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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Feb 14. 2019

2019년 1월 하반기의 영화들

'글래스', '가버나움', '극한직업', '드래곤 길들이기 3' 등 5편


R007 <글래스>

M. 나이트 샤말란의 집념과 야심. 2000년작 '언브레이커블'이 2016년작 '23 아이덴티티'의 막판에서 연결되었을 때만 해도 이걸 어떻게 풀어내려는건가 싶은 의구심이 들었는데, 2019년 '글래스'로 그 떡밥은 완벽에 가깝게 회수된다. 히어로물이라기엔 지나치게 현실에 치우쳐있고 싸이코스릴러라 하기엔 지나치게 환상에 치우쳐있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코믹스라는 장르의 정체성에 대해 진진하게 파헤치는 일종의 '메타코믹스'로 탁월하다. 오늘날 마치 신화처럼 받아들여지는 동시에 당연히 거짓이라고 여겨지는 영웅들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에 대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작품에는, 오래 전부터(어쩌면 '언브레이커블' 이전부터)의 샤말란의 목표가 집약되어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근 20년 전에 제작된 이야기를 현재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와 묶어내면서도 영리하게 전개해갈 줄 알고, 플롯 상으로도 여러 차례 강력한 훅을 날린다. 무엇보다 양산적으로 소비되던 히어로물이라는 소재를 접근하는 방식의 참신함에 있어서 감탄을 아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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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Glass, 2019)

dir. M. 나이트 샤말란 (미국)

★★★☆



R008 <가버나움>

영화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는가, 라는 화두를 떠올려보았을 때 나딘 라바키는 '현실을 고발하기 위하여, 미래를 개척하기 위하여'라 답할지도 모르겠다. 묘사하고자 하는 현실에 바탕을 둔 영화들이 대개 실화를 각색하는 반면, '가버나움'은 묘사하고자 하는 현실에 실제로 내몰린 이를 영화 속으로 끌어들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이 영화의 세 주인공은 모두 직업 배우가 아닌 난민 출신이다.) 그 극화의 과정 자체에 '가버나움'의 영화적 목표가 들어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출생신고서조차 없고, 라힐(요르다노스 쉬퍼라우)은 신분증을 끊임없이 바꾸어야만 한다. 서류로 생존의 증명을 대변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서류 없는 이들은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에서 지워질 운명에 처한 그들은 (극중 등장하는 바퀴맨처럼) 다른 정체성을 빌려와야만 간신히 존재할 수 있다. 결국 그렇다면, '가버나움'은 세상에서 지워질 이들의 존재를 지켜내려는 사명을 지닌 영화다. 그러니 이 영화는 열두살 소년이 왜 부모를 고소하게 되었는지를 플래쉬백으로 밝혀가려는 질문의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가버나움’은 열두살 소년이 부모를 고소할 수밖에 없는 지난한 세상에서 인물들에게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주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행동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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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 Capharnaüm (کفرناحوم ,2018)

dir. 나딘 라바키 (레바논)

★★★☆



R009 <미래의 미라이>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는 그가 만든 다섯 장편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혹은 ‘늑대아이’같은 작품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가족이라는 소재와 다른 차원으로의 여행이라는 플롯을 즐겨 사용하는 그의 특징은 고스란히 들어가 있지만, ‘미래의 미라이’에서 그 둘은 서로 다른 영화들을 짜깁어 놓은 것처럼 붕 떠 있다. 현실감 없는 소재를 이야기의 힘으로 탄복시키던 전작들과 달리, 이 영화 속에서 현실과 환상은 유리된 채 따로 놀고 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옴니버스처럼 펼쳐졌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영화의 후반부에서도 그저 심드렁할 뿐. 호소다 마모루가 앞으로 재패니메이션의 한 축을 짊어지게 될 거라고 믿었는데, 그 생각을 조금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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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미라이 / Mirai (未来のミライ, 2018)

dir. 호소다 마모루 (일본)

★★☆



R010 <극한직업>

밑도 끝도 없이 웃긴다. 사실 이 영화에게는 칭찬에 가깝다. 스토리의 얼개를 다소 희생하면서까지 철저하게 웃기겠다는 목표 아래 쉼없이 달려가는 '극한직업'은 자신의 목표를 다한다. 이병헌이 ‘스물’을 통해 보여주었던 강한 뉘앙스의 코미디는 살짝 희석된 느낌이 있지만, 특유의 느낌은 여전히 살아있다. 무엇보다도 다른 장르 혹은 서브플롯에 매몰되지 않고 코미디라는 한 우물만 파는 한국영화를 만나는 것도 오랜만. 후반부의 무리한 전개와 도식화된 캐릭터들의 한계를 감안하고서도, ’극한직업’에 의의가 있다면 이 영화가 보기 드물게 제대로 웃기려는 본격 코미디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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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 Extreme Job (극한직업, 2018)

dir. 이병헌 (대한민국)

★★★



R011 <드래곤 길들이기 3>

2010년작 '드래곤 길들이기'가 이야기의 신선함에 힘입어 흥미로웠고 2014년작 '드래곤 길들이기 2'가 이야기의 틀을 넓히자 진부해졌다면, 2018년작 '드래곤 길들이기 3'는 거대해진 이야기를 지탱하려 애쓰는 와중에도 3부작을 마무리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는 물론 (그것이 사람이든, 드래곤이든) 우정일텐데, 이야기의 핵심적인 테마가 강렬할 뿐 이를 뒷받침해야 할 이야기의 구체적인 플롯은 엉성해서 캐릭터의 매력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만 치중하려 한다. 장장 10년을 함께 해 온 시리즈의 마무리로 나쁘지 않지만, '드래곤 길들이기 3'는 결국 1편의 완성도를 넘어서지 못한 채 맥없이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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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길들이기 3 (How to Train Your Dragon: Hidden World, 2018)

dir. 딘 데블로이스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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