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4 - 2018.10.13
올해도 어김없이 (두 차례) 방문한 부산국제영화제. 마치 칸과 베니스 경쟁부문은 물론 토론토의 핵심 상영작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라인업에 보고 싶은 작품들을 결정하느라 영겁의 고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챙겨보지 못한 영화들이 워낙 많았다. 특히나 장이머우의 '무영자'나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논픽션',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 혹은 마우고자타 슈모프스카의 '얼굴’은 꼭 보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첫 주말은 태풍 때문에 토요일 일정이 살짝 어그러졌지만, 그래도 주된 목표였던 누리 빌게 제일란의 '야생 배나무'를 사수했으니 만족스럽다. 주말 동안 총 8편의 작품을 보았는데, '야생 배나무' 그리고 '나는 야만의 역사로 거슬러가도 상관하지 않는다'가 가장 훌륭했다. 또 우연히 일정이 맞아 보게 되었던 '기억하니?'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현대 터키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누리 빌게 제일란은, 아마 영화가 영상예술이라는 근거로 제시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만드는 감독 중 한 명일 것이다. 사진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답게,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유려하고 감각적인 구도와 촬영을 자랑한다. 가끔 과하다 싶은 느낌이 드는 장면들조차도 이제 누리 빌게 제일란의 인장처럼 느껴질 정도. 한편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그의 전작 '윈터 슬립'을 기점으로 누리 빌게 제일란은 장광설에 가까운 대화를 영화 속에 여과 없이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데('윈터 슬립'과 '야생 배나무'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하게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끝나지 않는 인물들 간의 대화야말로 속세의 피로함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생 배나무'는 소설가의 꿈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청년의 이야기지만, 결국에는 그 윗 세대(혹은 윗 윗 세대까지)로 이어지는 관계의 맥락을 품는다. (그도 그럴 것이,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집을 향하는 뒷모습에 곧바로 이어지는 쇼트는 주인공이 아닌 그의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이며, 그 장면에서 주인공은 이미 집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영화 속 두 가지 장면에서 등장하는 밧줄을 통해 은유되는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는 물론, 마치 붕 뜬 것처럼 이질적인 영화 중반의 시퀀스 그리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영화는 '우물'이다. 왜 우물에서 물이 솟아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왜 우물을 파내려가는가. 귀향과 죽음, 그리고 역사라는 세 가지 소재를 기나긴 시간 동안 '우물'로 절묘하게 버무려내는 누리 빌게 제일란의 솜씨는 역시나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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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배나무 / The Wild Pear Tree (Ahlat Ağacı, 2018)
dir. 누리 빌게 제일란 (터키)
잠재력이 충분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도 강도 조절에 실패해 자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안타까움. 정말 쉴새없이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과하게) 웃기는데, 유머를 위해 스토리를 짜맞춘 느낌이 들 정도로 작위적인 상황이 연속되자 영화 자체의 설득력이 급추락한다. 분명 기발하게 짜여진 개그가 군데군데 실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통념을 파고드는 직격타 역시 흥미롭게 다가오지만, 동일한 코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정도를 넘어서는 모습에선 결국 실망하게 된다. 요즘 다양한 영화에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아델 에넬과 피오 마르마이(그리고 다미앙 보나르)의 모습이 반갑지만, 코미디에도 자제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안타까운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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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위드 유 / The Trouble with You (En Liberté!, 2018)
dir. 피에르 살바도리 (프랑스)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과 포화력. 스테판 브리제의 신작 ‘앳 워’는 ‘전쟁 중’이라는 원제에 걸맞게 관객들을 러닝타임 내내 짓누른다. 결국 극중 인물이 역설하듯, 이건 개인이 아니라 시장(marché)의 이야기다. 실업과 복직에 관련된 사회윤리적 이슈를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 속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로 확장시킨 것처럼 보이고, 스테판 브리제의 2015년작 ‘아버지의 초상’의 원제가 ‘시장의 법칙’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에 주제적으로 이어지는 연작으로도 보인다. 뱅상 랑동의 연기가 언제나와 같이 강렬하고, 이를 담아내는 화술과 촬영 자체도 인상적이다. 개인적 사정을 대부분 생략한 채 건조하게 진행되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전개는 ‘앳 워’의 핵심일 것이다. 열띠게 논쟁하는 군상들의 모습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아낸 여러 가지 ‘상황’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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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 워 / At War (En Guerre, 2018)
dir. 스테판 브리제 (프랑스)
