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o Jul 05. 2018

2018년 6월 하반기의 영화들

2018년 6월 하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개봉작 6편.

아일라 (잔 울카이)

개들의 섬 (웨스 앤더슨)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비에 르그랑)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스테파노 솔리마)

마녀 (박훈정)

오 루시! (히라야나기 아츠코)




R060 <아일라>

처음부터 끝까지 순하기만 한 잔 울카이의 ‘아일라’는 실화를 최대한 극화하여 전달하려는 뻔한 목표 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터키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직설적인 이야기로 웃음과 감동을 분명하게 전달하지만 그런 보편적인 감정선을 건드리는 것 외에는 어떤 감흥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라야 할 후반부가 오히려 시들해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어떤 과오를 범하고 있는지가 명확하다고나 할까. 배우들의 연기가 매력적인 부분은 물론 있었지만, 그 외에는 이 영화에서 별다른 매력을 찾기 힘들었다.

-

아일라 (Ayla, 2018)

dir. 잔 울카이

★★



R061 <개들의 섬>

어딜 봐도 웨스 앤더슨이 만들었을 법한 애니메이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대칭적인 구조를 고집하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미학은 분명히 실사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러나 웨스 앤더슨이 처음 만들었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Mr. 폭스’가 다소 아쉬웠는데, 그의 두 번째 애니메이션인 ‘개들의 섬’은 그가 만든 장편영화 중에서 가장 별로인 작품이었다. (여전히, 그의 최고작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지나칠 정도로 극명하게) 일본 문화, 그리고 반려견을 향한 감독 본인의 애착이 드러나 있지만, 이를 전달하는 시선에 있어서 이 영화는 그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실제 지명 ‘나가사키’를 떠올리게 하는 ‘메가사키’라는 도시의 이름, 그리고 ‘군함도’라는 실제 역사와 그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쓰레기 섬을 겹쳐서 생각할 수밖에 없게 영화의 줄기가 짜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판한다고 외치는 듯한 이 영화의 시선은 결국 철저히 (서양인인) 타인의 것으로 전제된 채 진행된다. (일본어와 영어를 극중에서 전복시키는 양상이야말로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등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이들의 영화에서 따온 직접적인 오마쥬가 곳곳에 배어있는 것처럼, 일본 문화를 영화의 틀에 담아내는 웨스 앤더슨의 시각 자체는 충분히 흥미롭고, 그의 특징적인 영화세계와 이러한 시각이 결합된 결과물 자체도 무척이나 아름답고 인상적이며 굉장하다. (미학적인 프레임과 시퀀스의 구성이 정말 강박적일 정도로 짜여져 있는데, 이는 극중 두 언어의 자막이 병치되는 양상에서부터, 시네마스코프 영상 내에 자막을 넣지 않겠다는 결정까지 모두 일맥상통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제까지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이 모두 그랬듯, 시각적인 측면에서 황홀할 정도로 훌륭하다.) 그러나 결국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타인의 시선’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 영화는 무비판적인 애정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여준다.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워낙 좋아했던 관객으로서는, 그의 신작에 열렬히 환호할 준비가 되어있었기에 더욱 더 아쉬울 뿐이다.

-

개들의 섬 (Isle of Dogs, 2018)

dir. 웨스 앤더슨

★★★



R062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극적인 전개를 뚜렷하게 돌출시키지 않는 드라마라도 이렇게나 무시무시할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팽팽히 대립하는 두 인물의 측면을 통해 구조를 조성하고, 이를 러닝타임 내내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어떤 장면에서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을 무기 삼아 시종일관 관객들을 효과적으로 압박한다. 그 종국에 맞이하게 되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정말이지 공포영화라 해도 과장이 없을 정도로 그 영화적 에너지가 살벌하다. 사회적인 화두와 개인적인 사건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혹은 주어진 상황과 인물들을 통해서 서스펜스를 어떻게 직조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릴 것인가. 놀라운 집중력으로, 자비에 르그랑은 이런 강렬한 드라마를 장편 연출 데뷔작으로 내놓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과 더불어 최고의 데뷔작에게 돌아가는 미래사자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사회 고발 드라마를 다루는 이 진진한 시선을 보니,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기대하게 될 것 같다.

