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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y 13. 2018

2018년 4월 하반기의 영화들

2018년 4월 하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개봉작 6편.

콜럼버스 (코고나다)

몬태나 (스콧 쿠퍼)

판타스틱 우먼 (세바스티안 렐리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루소 형제)

클레어의 카메라 (홍상수)

렛 더 선샤인 인 (클레르 드니)




R040 <콜럼버스>

코고나다의 장편 연출 데뷔작 ‘콜럼버스’는 고요하고 서정적이다. 미국 인디애나 주의 콜럼버스를 영화의 배경으로 (그리고 제목으로) 삼은 뒤 ‘건축’이라는 소재를 ‘사람’이라는 화제로 풀어내고 있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느리게 호흡한다. 콜럼버스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남자 진(존 조)과 콜럼버스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여자 케이시(헤일리 루 리차드슨)의 이야기는, 결국 머묾과 떠남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일 것이다. 마치 제어할 힘 없이 그저 흘러갈 뿐인 삶에서 한 조각을 떼어내 관찰하려는 것만 같은 ‘콜럼버스’는, 결국 극중 인물들의 대사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세상 어디쯤을 떠돌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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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Columbus, 2017)

dir. 코고나다

★★★☆



R041 <몬태나>

스콧 쿠퍼의 신작 ‘몬태나’는 숱하게 다루어져왔던 북미 대륙 개척시대의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원주민들과 이주민들 사이 뿌리깊은 갈등의 역사를 당시의 시점으로 풀어내고 있는 이 영화의 전반에는 엄숙한 정서가 깔려 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끔찍한 비극 속에서 누가 원죄적인 입장에 서 있는지를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두 인물의 개인사로 다루고 있지만, 결국 그 해결의 실마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는다. 비장미의 측면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이 적지 않고 인물들의 연기가 좋지만, ‘몬태나’는 실제 역사가 그랬듯 답을 정하기에는 지난한 이야기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이를 잘 알고 있다.)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 것인가. 달리 말하면, 누가 누구를 용서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엔딩 후에도, 이 질문은 결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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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 (Hostiles, 2017)

dir. 스콧 쿠퍼

★★★



R042 <판타스틱 우먼>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기도 한 칠레 감독 세바스티안 렐리오의 신작 ‘판타스틱 우먼’은 강렬한 드라마다. 트랜스젠더 마리나(다니엘라 베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사건을 영화 처음부터 제시함으로써 상실 이후에 닥쳐올 일들을 여파의 형태로 묘사하고자 한다. 결국 차별적 사회 속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마리나가 이 영화의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양상은, 그녀를 보듬어 주던 사랑이 상실된 상태였다는 점과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오프닝이 그녀가 갈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갈 수 없었던 장소인 이과수 폭포를 보여주는 쇼트라는 점 역시 그렇다.) 결국 ‘판타스틱 우먼’은 그녀를 억압하고 때로는 폭압하는 사회적 차별을 직시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직설적으로 묘사되는 환상이 일종의 전환점처럼 활용된다. 소수자에 대한 편협한 인식에 맞서는 마리나의 홀로(그리고 굳게)서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환상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향한 도움닫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고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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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우먼 / A Fantastic Woman (Una Mujer Fantastica, 2017)

dir. 세바스티안 렐리오

★★★☆



R043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히어로 블록버스터라는 장르 하에서 온갖 도전과 실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마블 스튜디오의 지난 10년 간을 집대성한 결과물이 바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일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지난 두 편을 훌륭하게 완성했던 루소 형제가 연출한 이 작품은, 마블 스튜디오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분투한다. 마블 유니버스 하에서 만들어진 십수 편의 영화들을 배경으로 깔아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소 복잡하고 피로하지만, 영화의 전개 양상을 보자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마블 스튜디오가 여전히 과감하고도 능숙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십 명의 등장인물들을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으면서도, 관객들에게 기시감 대신 충격을 선사하는 능력도 돋보인다. 빌런을 단순한 선악 구조로 파악한 뒤 휘발시키는 대신, 하나의 사연을 지닌 주요 캐릭터로 다루고 있는 점 역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혹은 ‘블랙 팬서’가 그랬듯) 최근 마블 히어로 영화들의 장점을 그대로 닮아 있다. 무엇보다도 무난함 대신 과감함을 택한 결말부의 충격이 가장 인상적이다. 다만, 이야기의 규모 자체가 워낙 거대해져 버린 까닭인지, 개인적으로는 루소 형제가 이전에 만들었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보다는 그 짜임새의 측면에서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어쨌든, 1년 뒤에 공개될 다음 ‘어벤져스’ 시리즈를 기대하기에 모자람 없는 단단한 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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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 2018)

dir. 조 루소, 앤서니 루소

★★★☆



R044 <클레어의 카메라>

점점 더 직설적이고 자전적이며 모호해지는 홍상수 영화세계의 쉬어가기. 그러나 ‘클레어의 카메라’는 공간(영화제가 열리는 깐느)의 특수성과 시간(특정되지 않도록 조각난 며칠)의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홍상수의 여타 영화와 다를 바 없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시간을 뒤섞는다는 것은 인과의 양상을 뒤틀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클레어의 카메라’에서 이 기묘함은 사진을 통해 드러난다. 클레어(이자벨 위페르)가 찍은 사진을 통해서 두 사건 사이의 선후관계는 분명히 드러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선후관계는 어느 쪽으로 이어붙여도 설명될 수 있도록 (말하자면 중의적으로) 짜여져 있다. 그러니까 홍상수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그의 영화 속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를 닮아 있다. (즉흥적으로 촬영된 이 영화 속에서 기대해야 할 것은 치밀한 구조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의 측면에서, 홍상수의 영화는 계속해서 꿈과 환상을 영화 속으로 밀접하게 끌어오고 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절대로 떼어놓고 볼 수 없을 이 영화는, 그가 영화를 만든 순서가 (국내 개봉과는 다소 다른) ‘밤의 해변에서 혼자’, ‘클레어의 카메라’ 그리고 ‘그 후’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극중 클레어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기 전과 후의 사람이 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극중 두 가지 사건의 선후관계를 파악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듯) 그 변화의 방향은 오리무중일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 역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필모그래피 속의 특정 위치에 놓인 ‘클레어의 카메라’ 역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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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의 카메라 / Claire’s Camera (클레어의 카메라, 2017)

dir. 홍상수

★★★



R045 <렛 더 선샤인 인>

클레르 드니의 신작 ‘렛 더 선샤인 인’은 얼핏 그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로도 보인다. 어쩌면 홍상수의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인물들이 군데군데 등장한기도 한다. 그녀의 영화들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던 (자전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만 같은) 문제의식은 다소 옅어진 대신, 인물에 중점을 두는 이야기의 자체의 상대적인 세속성은 더욱 강해졌다. 사랑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이 영화가 통념으로서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이자벨(줄리엣 비노쉬)의 이야기는, 결국 이야기 내내 원을 그린다. 그렇다면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인) ‘내면의 빛나는 태양’을 과연 이자벨은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백미는 엔딩에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을 통달한 듯 예언 같은 조언을 주는 상담사가 그 직전 장면에서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엔딩크레딧과 함께 합쳐져 마치 ‘후일담’처럼 제시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자신이 러닝타임 내내 역설하던 ‘대화’의 무위성을 스스로 증명하는, 실로 신묘한 화술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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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더 선샤인 인 / Let the Sunshine In (Un Beau Soleil Intérieur, 2017)

dir. 클레르 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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