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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Sep 09. 2018

2018년 8월 하반기의 영화들

2018년 8월 하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재)개봉작 4편.

나를 차버린 스파이 (수잔나 포겔)

서치 (아니쉬 차간티)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재개봉]

톰 오브 핀란드 (도메 카루코스키)






R080 <나를 차버린 스파이>

버디 코미디로서의 기본을 충실히 다하고 있으며, 기존 스파이 영화의 관습을 뒤집은 여성 주인공들의 캐릭터 역시 매력적이다. 근래 등장한 비슷한 영화들 중에서도 담론의 측면에서는 폴 페이그의 ‘스파이’(혹은 ‘고스트버스터즈’)를, 설정의 측면에서는 패트릭 휴즈의 ‘킬러의 보디가드’를 떠올리게 하는데, 아쉽게도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준다(개인적으로 ‘스파이’를 ‘킬러의 보디가드’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 관습적인 성역할을 뒤집어버린 데서 오는 쾌감을 ‘스파이’가 극 속에 교묘하게 녹여냈다면, ‘나를 차버린 스파이’는 그 쾌감 자체를 유머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미숙함이 느껴진다(새삼 느끼지만 폴 페이그의 각본은 정말이지 능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차버린 스파이’의 여성 투톱 주연의 앙상블이 가지는 위상, 그리고 기본적인 킬링타임 무비의 쾌감을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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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차버린 스파이 (The Spy who Dumped Me, 2018)

dir. 수잔나 포겔

★★☆



R081 <서치>

영리하고 강력하다. 이제 창작에 있어서 어떤 한계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을 영화문법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는 아니쉬 차간티의 장편 데뷔작 ‘서치’는 아마 훌륭한 데뷔작 리스트에 오랫동안 오르내리게 될 것 같다. 컴퓨터 모니터, 영상통화 화면, 채팅 기록, 뉴스 푸티지 등 스크린 매체만을 활용하는 파격적인 연출법을 도입하면서도 결코 직관적인 접근을 놓치지 않는 ‘서치’는, 영상의 사각지대, 인물의 프로필 사진 등 작은 단서를 더없이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홈 비디오를 재생하거나, 메시지가 작성 중임을 보여주는 말풍선 혹은 썼다 지워버리는 메시지처럼, 인물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역시 탁월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창의성의 측면 뿐 아니라 완성도의 측면으로도 흠잡을 데 없다. 영화의 외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인상적이지만 그 목적이 되는 영화 내적인 이야기의 긴장감이나 감정선 역시 적절하게 짜여져 있어, 2시간 내내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는 능숙한 플롯 역시 좋기 때문. 그 와중에 현대 온라인 소셜 미디어에 대한 씁쓸한 소회 역시 잊지 않는다. 가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가 마치 보석처럼 반짝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마 앞으로 아니쉬 차간티의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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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 (Searching, 2018)

dir. 아니쉬 차간티

★★★☆



S077 <그래비티> [재개봉]

알폰소 쿠아론의 2013년작 ‘그래비티’만큼 ‘경이롭다’는 수사가 어울리는 영화가 있을까. 기억이 맞다면 이번 재개봉으로 극장에서만 여덟 번째 관람인데, 처음 볼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황홀한 경험이었다. 2006년작 ‘칠드런 오브 맨’에 이어지는 알폰소 쿠아론의 두 번째 SF영화 ‘그래비티’는 (엠마누엘 루베스키의 롱테이크 촬영을 위시한) 시각적 기술의 성취로 보아도 굉장하지만, (알폰소 쿠아론과 호나스 쿠아론이 공동으로 쓴 각본의) 정서적 화술의 깊이로 보아도 훌륭하다. 삶에서 놓아버렸던 무언가를 (물리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간절히 잡아내야 하는 상황이 영화의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그래비티’는 ‘칠드런 오브 맨’과 공통적으로 새로운 삶의 태동에 대한 은유가 된다. 우주에 대한 동경과 공포, 혹은 삶에 대한 환멸과 갈망이라는 양가적 가치를 이야기 속에 능숙하게 담아내고 있는 ‘그래비티’는 아마 2010년대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한 편일 것이다. 오랜만에 이 걸작을 다시 보니,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막 공개된 그의 차기작 ‘로마’에 대한 기대가 더욱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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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Gravity, 2013)

dir. 알폰소 쿠아론

★★★★★



R082 <톰 오브 핀란드>

강렬한 이미지들이 인상적이고, 실존 인물의 생애를 짚어가려는 시도가 좋다. 그러나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 영화는 흥미로운 사건들을 흥미 위주로 전달하는 데에 치중할 뿐, 그 과정에서 다루어지는 주위 캐릭터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인다. 주인공 토우코(페카 스트랑) 위주로 사건을 전개해가는 가운데 소비되고 마는 카이야(제시카 그라보스키)와 니파(로리 틸카넨)의 캐릭터가 특히나 그렇다. 핀란드와 미국을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인물이 중심이 되었어야 할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프닝과 엔딩에서 환기되는 토끼의 이야기가 기억에 맴돌고,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뭉클하다. 그러나 ‘톰 오브 핀란드’는 결국 그렇지만, 이라는 반문을 남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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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오브 핀란드 (Tom of Finland, 2017)

dir. 도메 카루코스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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