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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Jul 26. 2018

22nd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ifan

2018.07.12 - 2018.07.22

무더운 한여름, 한국에서 가장 큰 장르영화제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다녀왔다. 작년 7월에는 한국에 없었기 때문에 2년만에 다시 왔는데, 원래 이렇게 더웠나 싶을 정도로 날씨가 좋아서 이동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특히나 전주나 부산은 아예 숙박 일정으로 가는 반면 서울에 산답시고 부천은 매번 당일치기로 다녀오다 보니, 오며가며 걸리는 시간이 꽤나 길어서 더 피곤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두 번째 날에는 오전 영화와 밤 영화 사이 오후에 일이 있어서 하루에 부천-서울을 두번이나 왕복하는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올해는 3일간 8편의 신작을 관람했는데, 전반적으로 무난한 완성도를 지닌 작품들이 많았다. 8편 중 최고는 리 워넬의 ‘업그레이드’였고, 최악은 첸 카이거의 ‘오묘전: 레전드 오브 더 데몬 캣’이었다. 두 편을 첫날에 연달아 봤는데, 어찌 보면 사흘의 일정 중에서 이 날이 가장 다이나믹했던 것 같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영화 얘기를!



1일차.

첸 카이거의 신작 ‘오묘전: 레전드 오브 더 데몬 캣’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중국 영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한심한 작품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합작이자 유메마쿠라 바쿠의 ‘음양사’를 영상화한 이 작품은, 분명 후반부에는 인상깊은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인 짜임새나 만듦새가 어설퍼도 너무 어설프다. 고루한 이야기를 훌륭한 연출로 살려내는 경우가 있다지만 이 영화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았다. 첸 카이거는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리 워넬의 두 번째 장편영화 ‘업그레이드’는 정말이지 짜릿한 영화였다. (그야말로 부천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만큼) B급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와중에 저예산 블록버스터의 매끈한 만듦새를 보여주는데, 능숙한 연출로 그 간극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 우리에게는 ‘쏘우’의 배우 혹은 ‘인시디어스’ 시리즈의 각본가로 더 잘 알려진 리 워넬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그의 영화를 계속 기대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미래사회의 인공지능 SF를 슬래셔 액션에 접합시킨 것 같은 이 영화는,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들을 보면서도 관객들을 웃을 수밖에 없게 하는 길티 플레저가 빼곡히 들어찬 작품이다. 다소 도식적으로 짜여진 캐릭터들을 효과적으로 살려내는 연출과 각본도 훌륭하고,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내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템포의 조절이 인상적이다. 특히나 ‘업그레이드’는 근래 본 영화 중에서 가장 훌륭한 액션 시퀀스를 지니고 있는데, 인물의 시점을 따라 이동하는 괴상한 상황 쇼트의 촬영 감각, 그리고 사운드 믹싱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편집 감각이 탁월하다. 조금만 더 세련되게 다듬어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이 역시 한정된 예산으로 B급 감성을 살려 만들어낸 이 영화의 묘미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유니버설 배급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잔인한 장면이 있어서 개봉은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국내 심의를 (그것도 15세 관람가로) 마친 것을 보니 국내 개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무사히 개봉하게 된다면 그 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을 듯.


아르헨티나 출신 데미안 루냐의 ‘공포의 침입자’는 호러의 기본기를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효과적인 변주가 돋보이는 탄탄한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설정부터 전개 방식까지 기존의 호러 영화(특히나 헐리우드의 80년대 장르영화)의 관습을 따르고 있지만,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그 관습을 탈피한다. 첫째, 이 영화는 공포를 서서히 고조시키는 방식의 연출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강약조절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공포를 조여오는 방식의 연출을 택한다. 둘째, 이 영화에서 해결사들에 해당하는 이들은 (‘퇴마사’나 ‘심령술사’가 아닌) 과학자들이다. 상영 이후에 감독님과의 토크가 있었는데, 호러 영화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유쾌한 분이었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호러 영화에 내성이 꽤나 강한 편이라 ‘몸서리치게 무섭다’는 기존의 반응을 보고 살짝 기대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굉장히 인상깊은 호러였고, 팝콘 쏟게 만든다는 마지막 장면, 정말 좋았다. 박수!



2일차.

소피 필리에의 ‘마고가 마고를 만났을 때’는 일견 기묘한 이야기를 코미디의 외피에 담아낸 드라마다. 서로 꽤나 다른 영화지만 작년 전주에서 봤던 쥐스틴 트리에의 ‘빅토리아’가 가끔씩 떠오르기도 했다(두 편의 영화에 모두 멜빌 푸포가 비슷한 역할로 등장하긴 한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명의 마고는 우연히 만난 이후 기묘하게 서로에게 얽혀드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묘사되다가도 후반부와 엔딩에 이르러 설명하기 힘들 것만 같았던 감정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 영화의 전개 상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영화는 아무래도 엔딩의 그 느낌으로 기억될 것 같다.


