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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Nov 03. 2018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 로베르 브레송의 열세 가지 얼굴

2018.10.27 - 2018.10.28, 서울아트시네마.

늦은 나이에 데뷔한데다, 4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장편으로 단 열세 작품밖에 남기지 않은 로베르 브레송의 회고전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다. 그의 작품은 ‘사형수 탈주하다’, ‘소매치기’ 내지는 ‘당나귀 발타자르’처럼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니면 접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이 보고 싶었는데, 부산에 다녀온 이후로는 정신없이 바빠서 결국 마지막 주말에 허겁지겁 4편을 관람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만들기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최대한으로 절제하고자 하는 최소주의적 영화만들기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견 갖가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보기 전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기대할 법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배신함으로써 로베르 브레송은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정립한다. 그렇게, 그의 영화는 대체로 무언가를 배제해가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성취해낸다. 이번에 관람한 네 편 역시 그렇다.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보이지 않는 각기 다른 네 가지 이야기는, 결국 보고 나면 로베르 브레송이라는 인장을 관객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새긴다.



시골 사제의 일기Journal d’un Curé de Campagne.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보며 곧잘 ‘세속적인 숭고함’이라는 미사여구를 떠올리곤 한다. ‘시골 사제의 일기’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일 것이다. 한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사건 하나하나가 삶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서 섬세하게 고찰한다. 한 인물의 삶에서 극히 짧은 시간의 사건만을 밀도있게 다루는 과정에서, 로베르 브레송 특유의 각본과 화술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만 같다. (주인공을 사제로 설정한 데서부터 알 수 있듯) 로베르 브레송의 여타 작품과 달리 종교적 색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한 인물의 일기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결국 이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 고백이다. 결국 개인과 종교(라는 신)의 간극 속에서, 이 시골 사제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묘한 숭고함을 자아낸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사형수 탈주하다Un Condamné à Mort S’est Échappé ou Le Vent Souffle où Il Veut.

(아직 그가 만든 모든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로베르 브레송의 최고작. 그의 영화세계를 관통하는 염세적인 무기력함과, 그 무기력함을 오롯이 영화적인 괴력으로 돌파해버리고 마는 에너지가 ‘사형수 탈주하다’에는 동시에 담겨있다. 이 영화는 지극히 정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지만 그 서스펜스는 실로 대단하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은 고스란히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온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베르 브레송 본인의 경험은 물론 원작이 되는 회고록을 쓴 앙드레 드비니의 경험도 아우르는) 억압과 속박이라는 관념은 감옥이라는 공간 속에서 틀에 박혀 비슷한 행위를 반복해야만 하는 삶에 대한 염세적인 피로함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동시에 이러한 반복은 그러한 굴레를 벗어나야만 하는 동인을 제시하는 동시에 탈주의 순간을 향한 열망을 분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지독하게 양면적이다. 애초에, 혹은(ou)이라는 접속사로 연결된 이 영화의 원제가 그러한 특성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소매치기Pickpocket.

소매치기라는 범법적 행위를 반복적으로 투사하는 이야기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역설적인 감정을 가져다주려는 듯한 기묘한 작품. 이 영화는 경범죄를 거듭하는 인물로부터 관객들이 자신을 분리시키기를 원하지도, 혹은 그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동화해서 이해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로베르 브레송이 그의 모든 영화에서 그런 것처럼, 이 영화는 혼잡하고 어지러운 질서라는 세계 속에 놓인 어떤 인물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속세의 구원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넌지시 묻는다. 무언가를 잃은 후에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만 같은 ‘소매치기’의 화술은, 그렇기 때문에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만들기와 닮아있기도 하다. 결국 주인공에게 찾아온 구원의 양상을 살펴보면, 로베르 브레송이 즐겨 담아내는 성인(聖)의 모티프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돈L'Argent.

로베르 브레송의 작품세계에서 반복되었던 자본과 소유에 대한 그의 마지막 일갈. 지극히 우화적인 이야기를 고의적으로 뻣뻣하고 어색하게 만들어낸 그의 마지막 작품 '돈' 속에서, 인물들은 캐릭터를 박탈당한 채 오롯이 상징으로만 기능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사물(이자 영화의 제목)인 ‘돈’과 딱히 다를 바가 없다. (마치 ‘돈’과 쌍둥이 작품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당나귀가 말없이 세상을 관조하는 동시에 인물들을 엮어간다면, '돈'에서는 돈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 아래에 마치 옴니버스식으로 놓여진 인물들은 체스판 위의 말과 다름없다. 인물에 대한 일말의 파토스도 허락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어느덧 인물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침묵이 자리한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로베르 브레송은 비로소 그의 영화세계를 끝맺는다. 그 끝은 철저하게 무력하고 지독하게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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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95 시골 사제의 일기 / Diary of a Country Priest (Journal d’un Curé de Campagne, 1951)

S096 사형수 탈주하다 / A Man Escaped (Un Condamné à Mort S’est Échappé ou Le Vent Souffle où Il Veut, 1956)

S097 소매치기 (Pickpocket, 1959)

S098 돈 (L’Argent,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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