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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Apr 29. 2019

2019년 3월 하반기의 영화들

'더 길티', '덤보', '강변호텔', '어스' 등 6편

R027 <원 네이션>

피에르 쇨러의 '원 네이션'은 따분하고 성기다. 루이 16세를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런 소재를 가지고도 이야기를 시간적으로 나열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개성을 보여줄 생각이 없는 이 영화는 지리멸렬하게, 더군다나 조악한 편집으로 그저 역사의 단편을 따라갈 뿐이다. 로랑 라피트, 아델 애넬, 가스파르 울리엘, 올리비에 구르메, 루이 가렐, 심지어 드니 라방까지 입이 벌어지는 배우진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중 누구도 기억에 강렬히 남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인상적인 장면이 더럿 있지만, 소재와 배우만으로 영화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좋은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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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네이션 / One Nation, One King (Un Peuple et Son Roi, 2018)

dir. 피에르 쇨러 (프랑스)

★★☆



R028 <우상>

지나친 욕심은 때로는 화를 부른다. 그건 이 영화 속 인물의 이야기에도, 혹은 이 영화 자체에도 들어맞는다. 인상적인 데뷔작 '한공주' 이후 이수진 감독이 내놓은 두 번째 작품 '우상'은 야심의 크기라는 측면에서 '추격자' 이후 '황해'를 내놓은 나홍진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거대한 이야기를 마치 덩어리처럼 다뤄내는 과정에서 (극의 주요 소재마저 동일하다) 결과적인 완성도는 정반대에 가깝다. 크게 세 인물을 축으로 삼아 극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우상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상징적으로만 은유하는 각본은 묘사의 강도에 비해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관객들을 그저 기진맥진하게만 만들 뿐이다. (전작 '한공주'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엔딩 쇼트는 좋지만, '우상'의 많은 허점들을 마지막 장면 하나로 갈무리하기에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퍽 과유불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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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 Idol (우상, 2018)

dir. 이수진 (대한민국)

★★☆



R029 <더 길티>

또 한 편의 흥미진진한 폐쇄 스릴러. 극히 제한된 공간 내에서 외부와의 연락 매체만을 수단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 영화라는 점에서 다양한 레퍼런스를 떠올리게 한다. 길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이야기의 꼬임새가 좋을 뿐더러, 극중 벌어지는 사건과 주인공의 과거 개인사를 절묘하게 병치시키는 지점도 좋다.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는 주인공 외의 인물을 상상하게 하는 사려깊은 각본 역시 인상적이어서, 우리는 내내 주인공의 얼굴을 볼 뿐이지만 마치 전화 속 등장인물들의 사연마저 함께 시각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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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길티 / The Guilty (Den Skyldige, 2018)

dir. 구스타브 몰러 (덴마크)

★★★☆



R030 <덤보>

팀 버튼과 디즈니의 만남. 예상했던 것처럼 무척 안정적이고 지나치게 안전하다. 콜린 파렐, 대니 드비토, 마이클 키튼, 에바 그린 등 익숙한 배우들이 눈에 띄고, 디즈니 특유의 착한 화술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드문드문 돌출되는 팀 버튼 특유의 기괴한 연출이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대체로 들쑥날쑥하다고 할 수 있을 팀 버튼의 필모그래피 전체에서 보자면 ‘덤보'는 아쉬운 편에 속한다. 언제쯤 '빅 피쉬'의 팀 버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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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보 (Dumbo, 2019)

dir. 팀 버튼 (미국)

★★☆



R031 <강변호텔>

홍상수의 신작 ‘강변호텔’은 그의 최근작들이 하나같이 환기하는 쓸쓸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그는 최근으로 올수록 자전적이고 직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의 극중 인물이 그를 대변하는 캐릭터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남자 배우 세 명이 하나같이 그의 분신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잠에서 깨어나는 인물들의 모습이 자주 비추어졌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나 거의 모든 인물들이 그렇게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기이하다. 이 영화에서 꿈에서 깨어난 뒤 벌어지는 일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홍상수의 근작에서 하나같이 느껴지는 기시감은 매너리즘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반복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그의 작품에서 좀처럼 묘사되지 않은 죽음의 그림자가 여느 때보다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계속되는 반복에 고개를 갸우뚱할 만 하면 한 번씩 새로운 세계로 성큼 발을 들이는 것 같은 홍상수의 필모그래피. '강변호텔' 역시 그랬기에, 얄궂게도 그의 작품을 계속 기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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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호텔 / Hotel by the River (강변호텔, 2018)

dir. 홍상수 (대한민국)

★★★☆



R032 <어스>

조던 필의 데뷔작 '겟아웃'은 이야기의 밀도 혹은 함의에 비해 묘하게 아쉬움이 느껴졌는데, 두 번째 작품 '어스'로 그는 자신의 뛰어난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중의적인 제목을 의도한 '어스(Us)'는 극중 인물의 대사('우리는 미국인이다(We're American)')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우리(us) 그리고 미국(U.S.)을 에둘러 지칭한다. (전작 '겟아웃'에서와 마찬가지로, 조던 필은 필요한 부분에서는 직설적인 상징을 부각시키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과할 정도로 환기되는 예레미야 11장 11절이 특히 그런데, 이러한 직설적인 연출적 상징의 측면에서는 극 거의 모든 곳에 8:2라는 장치를 심어두었던 '매그놀리아'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단순한 호러, 혹은 블랙코미디를 넘어서는 통렬한 풍자다. 그 풍자에는 ('겟아웃'의 핵심이었던) 흑백 갈등을 넘어서는 피아(彼我)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가 안겨져 있다. 단순한 도플갱어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 같던 '어스'는 극이 궤도에 오르자 유약한 인간의 믿음에 대한 신선한 드라마로 도약한다. 헐리우드의 시스템 하에서 작가적 야심을 흥미진진하게 녹여내는 조던 필이 이제까지 만든 장편이 단 두 편이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면, 앞으로 그가 만들어 낼 작품들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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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 (Us, 2019)

dir. 조던 필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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