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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Apr 21. 2019

2019년 3월 상반기의 영화들

'캡틴 마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아사코' 등 5편


R022 <캡틴 마블>

이렇게나 장대한 기획 속에서도 안정적인 완성도로 세계관을 이어나가는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 이번에는 애나 보든과 라이언 플렉 콤비의 '캡틴 마블'로 그 실력을 다시금 증명한다.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이 즐겨 쓰는 화술을 무난하게 가져오면서도 결코 가볍거나 허술하지 않게 영화를 전개해나가는 '캡틴 마블'은 관객들이 바라던 여성 영웅 서사로서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한다. 이와 동시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다른 작품들과의 연결고리를 흥미롭게 이어내거나 기묘하게 비틀기도 한다. '룸' 등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브리 라슨 역시 앞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이끌어 갈 주역 중 한 명으로서 인상적인 신고식을 치른다. 결국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키워가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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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 (Captain Marvel, 2019)

dir. 애나 보든, 라이언 플렉 (미국)

★★★



R023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에르네스토 콘트레라스의 신작이자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인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는, 절멸 위기에 놓인 언어의 생명과 그 소수언어를 말하는 화자의 인생이라는 두 소재를 '환상'이라는 매개체로 흥미진진하게 엮어낸다. 얼핏 소수 언어 도큐멘테이션을 위해 찾아온 언어학자 마르틴(페르난도 알바레스 레베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결국 전하고자 하는 (또는 지키고자 하는) 이야기의 매개자 혹은 관찰자였다. 시크릴어에는 자막이 없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비밀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의 비밀과 병치시켜 전개하는 이 영화의 화법은, 언어의 절멸과 생명의 소멸을 다르게 여기면서부터 그 의도를 서서히 드러낸다. 언어를 기록하는 직업을 가진 언어학자의 사명이 그 언어가 절멸되더라도 보존하려는 목적인 것처럼, 언어는 남지만 생명은 남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사자들이 홀연히 사라지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리고 영화에서 세 차례 등장하는 동굴이 있다. 마치 동굴의 시선에 생명을 부여하듯, 이 동굴은 대개 영화 속에서 그 자체의 시점 쇼트로 묘사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 동굴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시크릴어(로 소통하는 화자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사라질 언어를 지키려는 이들과 틀어진 관계를 돌리려는 이들의 노력은 결국 꿈 속에서 빛을 발한다.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그렇게 언어와 삶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믿는 이 영화는 그 둘의 총체야말로 운명 혹은 인연을 부여잡는 갈피가 된다고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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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 I Dream in Another Language (Sueño en el Otro Idioma, 2017)

dir. 에르네스토 콘트레라스 (멕시코)

★★★★



R024 <그때 그들>

정도를 모르는 탐미와 절제를 모르는 탐욕.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인물을 이렇게나 집착적으로 그려내려는 과정에서, 의도와 작법은 기묘하게 상충한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작품에서 항상 느껴지는 연출 상의 과함이 그의 신작 '그때 그들'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예컨대 '그레이트 뷰티'에서 이것이 약으로 작용했다면 '그때 그들'에서는 독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래 1부와 2부로 나누어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극장 상영용으로 한 편으로 편집되었는데, 파올로 소렌티노의 작중 의도가 완벽히 반영된 두 편의 영화를 보더라도 이 부정적인 감상이 달라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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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들 (Loro, 2017)

dir. 파올로 소렌티노 (이탈리아)

★★☆



R025 <아사코>

이상한 스탠스의 멜로영화.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전작이 인물들의 감정선을 들여다보려는 지난하고 올곧은 길을 택한 러닝타임 317분의 ‘해피 아워’였음을 떠올리면, 그의 신작 ‘아사코’ 역시 겉모습처럼 평범한 멜로영화는 아님이 짐작될 터이다. 아닌게 아니라, 모습이 똑같은 두 사람이라는 익숙한 설정을 멜로영화의 장르로 빌려온 이 작품은 현재과 과거 사이의 간극을 다루고 있는데, 이때 빌어오는 영화 밖의 레퍼런스가 동일본 대지진임을 떠올리면 이 영화의 의도가 더 분명하게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현재(라는 현실)는 과거의 실패에 계속 천착하고, 과거(라는 환상)은 현실의 불만을 자꾸 왜곡한다. 서로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과거와 현재(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같지만 다른 한 인물)는 결국 이 이야기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아야 함을 에둘러 말해준다. (이 영화의 일본어 원제는 ‘잠들어도 깨어나도(寝ても覚めても)’ 라는 병치되는 두 가지 상황에 대한 암시, 영어 제목은 'Asako I & II', 즉 현재와 과거 아사코의 두 가지 시점에 대한 암시일 것이다.) 결국 그 과거와 현재가 기묘한 방식으로 봉합되는 이 영화의 후반부야말로 현실과 유리되면 유리될수록 그렇기에 묘하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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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 / Asako I & II (寝ても覚めても, 2018)

dir. 하마구치 류스케 (일본)

★★★☆



R026 <라스트 미션>

‘그랜 토리노’에 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자화상. (실제로 2018년작 ‘라스트 미션’은 2008년작 ‘그랜 토리노’ 이후 10년 만에 그가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그랜 토리노'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작품에서는, 말년에 이르러 인생을 반추하는 거장의 덤덤하지만 깊은 시선이 느껴진다. 교훈보다는 회고에 가까운 방식으로 특정한 인물의 이야기를 (심지어 본인이 연기하며) 다루는 과정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성찰하려는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그랜 토리노’도, ‘라스트 미션’도 넓은 의미에서는 1992년작 '용서받지 못한 자’와 그 궤를 함께 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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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미션 (The Mule, 2017)

dir. 클린트 이스트우드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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