-

아직 끝나지 않았다 / Custody (Jusqu’à la Garde, 2017)

dir. 자비에 르그랑

★★★



R063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시카리오’라는 이름을 달고 속편으로 등장한 이상,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의 비교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드니 빌뇌브의 전작이 느리게 엄습해오는 현실적인 공포를 탁월한 시선으로 담아냈다면, 스테파노 솔리마의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는 시청각적으로 압도적인 충격을 통해서 현실적인 공포를 담아낸다. 말하자면 드니 빌뇌브가 감춤으로써 응축시키던 현장감을 스테파노 솔리마는 드러냄으로써 폭발시킨다고나 할까. 이 두 편은 다른 방식으로 같은 강렬함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서로 비교될 때 흥미롭다. 속편의 시작 지점이 북미 대륙이 아니라는 데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작품은 멕시코-미국의 국경 지대를 중점적으로 다루던 전작의 시선을 확대시키고, 테러리즘이라는 사회적 화두로 무게중심을 다변화하려 한다. 전작에서 인상적이었던 에밀리 블런트의 캐릭터가 나오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베니시오 델 토로의 캐릭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강렬함이 있다. 특히나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의 연기는 정말이지 무시무시해서, 그가 얼마나 굉장한 배우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스페인어로 암살자를 의미하는) ‘시카리오(sicario)’를 재차 환기시키며 끝나는 이 영화는, 이어지는 속편이 또 어떤 식으로 완성될 것인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품게 한다.

-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Sicario: Day of Soldado, 2018)

dir. 스테파노 솔리마

★★★



R064 <마녀>

한국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강력한 쾌감이 있는 액션 시퀀스가 매우 인상적이고, (김다미의 열연에 힘입어) 잊기 힘들 것 같은 강렬한 캐릭터가 있음에도, 박훈정의 신작 ‘마녀’는 단점이 눈에 띄게 산재하는 영화다. 활용할 거리가 다변적인 소재와 이야기를 갖고도, 모든 상황과 모든 인과를 캐릭터의 입으로 꼭 설명해주어야만 한다고 믿는 이 영화의 대사들은 반복적이며 상투적이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캐릭터들로 빼곡히 채워진 도식적인 인물상은 물론이고, ‘신세계’에서 발휘되었던 홍콩 누아르에의 벤치마킹을 통한 장르적 장점은 B급 액션을 차용하려는 듯한 ‘마녀’에서 전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일례로, 모든 대사 속에 욕설을 끼워넣음으로써 캐릭터의 성격을 묘사하려 하거나, 굳이 어색한 영어 대사를 중간에 넣음으로써 캐릭터의 특징을 강조하려 하는 것 모두 과도하고 진부하다.) 도식적으로만 짜여진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조는 액션의 강렬함에 도무지 발맞추지 못하고, 결국 속편까지 암시하며 끝난 이 이야기에도 전혀 기대감을 불어넣지 못한다.

-

마녀 / The Witch: Part 1. Subversion (마녀, 2018)

dir. 박훈정

★★



R065 <오 루시!>

가끔, 영화적 완성도를 차치하더라도 기묘하게 빠져드는 영화가 있다. 히라야나기 아츠코의 장편 연출 데뷔작 ‘오 루시!’가 바로 그렇다. 이 기묘한 사랑영화, 혹은 이 기묘한 로드무비는 관객들에게 실로 기묘한 위안을 준다. 언뜻 소품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사실 살펴보면 세심하고 치밀한 구조로 짜여져 있다. 이 영화에서 (루시, 그리고 톰처럼)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와 (영어학원, 혹은 미국처럼) 일상을 벗어나는 행위가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 그리고 붙여진 이름에서부터 가발, 탁구공, 문신에 이르는 소재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생각하면 특히나 그렇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개인이라는 특정한 세계와 인정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가벼이 던지는 속깊은 고찰이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투신하는 그런 사회라는 점이, 왜 굳이 두 차례나 묘사된 걸까.)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 혹은 루시의 포옹이란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걸까. 그건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분명해 보인다.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여느 지하철, 가짜 이름 그러나 진짜 포옹. 인물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이지 한 마디 말도 없이 뭉클한 위로를 전한다.

-

오 루시! (Oh Lucy!, 2017)

dir. 히라야나기 아츠코

★★★☆

매거진의 이전글 2018년 6월 상반기의 영화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