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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n 28. 2018

2018년 6월 상반기의 영화들

2018년 6월 상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개봉작 4편.

<유전> (아리 애스터)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오션스 8> (개리 로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 바르다, JR)





R056 <유전>

아리 애스터의 장편 연출 데뷔작 ‘유전’은 훌륭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데, 아마도 오컬트-호러 장르에서 계속해서 회자될 또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기본적인 플롯이 굉장히 촘촘히 짜여져 있는데다 호러 장르로서의 미덕까지 충실하게 갖추고 있고,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이야기의 맥을 놓치지 않으면서 긴장감과 속도감을 조절하는 것까지 성공한다. 범상치 않게 시작했지만 사실 단순한 공포영화처럼 전개되던 ‘유전’은, 한밤중에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이 등장하는 전반부의 특정 순간에 이르러 명확히 조성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주인공이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는 후반부의 특정 순간부터는 오컬트 장르의 매력을 전면적으로 어필한다. 기이하고 압도적인 에너지로 그득한 결말부에 이르면 그야말로 기억에 오래 남을 장면들이 연달아 펼쳐지는데, 이건 많은 호러 영화에서 으레 그렇듯 놀래킨 다음 휘발되는 공포가 아니라, 서서히 엄습해온 뒤 잔존하는 공포다. (공포스러운 장면이 더러 있는데, 엔딩을 포함한 몇몇 장면은 정말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그 전체가 또렷하게 기억 속에 남을 정도다.) 영화 내내 제시되는 ‘참수’ 그리고 ‘축소’의 모티브가 극중에서 활용되는 양상 역시 인상적인데, 목이 잘리는 광경과 미니어처를 만드는 행위가 극에서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는지를 떠올린다면 유전(hereditary)이라는 극의 제목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아리 애스터가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만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유전’을 보고 나니 그가 계속해서 오컬트-호러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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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Hereditary, 2018)

dir. 아리 애스터

★★★★



R057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가 만든 작품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면,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은 블록버스터의 틀 안에서 그가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이 자명해 보인다. 독창적이기엔 한계가 있는 시리즈물의 세계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교묘하게 녹여내는 감독의 능력이 특히나 돋보이는 이번 신작은 (놀랍게도) 그의 전작 ‘몬스터 콜’을 굉장히 닮아있는데, 그건 결국 이 이야기가 한 아이와 가족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간절한 감정을 동화 혹은 환상이라는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것을 바요나의 주특기라 한다면, (콜린 트레보로우의 ‘쥬라기 월드’와 달리) 이번 속편은 감독의 주특기가 거대 자본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난 경우로 보인다. (자신의 영화적 비전이 제작과 기획의 규모에도 경도되지 않고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보여주지 않고도 완급 조절을 통해 공룡의 실체를 드러내는 연출도 매우 영리하고, 중요한 순간에 장면을 매듭지을 줄 아는 편집 역시 생동감 넘친다. 과거의 시리즈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새로운 인물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는 방법 역시 개성적이다. 감정선을 능숙하게 건드려 뭉클한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있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들어진 장면들도 여럿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작 ‘쥬라기 월드’를 그저그런 오락영화라 생각했기 때문에 속편에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의 수작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오리지널 시리즈가 영화사적으로 지니는 상징적인 측면을 걷어내고 본다면, 감히 90년대의 시리즈와 비교해도 될 정도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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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Jurassic World: Fallen Kingdom, 2018)

dir.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



R058 <오션스 8>

개리 로스의 ‘오션스 8’은 팀업 캐릭터 무비로도 적격이고, 다소 허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쾌감을 주는 하이스트 무비의 전형이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들어낸 ‘오션스’ 시리즈를 잇는 이 영화는, 매력 넘치는 여성 캐릭터 8명을 전면에 내세워서 기존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가는 동시에 기존 시리즈와의 차별을 꾀한다. 기존 오션스 시리즈가 캐릭터의 매력에 십분 기대면서 하이스트 무비로서는 적당한 선을 그은 타협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 역시 캐릭터들의 매력이 발군이며 다소 엉성한 도둑질을 위시한 하이스트 무비는 곁가지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클라이막스에서의 긴장감이 다소 약하다는 점일 것이고, 이 부분은 스티븐 소더버그와 개리 로스의 연출력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역시 흠잡을 데 없이 강렬하고, 나무랄 데 없이 깔끔했다. 과거 ‘오션스 일레븐’이 그랬듯,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첫 번째 출발점. 속편이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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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 8 (Ocean’s 8, 2018)

dir. 개리 로스

★★★☆



R059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 바르다와 JR이 공동으로 연출한 ‘바르다가 사랑한 열굴들’은 정말 훌륭한 다큐멘터리다. (화술의 온도차가 있기는 하지만, 다큐멘터리 장르로서는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액트 오브 킬링’ 그리고 ‘침묵의 시선’ 연작 이후에 본 가장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얼굴들, 마을들’이라는 영화의 원제, 그리고 얼굴과 마을, 풍경에 대해 언급하는 아녜스 바르다의 극중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다큐멘터리는 결국 세상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풍경(paysages)이라는 마을, 마을(villages)이라는 얼굴, 얼굴(visages)이라는 풍경. 결국 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세 가지 소재들은 원을 그리고, 그 원은 현실과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각자를 연결한다. 철거 직전 마을의 마지막 주민, 한 장소를 계절 동안 거쳐가는 사람들, 밭을 경작하거나 염소를 키우는 사람들, 서로 마주치지 않는 공장의 노동자들, 항만 노동자의 아내들, 그리고 바르다의 역사 속 사람들과 추억 속 사진들까지. 결국 이 영화가 로드무비의 형식을 빌어 옴니버스처럼 담아내고자 한 것은, 삶이라는 풍경 속 임의의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제각기 살아가는 얼굴들이 지닌 질곡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흔적 혹은 순간을 벽화처럼 아로새기는 행위를 통해서 세대의, 성별의 다름을 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다큐멘터리에서 환기되는 (영화)예술의 역사는 196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활동하고 있는 아녜스 바르다의 삶과도 오롯이 겹쳐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그녀의 얼굴을,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흐릿한 JR의 얼굴을 보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울컥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현실을 재구성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 중 하나가 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속의 얼굴과 마을은 오래토록 가슴 한 켠에 남아 메아리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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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Faces Places (Visages Villages, 2017)

dir. 아녜스 바르다, J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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