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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y 20. 2018

19th 전주국제영화제 JIFF

2018.05.03 - 2018.05.12


1일차.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신작이자 유작 ‘24 프레임’을 만나기까지 기다림이 길었다. 2016년 7월 갑작스런 그의 부고를 접했고, 그 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키아로스타미가 작업 중이던 신작의 일부분을 단편 형태로 만났다(완성본을 보고 나니, 그건 스물 네 개의 프레임 중 두 번째 프레임이었다). 감독님의 아드님과 제작자께서 부국제에 오셨고, 감독님의 작고 이후에도 마지막 작품을 이어서 작업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듬해, 2017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키아로스타미가 만들었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16분짜리 단편 ‘집으로 데려다주오’를 만났다(단편이라는 형식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 역시 걸작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4 프레임’이 공개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국 아무 소식도 없었고, 아쉬운 대로 작년 부산에서는 마침 근처 갤러리에서 열렸던 그의 사진전에 다녀왔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4 프레임’을 보았다. 꼬박 2년 만이었고, 그만큼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높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걱정도 조금 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24 프레임’은 완벽한 걸작이었다.



키아로스타미는 일상과 영화 사이에서(‘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체리 향기’),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서(‘클로즈 업’, ‘사랑을 카피하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자신만의 영화언어를 묵묵히 탐구해 온 위대한 거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영화에서 (그리고 특히나 ‘텐’에서) 드러나 있듯, 진심을 담아낼 수만 있다면 그 형식은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 ’24 프레임’은 이런 그의 고민을 절실하게 담아낸 스물 네 조각의 사유다. 필름은 1초에 24개의 프레임을 품고, 1초에 담긴 24개의 프레임은 각각 한 장의 사진이다. (결국 영화란, 뤼미에르 형제가 그랬듯이 움직이는 사진을 만들고자 하는 염원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24 프레임’ 속 24개의 단편들은 전체로서는 영화의 형식을 박제하고, 개별로서는 영화의 방향을 은유한다. ’24 프레임’의 첫 단편과 마지막 단편을 대조해서 보면 다음 질문은 더욱 명확해진다. 영화는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하는가. 나는 ’24 프레임’의 마지막 순간 영화라는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극점을 경험했다. 그렇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스스로 영화가 되어 자신의 마지막 프레임을 남기고 세상을 영영 떠나갔다.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독님. 떠나가신 그 곳에서는 편히 쉬세요.


그리고 우연히 (그러나 다분히 의도적으로) ’24 프레임’을 본 뒤에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널리 알려진) 티에리 프레모가 나레이션을 맡은 ‘뤼미에르!’를 보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영화예술의 창시자라 불리는 뤼미에르 형제가 초기에 찍었던 100개 남짓의 영화들을 모은 일종의 꼴라주 영화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헌사로 꽉 들어친 감격스러운 90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이 영화를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이 두 영화를 같은 날 연달아 보았다는 것만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결코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2일차.

전주의 두 번째 날에는 세 작품을 보았다. 한 편의 러시아 영화와 두 편의 루마니아 영화. 그 중 안드레이 크레튜레스쿠의 ‘찰스톤’은 꽤나 아쉬운 영화였다. 흥미로운 소재를 다소 지지부진하게 풀어나가는 역량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두 편은 아주 좋았다.



먼저 알렉세이 게르만의 신작 ‘도블라토프’. 사실 이름만 들었지 이 감독의 작품을 접한 적이 없었는데(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획전 취소는 굉장히 아쉬운 일이다), ‘도블라토프’가 정말 좋아서 빠른 시일 내에 그가 만든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다. ‘도블라토프’는 실존하는 러시아 작가인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6일간을 함께하는 일종의 르포 영화처럼 보이는데, 그의 인생이 위기에 처한 일주일간을 다루면서도 영화의 연출톤은 상당히 낭만주의적이다. 말하자면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 낭만주의자들의 주간이라고나 할까. 이 영화에서는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날짜를 제시하는 방식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이를 주인공의 꿈과 연결시켜서 볼 때의 모호함이 이 영화의 작법과 맞닿는 지점에서 특히나 훌륭하다.



콘스탄틴 포페스쿠의 ‘포로로카’는 15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굉장한 흡인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순간의 실수로 어린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그리고 그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극의 초반과 후반에 각각 결코 잊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롱테이크 쇼트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지독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결국 극의 제목인 ‘포로로카’가 아마존 강 유역에서 엄청난 기세로 역류하는 해류를 의미한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영화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전락하는 이의 모습을 따라가며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것일 테다. 끔찍하리만치 처절한 이 영화의 마지막을, 정말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3일차.