얀 곤잘레스의 두 번째 장편 ‘칼+심장’은 말하자면 흥미로운 괴작이다. 1970년대, 3류 게이 포르노를 연출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몽환적이고 기괴한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는, 중반부까지는 무슨 이야기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지만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실타래가 풀리며 그 실체가 드러난다. 결국 ‘칼+심장’은 영화 속 영화이고, 추리물의 틀을 빌려온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극중 모든 단서를 하나로 모아주는 장소는 다름아닌 영화관이었고, 그 곳에서는 주인공이 연출한 포르노가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흑백 반전 상태의 이상한 극중극도, 혹은 4:3 비율로 상연되는 3류 포르노 영화도, 결국 모두 액자 속 이야기이기 때문에 ’칼+심장’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 범죄 혹은 욕망을 묘사하는 측면에서는 장르적 감성이 충만하며 상당히 난해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아마 정식 개봉은 당연히 불가능할테니 언제쯤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덧붙여, 영화 내내 활용되는 M83의 사운드트랙이 매력적이다. (얀 곤잘레스는 실제로 한때 M83의 멤버였고, M83의 주축인 안토니 곤잘레스는 얀 곤잘레스의 형제이기도 하다.) 일단, 얀 곤잘레스의 데뷔작을 하루 빨리 감상해야겠다.



3일차.

다니엘 로비의 ‘인 더 더스트’는 흥미로운 소재가 담겨 있지만 그 만듦새는 평범한 재난영화였다. 미세먼지가 뒤덮여 아수라장이 된 파리를 묘사하는 부분은 인상깊었지만, 그 재난을 헤쳐나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다소 평범하고 지지부진하다. 결국 가족의 이야기 내지는 부모의 이야기로 평범한 결말을 맞이하는가 싶던 이 이야기는, 조금은 예상 가능하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반전으로 끝맺음한다. 그러나 이 결말만으로는 영화 전체의 인상을 남기기엔 부족했다.


펑 샤오강의 ‘방화’는 생각보다 훨씬 짜임새있게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시대의 급류에 휩쓸린 청춘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있어 중국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와중에도 소재에 대한 사려깊은 접근법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그냥 그런 또 하나의 휴먼드라마일 수 있었던 평범한 이야기를 훌륭한 연출로 붙들어 둔 펑 샤오강의 연출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하겠다. 주인공들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고, 이야기를 매듭짓는 결말 부분의 전개 역시 마음에 든다. 다만, 젊음을 앗아간 시대와 전쟁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남녀주인공의 관계를 묘사하는 모습에서도 ‘어톤먼트’가 강하게 떠오르는데, (중반부의 중월전쟁 롱테이크 쇼트, 전방 치료소에서의 시퀀스 등) 특정 장면들은 조 라이트의 과시적인 (그러나 효과적인) 연출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시감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다니엘레 미시스키아의 ‘디 엔드?’는 한정된 공간을 영리하게 활용하면서도 이야기의 흥미를 놓지 않게 하는 멀끔한 좀비 호러 영화다. 다만 캐릭터의 활용에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고, 특정 장면에서는 보다 영리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눈에 띄기도 한다. 주인공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초반부와 후반부의 인물에 대한 묘사가 너무 달라서, 그 부분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라는 폐쇄된 공간에서의 한정적인 공포를 다루면서도 좀비라는 소재를 들여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명확한 장단점을 지니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가둬놓았던 상황적인 한계를 스스로 탈피하는 후반부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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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57 오묘전: 레전드 오브 더 데몬 캣 / Legend of the Demon Cat (妖猫传, 2017) by 첸 카이거 (중국)

S058 업그레이드 (Upgrade, 2018) by 리 워넬 (호주)

S059 공포의 침입자 / Terrified (Aterrados, 2017) by 데미안 루냐 (아르헨티나)

S060 마고가 마고를 만났을 때 / When Margaux Meets Margaux (La Belle et la Belle) by 소피 필리에 (프랑스)

S061 칼+심장 / Knife+Heart (Un Couteau dans le Coeur, 2018) by 얀 곤잘레스 (프랑스)

S062 인 더 더스트 / Just a Breath Away (Dans la Brume, 2018) by 다니엘 로비 (프랑스)

S063 방화 / Youth (芳华, 2017) by 펑 샤오강 (중국)

S064 디 엔드? / The End? (In un Giorno la Fine, 2017) by 다니엘레 미시스키아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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