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o Feb 23. 2019

2019년 2월 상반기의 영화들

'알리타: 배틀 엔젤', '아이스', '콜드 워', '증인' 등 7편


R012 <알리타: 배틀 엔젤>

시각효과를 영화에 적극적으로 녹여내는 비주얼리스트로 말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두 감독의 만남. 제임스 카메론이 각본을,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연출을 담당한 '알리타: 배틀 엔젤'은 일본 만화 원작인 '총몽'을 스크린에 옮겨내려는 제임스 카메론의 오랜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기술이 완성되지 않아 이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제임스 카메론의 변명 아닌 변명처럼, 이 영화는 모션캡쳐 기술의 경지에 이른 영상미를 자랑한다. 다만 원작에 최대한 가깝게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노력 때문에, 이야기의 초점이 분산되거나 플롯이 과열되는 느낌이 없지 않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 속 몇몇 서브플롯은 아예 없어도 될 정도.) 그러나 야심과 재능 또 취향이 만나 빚어낸 결과물이 '알리타: 배틀 엔젤'에는 분명히 담겨 있다. 꼭 속편이 만들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알리타: 배틀 엔젤 (Alita: Battle Angel, 2019)

dir. 로버트 로드리게즈 (미국)

★★★☆



R013 <아이스>

사랑스러운 영화. 스토리에는 빈틈이 수없이 많은데다 온갖 장르를 한데 늘어놓아 번잡한데도, 인물들의 사랑스러움만으로 모든 걸 극복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으)려는 영화. 솔직히 말해서 매력적인 캐릭터 빼면 별다른 흥미도 없을 영화인데, 그 매력 하나로 영화를 끌고간다. 사샤(알렉산더 페트로프)가 특히나 그렇다. 수백 번은 본듯한 뻔한 스포츠드라마에 간질거리는 하이틴 멜로를 끼얹고, 그것도 모자라 설익은 뮤지컬까지 가미하는데도 싫지만은 않게 만들어내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

아이스 / Ice (Лёд, 2018)

dir. 올레그 트로핌 (러시아)

★★☆



R014 <콜드 워>

'콜드 워'는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전작 '이다'와 이어서 볼 때 특히나 흥미롭다. 폴란드 바깥에서 영화를 만들어왔던 파벨 파블리코브스키가 폴란드로 돌아와 처음으로 만든 '이다'에서 이미 거의 완전에 가깝게 확립했던 특유의 미학적 비전을 그는 '콜드 워'에서 유지하면서도 변주해간다. 흑백의 4:3 비율로 담아낸 시대의 차가운 질감은 여전한데, 그 속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감정이 휘몰아친다. 같은 맥락에서, 인물들을 최대한 스크린의 경계에 위치시키거나 원경에 가까운 쇼트로 잡아냄으로써 불안한 구도와 텅 빈 여백으로 프레임을 만들어냈던 '이다'와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콜드 워'에서는 인물을 이례적일 정도로 화면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이 빈번한 동시에 때때로 등장하는 익스트림 롱 쇼트를 통해 그 두 종류의 프레임 사이의 간극을 의도적으로 벌리려 한다. 하지만 두 작품은 ‘역사를 다루는 서늘함’이라는 그 본질적인 정서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다'가 프레임에 걸쳐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라면, '콜드 워'는 프레임을 떠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얼음처럼 차가운 표층와 불꽃처럼 뜨거운 심층의 대립과 융합, 그리고 그 속에 단단하게 자리한 심장serduszko과도 같은 사랑영화.

-

콜드 워 / Cold War (Zimna Wojna, 2018)

dir.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폴란드)

★★★★



R015 <레고 무비 2>

크리스 로드와 필 밀러가 만들어낸 희대의 애니메이션이자 전작 '레고 무비'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감독이 교체된 이 속편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앞섰는데, 생각보다 탄탄하게 시리즈의 맥을 이어간다.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이야기를 확장하기도. 확실히 전반부는 지지부진한 전개로 전작을 답습하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후반부에 이르자 이야기를 본 궤도에 올림과 동시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플롯을 적극 활용한다. '마마겟돈'이라는 소재의 등장에서부터 결말이 빤히 예상되는 와중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모티브를 추가적으로 끌어와서 이야기의 반전을 꾀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 잊혀지지 않을 엔딩 크레딧과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후크송이 있다. 이 시리즈의 매력은 아마 여기에 있겠지.

-

레고 무비 2 (The Lego Movie 2: the Second Part, 2019)

dir. 마이크 미첼 (미국)

★★★



R016 <증인>

말하고자 하는 확고한 바를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담아내려는 법정드라마.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자폐를 가진 장애인의 증언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를 통해 우리의 편견과 관념을 되돌아보게 하려는 영화적 목표를 시종일관 밀어붙인다. 다만, 그런 목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다소 무리한 전개가 이어지고, 그런 결론을 내기 위해 지우(김향기)와 순호(정우성)의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들도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올곧은 심성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휴먼드라마.

-

증인 / Innocent Witness (증인, 2018)

dir. 이한 (대한민국)

★★★



R017 <험악한 꿈>

다루는 소재의 강렬함에 반해 그 폭발력이 부족한 영화. 마치 하이틴 로맨스와 사회고발 스릴러를 섞어놓은 것만 같은 느낌인데, 어떤 느낌을 주는 영화를 목표로 삼았는지는 분명해 보이지만 이를 실현시킬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빌 팩스톤, 조쉬 위긴스, 소피 넬리스 등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그 연기를 체화해야 할 캐릭터의 동기나 근원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 각본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에 비해 소품처럼 짜여진 극의 배경이 라이언 존슨의 ‘브릭’을 떠올리게 하고, 도망치는 소년소녀의 로드무비와 같은 소재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레하 에르뎀의 ‘크나큰 세계’가 떠오르며, 특정 시퀀스에서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연상시키기까지 하지만 그 완성도에 있어 여러모로 영 부족한 영화.

-

험악한 꿈 (Mean Dreams, 2016)

dir. 나단 몰랜도 (캐나다)

★★☆



R018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행복한 사전'을 참 좋아하기도 해서 이시이 유야 특유의 잔잔하게 사색하는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신작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 이르러 그 생각은 다소 흔들리게 되었다. (극중 직접적으로 언급되듯)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도시 자체의 모습을 두 남녀의 일상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데, 인상적인 의도와는 달리 모든 상념들을 기어이 대사로 읊어야만 하는 극의 화술은 자꾸 의도를 겉도는 것만 같다. 관념적인 대사 혹은 상징적인 순간들 역시 아이디어가 좋을 뿐 영화가 이를 효과적으로 살려내지 못한다. 느낌은 있지만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영화는 극중 인물들을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 The Tokyo Night Sky Is Always the Densest Shade of Blue (夜空はいつでも最高密度の青色だ, 2017)

dir. 이시이 유야 (일본)

★★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 1월 하반기의 영화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