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천국' 그리고 '스플렌도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순간에 대한 황홀한 기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영화를 사랑하는 누구나 제각기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영화가 스크린에 영사되는 순간 호출되는 무언의 마법.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영사, 영화와 극장의 모험’ 기획전에서 상영된 두 편의 이탈리아 영화가 바로 그렇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시네마천국’과 ‘스플렌도르’는 서로 각기 다른 지점에서 정반대로 잊을 수 없는 뭉클한 울림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뗄레야 뗄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이 두 영화가 모두 ‘극장에 대한 영화’라는 점일 것이다.
으레 극장이라는 공간은 영화라는 예술을 품지만, 때때로 영화라는 예술이 극장이라는 공간을 품기도 한다. ‘메타시네마’. 극장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런 영화들은,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한 겹 안긴 차원에서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다. 영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말하자면 영화가 영화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깨닫게 하는 동시에,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우리의 이야기가 영화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통해 영화라는 벽을 허물기도 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천국'과 에토레 스콜라의 '스플렌도르'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그것은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애정, 그리고 영화라는 예술과 함께한 인물에 대한 헌사에 다름없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영화의 구조는 중년의 인물이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는 것이리라. ‘시네마천국’에서도, ‘스플렌도르’에서도 극장를 가득 메운 사람들 그리고 극장 속의 영화는 그 자체로 노스탤지어의 대상이다. 영화가 번성했던 과거에 대해, 영화가 쇠락하는 현재가 보내는 짙은 향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88년작 ‘시네마천국’은 군더더기 없이 대중적인 화술로 관객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지만, 한 발짝 깊게 들어가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메타영화다. ‘시네마천국’에서 인간을 꿈을 꾼다. 그건 성공한 감독이 된 중년의 토토도, 작은 마을의 영사기사 알프레도도 그렇다. 그리고 인간이 꿈을 꿀 때 영화에게 삶이 부여된다. 영화 중반 극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영화를 선물해주기 위해’ 영사기를 반사해 마을 광장을 극장으로 만들었던 장면을 떠올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토에게 보내진 알프레도의 필름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되새기자, 인간의 꿈이 가닿은 진심이 영화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릿해진다.
에토레 스콜라 감독의 1989년작 '스플렌도르'는 암울한 현재와 융성한 과거를 끊임없이 대비하는 와중에도, 역경을 마주한 인물들의 울상이 아니라 미소에 주목한다. ‘스플렌도르’는 마치 ‘시네마천국’과 같은 이야기를 정반대의 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은데, 극장을 운영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인간군상의 삶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스플렌도르’에서는 영화가 꿈을 꾼다. 극장의 존폐에 울고 웃는 인물들의 모습 너머로, 생각해보면 영화는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주인공의 과거 속, 마을 공터에 스크린이 설치되자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을 주인공은 영사기 옆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프랭크 카프라의 ‘멋진 인생’이 아름답게 환기되는 엔딩에 이르자, 극장을 꾸리는 치열한 인간의 삶이 영화의 꿈을 어떻게 지켜주게 되는지가 자명해진다.