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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Nov 05. 2018

2018년 10월 하반기의 영화들

2018년 10월 하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개봉작 4편.

퍼스트 맨 (데미안 샤젤)

풀잎들 (홍상수)

필름스타 인 리버풀 (폴 맥기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존 추)





R094 <퍼스트 맨>

데미안 샤젤의 신작 ‘퍼스트 맨’은 그가 만들었던 ‘위플래쉬’ 혹은 ‘라 라 랜드’가 특정한 장르를 표방했던 것과는 다르게 정통 드라마에 가깝다. (그리고, ‘퍼스트 맨’은 그가 각본에 참여하지 않은 그의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데뷔 이래로 어떻게든 음악에 관련된 영화를 만들어왔던 그가 갑작스레 닐 암스트롱의 전기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에 갸우뚱했지만, 결국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던 꿈을 마침내 마주한 자들의 황홀함과 무력감’이라는 주제를 떠올린다면 ‘퍼스트 맨’이 데미안 샤젤의 필모그래피에 속한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후반부의 장면을 비롯한 우주 시퀀스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숱한 우주 영화를 (특히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떠올리게 하는 오마주 가득한 장면들도 좋다. 물론, (‘스포트라이트’, ‘더 포스트’ 등으로 대표되는) 조쉬 싱어의 섬세한 각본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퍼스트 맨’은 (라이언 고슬링이 훌륭하게 연기한) 닐 암스트롱의 내면, 그리고 그를 둘러싼 주위 인물들의 관계적 파장을 우주라는 광활한 소재 속에서도 길잃지 않고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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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맨 (First Man, 2018)

dir. 데미안 샤젤

★★★☆



R095 <풀잎들>

홍상수의 옴니버스. 최근 작품으로 갈수록 홍상수는 자전적이고 냉소적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데, ‘풀잎들’은 직접적인 죽음이 세 차례나 언급된다는 점에서 홍상수의 근작들(특히 '밤의 해변에서 혼자')이 가진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전의 그가 즐겨쓰지 않던 오버-더-숄더 쇼트나 아웃포커스는 물론, 하나의 쇼트 내에서 인물의 존재를 그림자로 치환하는 이례적인 연출법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아름(김민희)는 철저하게 나레이터의 입장에서 사건을 관찰하며 무언가를 써내려간다. 인물들이 모이는 두 장소를 골라 그 시공간을 거쳐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러나 서로를 철저히 배제한 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풀잎들’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관찰하는 입장에서 서술된다(‘저는 엿듣는게 좋다’고, 아름은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 영화 속에서 시간 속 공간은 분절되지만, 공간 속 시간은 접합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이 만난 인물들 중 단 네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극에서 한데 모이는 순간과 제 3자로서 존재하던 그녀가 이야기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홍상수가 '풀잎들'을 만들었을 법한 이유가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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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들 / Grass (풀잎들, 2017)

dir. 홍상수

★★★☆



R096 <필름스타 인 리버풀>

마치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매듭짓는) 필름자욱처럼, '남김'에 대한 향수로 가득한 작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배우 글로리아 그레이엄(아네트 베닝)의 삶 중 마지막 부분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현실적인) 현재와 (영화적인) 과거를 매듭지으려 노력한다는 점에서도 필름 (그리고 그 시대의 향취에 대한) 헌사로 켜켜이 쌓아낸 영화. 피터 터너(제이미 벨)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인물에 대한 존중을 표할 줄 아는 영화. 인물에 스며든 아네트 베닝과 제이미 벨의 뛰어난 호연으로 빛나는 영화. 형식적으로는 과거에 천착하면서도, 황금기를 반추하는 대신 황혼을 바라보며 그 순간을 맞이할 줄 아는 영화. '필름스타는 리버풀에서 죽지 않는다(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라는 원제처럼, 이건 스러지지 않고 살아남아 회자될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섬세한 결과 아련한 향을 지닌 정통 멜로를 본 것이 어쩌면 정말 오래간만인 것도 같다. 그러니까 '필름스타 인 리버풀'은 이견 없이, 다소 갸우뚱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폴 맥기건의 최고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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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스타 인 리버풀 (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 2017)

dir. 폴 맥기건

★★★★



R097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결과물이 아니라 기획 의도만 의미있게 다가오는 범작. 혹은 흥미로운 의도가 결과물에 부합하지 못하는 범작.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를 뒤집어 아시아인의 시각에서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기획은, 새로운 시도는 않은 채 수없이 되풀이되던 장르적 도식 속에서 인물들의 인종만 바꾼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결국, 드물게 등장하는 뛰어난 로맨틱 코미디를 위시해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닳고 닳은 헐리우드의 숱한 범작 로맨틱 코미디의 겉껍질만 빌려온 짝. 존 추 감독의 작품에 만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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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Crazy Rich Asians, 2018)

dir. 존 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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