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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l 26. 2018

2018년 7월 상반기의 영화들

2018년 7월 상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개봉작 4편.

앤트맨과 와스프 (페이튼 리드)

변산 (이준익)

킬링 디어 (요르고스 란티모스)

서버비콘 (조지 클루니)





R066 <앤트맨과 와스프>

패밀리 코미디 로맨스 히어로 블록버스터라 하면 적절할까. 전작 ‘앤트맨’에 이어 페이튼 리드가 연출을 맡은 속편 ‘앤트맨과 와스프’는 근래 마블 스튜디오가 보여주고 있는 영리하고 침착한 행보를 그대로 답습한다. 블록버스터의 덕목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이렇게나 깔끔하게 만들어진 작품은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전편에서 등장했던 캐릭터들을 보란듯이 다시금 활용하는 이야기의 짜임새가 체계적이고, 쉴새 없이 높은 타율로 터뜨리는 유머가 효과적이며, 결국 그 핵심에 자리한 가족영화로서의 뭉클함이 인상적이다. 개별 영화로 볼 때도 손색없는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앤트맨과 와스프’는 (특히 첫 번째 쿠키에서 드러나듯)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커다란 세계관의 일부분으로도 관객들을 모자람 없이 만족시킨다. 전편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이쯤 되면 ‘앤트맨’ 시리즈는 마블에서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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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맨과 와스프 (Antman and the Wasp, 2018)

dir. 페이튼 리드

★★★☆



R067 <변산>

이준익의 작품에는 다소간의 완성도 편차가 있기는 했지만, 그의 신작 ‘변산’은 이준익의 필모그래피 상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낮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수십년 전에나 통했을 법한 시대착오적 유머와 드라마는 공감을 이끌어내기는커녕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마치 사회의 어떤 원형적인 인물들을 대표하기 위해 도식적으로만 만들어진 것 같은 캐릭터들이 대치하는 양상과, 갈등이 손쉽게 봉합되는 과정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랩이라는 소재가 물론 (아마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흥미로웠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연달아 ’소원’, ‘사도’, ‘동주’ 그리고 ‘박열’이라는 안정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던 이준익은 ‘변산’에 이르러 너무나도 아쉬운 결과물을 내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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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 Sunset in My Hometown (변산, 2017)

dir. 이준익

★☆



R068 <킬링 디어>

그리스 출신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세계는 마치 다양한 변인을 통제한 채 인물들을 던져놓은 실험실처럼 느껴진다. 전작 ‘더 랍스터’가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감정사회학 실험실이었다고 한다면, 그의 신작 ‘킬링 디어’는 복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윤리사회학 실험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통제된 울타리 속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체제에 순응하거나 체제를 전복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울타리 안의 개인일 뿐이라는 데에서 란티모스의 영화세계는 지독히 염세적인 무력감으로 싸늘하다. ‘킬링 디어’에는 인간의 본성과 신화의 속성에 대한 스산한 성찰이 담겨있는데,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결국 이는 닮음이라는 비극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수많은 닮음의 모티프가 얽고 얽히는데, 그건 불치병의 양태, 특유의 식사법은 물론 만들어 낸 상처, 인물들의 시계 등의 다양한 소재로 확장되고 변주된다. 그렇다면 이 닮음의 비극을 바꿀 수 있는, 혹은 끝낼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킬링 디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관객들의 마음을 옥죈 뒤,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찬 자신의 세계를 단단히 여며냄으로써 그 질문에 답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집착은, 그러니까 무시무시할 정도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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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디어 (Killing of the Sacred Deer, 2017)

dir. 요르고스 란티모스

★★★★



R069 <서버비콘>

코엔 형제가 각본을 썼고, 로버트 엘스윗이 촬영을 맡았으며,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음악을 맡았다. 나쁜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이 조합을 가지고도,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서버비콘’은 굉장히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다루고자 하는 메시지(‘인종차별’)를 만들고자 하는 장르(‘범죄 블랙코미디’) 속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이 두 가지는 전혀 섞이지 않고 서로 간에 이질적인 성질만을 보인다. 관객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두 이야기는 간극을 좁히지 않은 채 내내 평행선만을 달리다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괴이한 방식으로 서로 화합하는데, 이는 얼핏 풍자가 아니라 조롱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작품들은 그래도 평균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신작은 감독이 아니라 배우로서의 그를 더 기대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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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비콘 (Surburbicon, 2017)

dir. 조지 클루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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