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1 - 2018.07.22, 아트하우스 모모.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듯, 이란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다.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그의 이번 회고전에서는,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필모그래피 중 3편을 상영해주었다. 3편 모두 DVD로 보았을 뿐 스크린에서 관람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황홀한 경험이었고, 특히나 필름 상영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실제로 이번 회고전에서 상영된 3편의 작품은 그가 ‘ABC 아프리카’와 ‘텐’을 시작으로 디지털 촬영을 도입하기 이전 필름으로 촬영된 마지막 작품들이기도 하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공교롭게도 상영작 3편을 그가 만든 시간 순서대로 볼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더욱 20세기의 마지막 자락에 놓인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 이은 ‘지그재그 3부작’의 완결편으로 불린다. 공통적으로 이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세 편의 영화들은, 키아로스타미가 말하는 영화와 현실 사이의 접점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같이 훌륭하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오롯이 픽션이었다면,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큰 지진이 일어난 뒤의 마을을 방문해서 촬영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그리고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같은 마을을 영화 촬영 차 찾은 영화감독을 시작으로 하는 이야기이고, 극중 영화와 현실이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마치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중간에 위치한 것처럼 보인다. ‘지그재그 3부작’은 하나같이 훌륭한 엔딩을 품고 있는데, ‘올리브 나무 사이로’ 역시 인물 사이의 감정을 일거에 갈무리하는 기적과도 같은 롱테이크 쇼트로 끝난다. 정해진 대답을 주는 대신 긍정도 부정도 않고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 인물들을 지켜보라 말하는 것만 같은 이 장면은, 어쩌면 삶이란 정답이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그 효력을 발휘한다고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체리 향기’는 별다른 각본 없이 즉흥적으로 촬영되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영화와 현실에 대한 키아로스타미의 끊임없는 성찰이 이 영화의 (다소 거친 질감을 지닌) 마지막 에필로그에 담겨있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내가 살면서 본 영화 중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 중 한 편이다.)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은 자신이 죽은 뒤 구덩이에 흙을 뿌려 줄 사람을 찾아 황량한 이란의 흙산을 자동차로 배회한다. 돈이 궁한 사람들은 그의 부탁을 듣고도 거절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오히려 그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 ‘체리 향기’라는 극의 제목이 환기되는 그 순간은,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뭉클한 클라이막스 중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어지는 모든 장면들은 더할 나위 없이 벅차오른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삶이라는 인간의 의지가 결국에는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이런 화술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경지 앞에서, 그저 한없는 찬사 말고 무얼 더 말할 수 있을까.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키아로스타미가 마지막으로 촬영한 필름 영화이며, 동시에 키아로스타미의 20세기를 완결짓는 작품이기도 하다. 키아로스타미의 여타 훌륭한 영화들에 비하면 다소나마 아쉬운 느낌이 없다 할 수는 없겠으나, 이 영화는 키아로스타미의 20세기를 마무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촬영을 위해 외딴 마을을 찾았지만 그 마을의 삶에 동화되어 목표와는 동떨어져가는 한 감독의 이야기. 내내 미소짓게 만드는 가슴 푸근한 일화의 끝에 황금빛 들판을 달려나가는 오토바이 그리고 개울물을 따라 흘러가는 한 조각의 삶 혹은 죽음. 나에게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키아로스타미의 소박하고 서정적인 영화세계를 완결짓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키아로스타미는 이란의 변두리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기에,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더욱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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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65 올리브 나무 사이로 / Through the Olive Trees (زیر درختان ,1994)
S066 체리 향기 / Taste of Cherry (طعم گيلاس… ,1997)
S067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The Wind Will Carry Us (1999, باد ما را خواهد بر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