발드빈 조포니아손의 신작 '렛미폴'은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강력하게 고발한다. 소재나 연출에 있어서도,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레퀴엠’이 아이슬란드에서 만들어진 느낌이라 할 수도 있겠다. 만듦새에 있어서 때로는 투박한 지점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감각적이고, 특정 장면에서는 영화적 목소리로 명확한 외침을 전달할 줄 안다. 무엇보다도, 캐릭터를 오직 불행일변도의 전개로 다루는 이 영화의 톤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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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폴 / Let Me Fall (Lof Mér að Falla, 2018)
dir. 발드빈 조포니아손 (아이슬란드)
소재와 화술과 플롯이 단 하나도 서로 공유되지 않는 희한한 작품. 분명 자전적 성격이 짙은 이야기인데(주인공 후안을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본인이 연기하고 있으며 또 다른 주인공 에스테르를 레이가다스의 전 부인인 나탈리아 로페스가 연기하는데다, 극중 어린 아들과 딸은 실제 부부의 아들과 딸이기까지 하다), 작가주의적 화술과 결합하면서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작품이 탄생했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전작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를 (기회가 닿지 않아 아직 보지 못했지만)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신작에 대해 기대를 품었는데, 난해함을 무기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적잖은 과오를 범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나 이야기의 기벽적 성격이 관음적으로 드러나는 후반부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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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 / Our Time (Nuestro Tiempo, 2018)
dir.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멕시코)
영화제 막판에 스케쥴이 엉켜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영화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발레리오 미엘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기억하니?'에서는, 서로 다른 기억이 실제로 일어났던 하나의 사실을 두 가지로 분열시킨다. 주제적인 측면에서 네드 벤슨의 ‘엘리노어 릭비’ 연작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작품이 (물론 합본으로도 편집되었지만) 서로 다른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역설했다면, '기억하니?'는 하나의 영화 속에서 이를 시각적으로 명징하게 편집한다. 극중 인물이 직접적으로 언급하듯, 결국 균열을 만드는 것도, 균열을 메우는 것도 기억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건 우리 모두 각자가 시간이 흘러 재구성한 기억일 것이다. 극중 인물이 직접적으로 언급하듯, ‘기억을 저장하는 기계’가 있다면 이건 이 영화와 비슷한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발레리오 미엘리 감독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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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니? / Remember? (Ricordi?, 2018)
dir. 발레리오 미엘리 (이탈리아)
모든 것이 혼돈으로 가득찬 세계를 은유하지만, 영화의 초점이 맞추어진 지점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예스퍼 간슬란트 감독이 각본과 연출, 주연을 모두 도맡은 이 영화는, 결국 가상의 세계를 설정한 뒤 현재의 난민 문제를 정반대로 뒤집어 윤색한다. (백인을 난민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논쟁적인 성질을 갖고 있지만, 해석과 추측이 원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곡해되는 경우가 빈번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입장에서 소재를 뒤집어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은 오히려 자신이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전혀 다른 화법과 전개를 갖고 있지만, 의미심장하게도 루벤 외스틀룬드의 '더 스퀘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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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Jimmie, 2018)
dir. 예스퍼 간슬란트 (스웨덴)
라두 주드식 메타영화. 소재를 선택한 뒤, 그 소재를 활용한 공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카메라 속에 담아냄으로써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야무지게 전부 다 한다. 극중에서 묘사되는 것은 광장극이 완성되는 과정이지만, 영화의 엔딩 지점에는 그 극을 실황으로 촬영한 것과 같은 시퀀스를 (편집 없이 길게) 담아냄으로써 본래의 목표 역시 훌륭하게 달성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이 지점에서는 해방감마저 느껴질 정도.) 결국,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인 접근법을 통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실로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오프닝과 엔딩 부분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마리아나(이오나 야콥)의 등장과 퇴장을 전달하는 방식 역시 좋다. 전작 ‘상처입은 마음’이 좋았지만 아직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 준 ‘아페림!’은 오히려 보지 못한 상태인데, 하루 빨리 라두 주드의 필모그래피를 다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뛰어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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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만의 역사로 거슬러가도 상관하지 않는다 / I Do Not Care If We Go Down in History as Barbarians (Îmi este indiferent dacă în istorie vom intra ca barbari, 2018)
dir. 라두 주드 (루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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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