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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Oct 21. 2018

23rd 부산국제영화제 BIFF Pt. 2

2018.10.04 - 2018.10.13

두 번째 방문에서는 총 다섯 작품을 관람했다. 각각 감독의 전작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특히나 세 작품에 큰 기대를 품고 갔다.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이다'를 정말 좋아하는 입장에서 신작 '콜드 워'에 대한 기대가 컸고, 라즐로 네메스의 '사울의 아들'이 2010년대 최고의 데뷔작이라 생각하는 입장에서 그의 두 번째 장편 '선셋’에도 큰 기대를 품었다. 또한, '칠드런 오브 맨' 그리고 '그래비티'를 통해 걸작들을 연이어 만들어 낸 알폰소 쿠아론의 신작 '로마' 역시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세 감독의 신작을 모두 본 입장에서 앞 두 작품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로마'는 이견이 없는 어마어마한 걸작이었다. 무엇보다도, 넷플릭스 제작이라는 핸디캡을 딛고서도 '로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의 3연패(覇)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올해도 부산국제영화제를 끝으로 ‘굵직한’ 영화제 방문은 모두 마무리한 것 같다. 올해 전주에 ’24 프레임’과 ‘통행증’이 있었다면 부산에는 ‘야생 배나무’와 ‘로마’가 있었다. 헌데 네 작품 모두 (넷플릭스 방영 예정인 ‘로마’를 포함해서) 국내 정식 개봉이 힘들 것 같아서 정말이지 안타깝다. 나 또한 극장에서 이 네 작품들을 정말로 다시 보고 싶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S089 <콜드 워>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신작 ‘콜드 워’는 유려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전작 ‘이다’로 그가 보여주었던 놀라운 미학적 성취를 기대한다면 상당히 아쉬운 작품임에 틀림없다. (4:3 비율의 흑백 화면과 시대적 배경은 당연하게도 ‘이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카메라의 활용부터 이야기의 화술까지, ‘콜드 워’는 ‘이다’와 판이하게 다르다.) 프레임 내부의 배치와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황홀할 정도로 완벽하게 절제된 미학의 극단을 보여주었던 (그의 최고작) ‘이다’에 비교한다면, ‘콜드 워’는 그 형식적 패턴을 빌려왔을 뿐 꽤나 자유로운 연출법을 택하고 있다. ‘콜드 워’의 이야기는 분명 동구권의 역사를 은유하고 있지만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사랑이야기이고, 그 사랑 속에는 자신만 믿는 남자와 자신만 속인 여자가 있다. 시대의 압박과 개인의 굴곡 사이에서 표류하는 이들의 사랑은 애절하고 아련하지만, 후반부에 이르자 영화는 캐릭터를 과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인물을 혹사시킨다. 마지막 부분(정확히 말하자면, 엔딩에 이르는 두 개의 쇼트)이 역시나 좋았지만, ‘콜드 워’는 올해 가장 기대하던 작품들 중 한 편이었기에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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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워 / Cold War (Zimna Wojna, 2018)

dir.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폴란드)



S090 <만토>

배우로 더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난디타 다스의 두 번째 연출작 ‘만토’는 실존했던 파키스탄 작가인 사다트 하산 만토의 전기영화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생활했던 그의 생애 두 시점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가적, 종교적 분쟁이 이야기 속에서 환기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깊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만토가 남긴 단편소설들을 영상화하는 부분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경 사이에 놓인 자들의 이야기를 영상화한 장면(그리고 그 후에 놓인 만토를 비추는 쇼트)으로 이 영화를 끝맺는 것은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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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토 / Manto (منٹو, 2018)

dir. 난디타 다스 (인도)



S091 <클로즈 에너미>

다비드 욀오팡의 신작 ‘클로즈 에너미’는 진부하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이 현재에 이르러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우정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 끝에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는 숱하게 다루어져 온 것이 사실인데, 이런 이야기를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뻔한 화술로 다루고 있기까지 하다. 다비드 욀오팡의 전작 ‘신의 이름으로’와 비교하면 더욱 더 실망스럽다. 또 한 편의 범작 느와르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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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에너미 / Close Enemies (Frères Ennemis, 2018)

dir. 다비드 욀오팡 (프랑스)



S092 <선셋>

헝가리 출신 라즐로 네메스의 전작이자 데뷔작이 개인적으로 2010년대 최고의 데뷔작이라고 생각하는 걸작 ‘사울의 아들’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의 두 번째 장편 ‘선셋’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고 강조해야 할 것 같다. ‘선셋’ 역시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구조 그리고 집착에 가까운 미학적 목표를 만나 아름답게 빚어졌던 ‘사울의 아들’과 달리, ‘선셋’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가 형식 속에서 다소 겉도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이야기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역사적 상흔을 만나는 순간마다, 영화는 ‘사울의 아들’처럼 불친절하게 관객들을 그 속으로 떠민다. 그러나 이는 ‘사울의 아들’과 달리 때때로 불협화음처럼 느껴진다. 롱테이크 쇼트와 이에 대응하는 역쇼트만으로 영화를 만들어 낸 ‘선셋’의 첫 시퀀스는 정말이지 굉장했지만, 두 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선셋’은 그 구심점을 의도적으로 겉도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것이 ‘사울의 아들’에서 장점이었다면, ‘선셋’에서는 장점이 되지는 못한다. 결국 ‘사울의 아들’과 동일하게 불친절하고 이해하기 힘든 ‘선셋’ 속 주인공의 행동은, 동일한 구조를 가진 극 내에서 그 정당성을 부여했던 ‘사울의 아들’과 달리 관객들을 극과 유리시키고 만다. 매너리즘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라즐로 네메스가 데뷔작에서부터 동일한 작법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선셋’에게는 약이 아니라 독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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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 Sunset (Napszállta, 2018)

dir. 라즐로 네메스 (헝가리)



S093 <로마>

알폰소 쿠아론은 정말 굉장하다. ‘칠드런 오브 맨’과 ‘그래비티’로 연이어 그가 성취한 영화적 정점을 과연 돌파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로마’로 기어이 그걸 해낸다. ‘로마’는 감독이 ‘이 투 마마’ 이후 16년 만에 멕시코로 돌아와 만든 작품이자 (본인이 밝혔듯)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며, 자신이 각본과 연출은 물론 이번에는 촬영과 편집까지 모두 담당한 작품이다.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촬영된 흑백 화면에 담긴 모든 쇼트들은 전체 영화 속에서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러닝타임 내내 정확하게 맞물린다. 여전히 알폰소 쿠아론의 작품세계에서는 생명이라는 동적 메타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이전 두 작품에서와 ‘로마’에서 그 양상은 꽤나 다르다. 이전 두 작품과 결을 달리하는 것은 ‘로마’가 SF라기보다는 현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로마’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슬픈 작품이다.) 물론 메타영화로도 훌륭한데, 극중 주인공이 영화관을 방문하는 세 차례의 묘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면 더욱 그렇다. 결국 영화를 보는 주인공과 ‘로마’를 보는 관객들을 조응시킴으로써 ‘로마’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로 순환하고, 그렇게 ‘로마’는 모두의 삶이 영화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동일한 관점에서, 오프닝과 엔딩이 서로 대조되는 지점 역시 황홀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영화는 무조건 영화관에서 관람해야 하는 영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훌륭한 걸작이 넷플릭스로만 방영된다는 사실은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만약 조율 중이라고 하는 국내 개봉이 성사된다면, 나는 정말로 모두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으면 한다. 올해 말, ‘극장 개봉작’으로 ‘로마’에 대한 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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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Roma, 2018)

dir. 알폰소 쿠아론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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