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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Oct 28. 2018

2018년 10월 상반기의 영화들

2018년 10월 상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재)개봉작 5편.

베놈 (루벤 플레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마크 포스터)

너는 여기에 없었다 (린 램지)

스타 이즈 본 (브래들리 쿠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




R090 <베놈>

사실 한없이 낮았던 기대보다는 재미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곳곳에 즐비하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루벤 플레셔의 ‘베놈’은, 오직 베놈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영화의 많은 것들과 타협한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앤 웨잉(미셸 윌리엄스), 칼튼 드레이크(리즈 아메드)의 캐릭터가 모두 그렇다. 헌데 이런 수많은 캐릭터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베놈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살아나지도 못한다. 영화 후반부에 갑작스레 뒤집히는 베놈의 정체성은 신선하다기보다는 의문스러우며, 이 때문에 묻혀버린 캐릭터들의 몰개성이 안타까울 지경. 베놈과 에디 브록(톰 하디)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부분적으로는 확실하지만, 오직 이를 위해 스토리를 뚝뚝 끊어먹은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지나치게 많다. 이도저도 아닌 영화의 수위 역시 그 중 하나다(이 영화는 R등급이었어야 했다). 결국 타협과 희생을 거쳐 완성된 또 하나의 평범한 블록버스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걱정했던 것처럼 망작까지는 아니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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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놈 (Venom, 2018)

dir. 루벤 플레셔

★★☆



R091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이 영화에 의의가 있다면 그건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감응할 수 있는 뭉클한 이야기라는 점일 것이다. 이야기의 초반부에 마치 프롤로그처럼 제시되는 어린 시절 이후 현재의 크리스토퍼 로빈(유안 맥그리거)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나 그렇다. 하지만 어른들의 잊혀진 동심을 자극하기 위해 이 영화는 전형적이고 고루하게 설정된 이야기를 뻔하게만 활용한다. 일과 가족 사이에서 고뇌하는 성인의 모습, 이라는 뻔한 주인공을 묘사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플롯 상 소비될 뿐이며, 변하지 않는 어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끌어온다는 이야기의 전개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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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Christopher Robin, 2018)

dir. 마크 포스터

★★



R092 <너는 여기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과작하는 감독 중 한 명인 영국의 린 램지가 2011년작 ‘케빈에 대하여’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린 램지 특유의 작법이 장르와 만나 탄생한 굉장한 수작이다. 두 가지 시간대를 두고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라는 인물의 도식을 적확하게 겹쳐놓는 이 영화는, 극중 현재에 불현듯 난입하는 과거를 통해 그 시차를 좁히려 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하는 인물은 조(호아킨 피닉스)이다. 환상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그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사건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지만, 결국 그의 존재를 구원해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존재에 대한 부정이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You Were Never Really Here)’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결국 이 영화는 ‘여기’라는 직시적 표현에 드러나는 불특정한 장소에 대해 ‘너’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구원하려는 것만 같다. 린 램지는,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통해 수가 많지 않은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인상적인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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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기에 없었다 (You Were Never Really Here, 2017)

dir. 린 램지

★★★★



R093 <스타 이즈 본>

브래들리 쿠퍼의 인상적인 감독 데뷔. 첫 연출작으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스타 이즈 본'이 정석적인 멜로드라마인 동시에 효과적인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겠다. 익숙하거나 고루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현대적 시점으로 리메이크하는 데 있어서, 이 영화가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는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일 것이다. 가수로 더 알려진 레이디 가가의 연기가 인상적이고, 배우로 더 알려진 브래들리 쿠퍼의 노래가 인상적이다. 중후반의 전개가 다소 아쉽지만, 중반부까지 오직 노래와 연기의 힘으로 관객들을 휘어잡는 장면들의 존재감은 더없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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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2018)

dir. 브래들리 쿠퍼

★★★



S09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정식 개봉으로부터 채 5년도 되지 않아 다시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을 '재개봉'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반가운 기회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웨스 앤더슨의 최고작이라 생각한다.) 동화풍의 색채와 강박적인 연출을 고집하는 웨스 앤더슨은 이미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확고하게 정립한 예술가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그는 한 발 더 깊이 들어간다. 현재보다 선행하는 세 가지의 시간대(1985년, 1968년, 1937년)를 오가며 전개되는 이야기에서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면비의 혼용과 함께) 돌아갈 수 없는 과거(정확히 말하자면, 1930년대로 설정된 가상의 유럽)에 대한 향수가 짙게 풍긴다. 그리고 그 향수 속에 담긴 것은 변하는 시대에 대한 우수, 혹은 잊혀진 가치에 대한 애도일 것이다. 역설로 빼곡히 들어찬 무슈 구스타브(레이프 파인즈)의 캐릭터가 상징하듯, 결국 이 영화는 이제는 빛바랜 향수에 대한 탄식으로 귀결된다. 극 후반부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전쟁으로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예술이 지닌 가치는 (그리고 무슈 구스타브의 이상은) 상실되고 마는 비극적 종류의 것이다. 그러나 무슈 구스타브는, 늙은 제로 무스타파(F. 머레이 아브라함)가 말하듯 이상을 희구하는 대신 환상을 살아낸 인물이다. 가치(혹은 이상)가 상실되는 현실을 등진 채 환상을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슬픈 이야기를 유쾌하고 화려하게 풀어내고 있는 이 영화 자체가 그렇다. 그리고 더없이 쓸쓸한 마무리가 있다. 제로 무스타파는 과거 로비보이였던 시절의 방을 여전히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값진 가치를 지녔다던 ‘사과를 든 소년’은 호텔 컨시어지 뒷편에 비뚤어진 채 걸려있다. 쌉싸름한 뒷맛을 남긴 채 이야기를 매듭짓고 세 층위로 겹겹이 싸인 시대를 다시 거슬러, 프레임 밖 현실에 이르자 결국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에 담긴 (현재 시점의 소녀가 책을 펼쳐 회술하던) 한 편의 활극은, 이야기의 말미에서 이제는 아득해져버린 먼 과거의 향수에게 보내는 우수와 애도의 동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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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Grand Budapest Hotel, 2014)

dir. 웨스 앤더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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