 ‘미치광이 피에로’와 ‘당나귀 발타자르’는 두 번씩) 관람했다.



미치광이 피에로Pierrot le Fou.

이 영화는 미쳤다. 장-뤽 고다르가 1965년에 만든 이 영화는, 그가 내놓은 수십 편의 작품들 중에서도 최고작을 고르라고 한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장-뤽 고다르의 초기작 중에서는 보통 그의 데뷔작인 ‘네 멋대로 해라’가 더 자주 언급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치광이 피에로’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누벨바그 사조의 동지라 할 수 있을 프랑수아 트뤼포가 각본을 썼던 ‘네 멋대로 해라’와 비슷한 플롯 그리고 스타일을 고수하는 동시에, 고다르는 자신의 독특하고 기이한 영화세계를 성립하기 위해 한 발짝 성큼 더 나아간다. 장-뤽 고다르라는 연출가이자 각본가가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신변잡기적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우연의 (혹은 역설적으로 집착에 가까운 필연의) 결과로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적 순간의 황홀함이 ‘미치광이 피에로’에는 산재한다. 고다르의 특기이기도 한 시간(그리고 대사)의 순행적 흐름을 뒤섞거나 반복시키는 편집 방식이 두드러지는 와중에 베트남 전쟁 혹은 미소 우주탐사 경쟁 등의 사회적 이슈나 르누아르나 벨라스케스 등의 예술적 역사를 끌고오는 것은 물론, 사무엘 퓰러를 카메오로 등장시키거나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을 통해서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환기까지 놓치지 않는다. 빨강, 노랑, 파랑의 순서로 쇼트를 배열함으로서 영화 속으로 들어가던 ‘미치광이 피에로는’, 마지막 순간 파랑, 노랑, 빨강이라는 역순적 구성으로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온다. 영화 내내 환기되는 피에르와 페르디낭의 관계로 성기게 유추되는 구조와 반(反)구조, 그리고 서사와 반(反)서사. 정말로, 이 영화는 미쳤다.



센소Senso.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는 다소 아쉽다. 비스콘티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아마 ‘시칠리아 3부작’을 들 수 있을텐데, 이 작품들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영화세계에 대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보통 미학적 견지에서 완벽하게 짜여진 장면들이 작품의 주제와 조응하는 접점이 루키노 비스콘티의 특징이자 강점으로 평가받는다고 하는데, 사실 ‘센소’의 경우에는 아름다움이 그저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으로만 활용되고 있다고 할까. 비스콘티의 다른 작품들을 빨리 보고 싶다. 작년 말에 영화의 전당에서 진행되었던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을 가지 못한게 못내 아쉬운데, 언젠간 큰 스크린에서 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꾸 관람을 미루고 있다.



일식L'Eclisse.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고독’이라는 관념을 영화에 훌륭하게 투사하는 능력이 있다. 그가 모니카 비티와 함께 연달아 만든 ‘일식’과 ‘붉은 사막’은 (혹은 조금 더 넓게 보자면 ‘밤’과 ‘정사’까지도) 근원을 알 수 없는 고독에 시달리는 인간군상을 정물적으로 묘사해낸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무엇을 하더라도, 그의 영화 속에서 발버둥 후에 결국 남겨지는 것은 사무치는 고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영화의 엔딩에서 잇달아 제시되는 쇼트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때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는 고독은, 역설적으로 인위적인 소음을 동반한다. 시끌벅적한 도시를 그 자체로 정서적 황무지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시선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당나귀 발타자르Au Hasard Balthazar.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는 마치 최대한으로 배제하고 절제하려는 최소주의적 영화만들기의 결과물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작법의 전선에 위치한 동시에 브레송의 특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닌 당나귀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영화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 ‘당나귀 발타자르’일 것이다. 이 영화는 당나귀를 소유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염세적 담화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대비해보거나, 플롯과 프레임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상기해보면 결국 이 영화는 초월적 신화로서 작동하게 된다. 당나귀는 극중에서 성자라고 지칭된다.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성자는 침묵하고 관조한다. 그것은 곧 로베르 브레송이라는 작가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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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23 미치광이 피에로 (Pierrot le Fou, 1965) dir. 장-뤽 고다르

S024 센소 (Senso, 1954) dir. 루키노 비스콘티

S025 일식 (L'Eclisse, 1962) dir.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S026 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 1966) dir. 로베르 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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