마지막 날에는 네 작품을 보았다. 고빈다 반 마엘의 ‘구틀란트’는 사실 (‘팬텀 스레드’에서 인상적이었던) 비키 크리엡스가 출연해서 보게 되었는데, 이야기가 흥미로운 지점이 있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온도 차이가 상당해서 그 얼개에 있어 아쉬운 부분이 더 크게 밟히는 작품이었다. 덴마크 감독인 이사벨라 에클로프의 ‘홀리데이’는 직설적인 표현에서 오는 영화적 각성 효과가 분명히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사무엘 마오즈의 ‘폭스트롯’은 강렬한 드라마였다. 데뷔작 ‘레바논’으로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뒤 8년만에 차기작 ‘폭스트롯’으로 돌아온 그는, 과작을 하면서도 여전히 안정적인 만듦새를 자랑한다. 특히나 화면을 구성해 담아내는 방식이 절제와 은유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하다. 오프닝과 엔딩 부분에 마치 프롤로그처럼 위치한 두 장면을 제외한다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을 이 영화는, 상황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된 이스라엘의 두 공간을 통해서 서로 겪은 적 없는 세계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건 세상 모든 ‘군대’라는 고립된 공간의 고질적인 특성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폭스트롯’은 이렇게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특히 소위 ‘3부’의 내용을 보자면) 소통의 부조리를 통해서 화합의 가능성을 점치는 기묘한 화술이 탁월한 작품이기도 하다. 소재의 명민한 활용이 돋보이면서도, (담배, 혹은 상처처럼)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서 감정을 담아내는 화술 역시 굉장하다.



그리고 올해 전주의 마지막 영화였던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통행증’. (개인적으로 현대 독일에서 가장 훌륭한 감독 중 하나라 생각하는)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이 신작은, 그의 여전한 기량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마치 그가 이전에 만들었던 ‘바바라’와 ‘피닉스’를 한데 섞어놓은 것 같은 이 작품은, 환상적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분명히 극의 시간적 배경은 독일군 점령기인 1940년대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야기 자체는 현대의 시간적 배경을 그대로 상정한 채 진행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두 가지 시간축을 기묘하게 병치시켜버림으로써 두 가지 시점의 이야기를 동일시하려는 이야기다. 하나는 인종 청소라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던 1940년대 당시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이민자들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현재의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펫졸트는 이 두 가지 시대가 다를 바 없다고 과감하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데, 그 화술은 영화 속에서 은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있다는 점에서 특히 훌륭하다.) 이야기 속에서 교묘하게 엇갈리는데다 겹치도록 짜여져있는 두 여성의 이야기는 이를 각본 상으로 조율하고 있다. ‘피닉스’에서와 마찬가지로 ‘통행증’에서도 오인 그리고 우연의 모티브는 끊임없이 제시되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각본과 연출의 능숙함이 정말 굉장하다. 결국 ‘통행증’이라는 영화의 제목에서도, 그리고 극 초반 주인공과 호텔 주인의 이야기에서도 드러나 있듯, 이 영화는 떠난다고 약속해야만 머무를 수 있는 ‘중간자’들의 이야기다. 두 가지 시간대를 섞어버린 끝에 시공간을 아득히 초월해버리는 것만 같은 이 영화의 엔딩은, (전쟁 시대의) 역사와 (이민 사회의) 실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영화적 상상력을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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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32 24 프레임 (24 Frames, 2016) by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란)

S033 뤼미에르! (Lumière!, 2016) narrated by 티에리 프레모 (프랑스)

S034 도블라토프 / Dovlatov (Довлатов, 2018) by 알렉세이 게르만 (러시아)

S035 찰스톤 (Charleston, 2017) by 안드레이 크레튜레스쿠 (루마니아)

S036 포로로카 (Pororoca, 2017) by 콘스탄틴 포페스쿠 (루마니아)

S037 폭스트롯 / Foxtrot (פוֹקְסטְרוֹט, 2017) by 사무엘 마오즈 (이스라엘)

S038 구틀란트 (Gutland, 2017) by 고빈다 반 마엘 (룩셈부르크)

S039 홀리데이 (Holiday, 2017) by 이사벨라 에클로프 (덴마크)

S040 통행증 (Transit, 2018) by 크리스티안 펫졸트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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